"정상 간 통화는 사전에 의제 조율"…협의 과정서 제외된 듯
  •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간 통화에서, 국제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상당 대북 지원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문제를 제기한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거론하고 나서면 일이 커지기 때문에, 통화 의제를 사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오전 11시부터 25분간 정상간 통화를 갖고, 북한의 잇단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규탄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두 정상은 "북한 정권이 도발을 계속할수록 더욱 강화된 경제적 압박을 받고,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깨닫도록 제재와 압박을 가해나가자"며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유엔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다만 통화 과정에서 대북 제재의 효과를 반감하고 경제적 압박을 훼손할 수 있는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상당 대북 지원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통화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에 대해서는 양 정상이 일체 한 마디, 한 획도 나눈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는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이 우방국의 반대에 부딪히고 국제적인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뜻밖이라는 분석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800만 달러 대북 지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기를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북핵 대응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의 긴밀한 협의를 고려할 때, 아베 총리의 문제제기에 이미 미국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레이스 최 美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이 같은 날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대북 지원에 관한 국무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 그 반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을 만류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정상 간의 통화는 연결되기 전에 의제를 놓고 양국 실무진이 사전에 긴밀한 협의를 거친다. 아베 총리의 문제제기로 낭패를 봤던 우리 측 실무진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앞두고 사력을 다해 이 문제를 의제에서 제외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상 간의 통화는 그 전에 의제를 다 조율한다. 이미 이 문제는 미국 측에 사전에 다 (말)했을 것"이라고 밝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같은 맥락에서 사전 조율을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확고한 '800만 달러 대북 지원' 의지를 확인한 미국 측이 정상간 통화에서 이를 만류하는 것을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베 총리의 "시기를 재고해달라"는 완곡한 만류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일축하며, 어떻게든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에 800만 달러) 자금(을) 공여(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한반도 제반 상황과 연계해 하겠다고 (미국 측에)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우리 측이 자금 공여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게 명백한 바에는, 굳이 정상간 통화에서  문제를 제기해서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미국 측의 '정무적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따라서 이날 정상간 통화에서 800만 달러 대북 지원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문제가 우방국 사이에서 승인됐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오찬에서 재론될 가능성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양 정상은 다음 주 유엔총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며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과 위협에 대응하고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제반 방안을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