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일. 우리는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몽골을 향해 출발했다. 더 일찍 출발하려 하였으나 비자가 나오는데 좀 시간이 걸려, 예정보다 일주일쯤 늦게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게 오전 열 시였고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한 게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우리 시간으로 따졌을 때 그렇다는 거고,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몽골의 시간은 열 한 시가 조금 넘어 있을 뿐이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아지라는 청년과 합류했다. 아지는 울란바토르 대학 한국어과 삼학년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이번 우리 여행을 위해 사전에 현지 조달한 통역 겸 가이더였다. 성규가 출발 전 자신과 오르그뜨를 연결시켜주었던 결혼상담소에 연락을 취했고, 결혼상담소의 사장이 특별히 신경 써 연결시켜준 가이더였다.

    아지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청년이었고, 키는 작았지만 다부졌고, 인상이 좋았다. 한국말도, 몽골문화촌의 몽골예술단 통역 만큼 잘하지는 못했지만 꽤 잘하는 편이여서 의사소통에 별 불편함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말할 때 한국에 대한 상당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몽골과 한국과의 관계사에도 꽤 관심이 있는 듯 충렬왕과 노국공주에 대한 얘기도 곧잘 했다. 우리는 아지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래서 동생처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고, 아지도 곧 우리를 형들처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까지 비행기를 탔지만, 비행기 여행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몽골은 인구는 적고 땅은 넓어 도로 정비가 잘 안 되어 있었고, 이동은 주로 비행기에 의존하는 듯 했다. 우리와 아지는 울란바토르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헨티 아이막의 온다르항까지 가야 했다. 온다르항이 오르그뜨의 친정집이 있는 곳이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우리는 이게 날까 싶은 다 낡은 경비행기를 타고 한 한 시간 반쯤을 날아 헨티 아이막의 온다르항에 도착했다. 4월로 접어든, 계절은 분명 봄이었지만 온다르항의 날씨는 늦가을처럼 꽤 쌀쌀했다. 온다르항의 공항에 내린 우리는 거기서 택시를 집어타고 또 한 사 오 십여 분을 더 이동해야 했다. 오르그뜨의 집은 온다르항의 시내에 있지 않고,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르그뜨의 집에 당도했을 때 이미 해가 뉘엿해지고 있었다. 드넓은 초원의 저 끝으로 지평선이 펼쳐지고 그 위로 야트막하게 솟아오른 오름이 보이고 해가 그 오름들 사이에 불안정하게 얼굴을 올려놓고 있었다. 몽골은 확실히 한국보다는 해가 짧은 듯 했다. 오후 여섯 시가 채 안 되었는데도, 해가 이미 지평선 가까이 야트막한 오름들 위에 올라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오르그뜨의 집은 몽골의 전통가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대식 건물도 아니고 낡고 허름한 것이긴 하였지만,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올려진 오래된 집이었다. 몽골 하면 떠오르는 게 게르라는 전통가옥에서 사는 유목민의 모습이지만, 오르그뜨의 집에서는 유목민의 인상이 떠올라오지 않았다. 오르그뜨네는 일찌감치 유목민의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민으로써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오르그뜨의 집에 도착해 우리의 존재를 알렸을 때 오르그뜨네 친정 식구들은 몹시도 놀라워했다. 놀라워하다가는 또 의아해했다. 반가움의 표시는 그 이후에 왔다. 우리가 온다는 연락을 사전에 취하지 않고 불쑥 찾아온 때문이었다. 온다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으니 오르그뜨네 친정식구가 너무 뜻밖이라 깜짝 놀라고 의아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와 지만이는 성규가 사전에 오르그뜨네 친정집에 당연히 연락을 취한 줄로 믿고 있었다. 성규가 사전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뜻밖이요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의 방문에 특히 놀라고 의아해한 것은 오르그뜨의 친정어머니였다. 온다는 사전 연락도 없었고, 더욱이 딸 오르그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위인 성규의 모습만 달랑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나와 지만이의 존재도 어머니에게는 놀라움이었었던 것 같았다. 사전 연락도 없이 딸은 안 나타나고 사위만 달랑 낯선 남자들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어머니는 덜커덩 불안해지셨던 것 같았다. 혹시 딸한테 무슨 변고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그렇지 않고서야 딸은 안 타나나고 사위만 달랑 나타날 리가 없는 일 아닌가.

    어머니가 우리를 보고 처음 뗀 말이 그것이었다.

    "오르그뜨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물론 오르그뜨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남편인 성규 몰래 야반도주했다는 건데, 그건 과거의 문제였고 이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면 오르그뜨에겐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었다.

    "오르그뜨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아주 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쩐 일인가. 이렇게 불쑥 연락도 없이. 그것도 딸은 어디 가고 사위 혼자."
    "모처럼 어머님과 처남 처제들이 보고 싶어 왔습니다. 오르그뜨는 같이 오고 싶었지만, 공연 중이라 못 왔습니다. 지금 공연이 한창이거든요."
    "공연이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한국에 몽골문화예술단원들이 와 있습니다. 오르그뜨가 그 예술단원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모르고 계셨던가요. 오르그뜨가 몽골에 있을 때 몽골문화예술단 단원 심사를 쳤고, 붙었었다는 사실을요." "그 얘길 듣긴 했네만, 시집간 애가 무슨 공연이란 말인가. 집에 붙어 있어야지. 시부모도 모시고 사위 뒷바라지도 해야 할 게 아닌가. 사위가 욕보네. 걔 쓸데없는 재주 때문에 말일세."
    "제가 욕보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쓸데없는 재주도 아니고요. 저는 오르그뜨의 재주가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고맙네. 우리 딸내미의 쓸데없는 재주를 예쁘게 봐줘서."

    그제서야 어머니는 불안이 가라앉고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이 모든 대화는 문 앞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통역은 물론 우리의 현지 가이더인 아지가 했고. 어머니는 그때까지 우리를 문 밖에 세워둔 채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조차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기 딸의 재주를 어여삐 봐 줘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된 어머니가 그제서야 우리를 집안으로 들였다. 오르그뜨의 몽골 집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썩 손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집안은 한국의 비닐하우스나 콘테이너 박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로 좀 갑갑했는데, 아늑하다는 느낌은 없지 않았다.

    오르그뜨의 친정식구는 도합 여섯 명이었다. 친할머니와 어머니 손 위 언니, 여동생, 그리고 쌍둥이 남동생 둘이 있었다. 손 위 언니는 삼 년 전 결혼을 해 분가해 온다르항의 시내에 살고 있었다. 지금 오르그뜨네 친정집에는 친할머니 어머니 처제 쌍둥이 남동생 이렇게 넷이 살고 있었는데, 우리가 집안에 들어갔을 때 친할머니 어머니 쌍둥이 남동생들의 모습은 보였지만, 정작 처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용건이 있는 건 처제였는데, 처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처제의 용처에 대해 물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처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처제는 어디 마실이라도 간 모양이지요."

    성규가 묻고 있었다.

    성규의 질문이 뭐 잘못되었던가. 처제가 보이지 않길래 처제가 혹 마실이라도 갔는가 묻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물어선 안 될 걸 물었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뭐랄까,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오버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닌데, 오히려 둔감한 편에 속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뭔가 이상한 게 있긴 있다는 거였다. 일단은 성규의 그 물음에 오르그뜨의 친정식구들, 어머니를 비롯해 할머니 쌍둥이 남동생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몹시 난감한 표정들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눈에 띄게 난감한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안 띌 정도로 난감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난감한 표정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슬픈 표정으로 바뀌어갔다는 것이었다. 오르그뜨 친정 식구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슬픈 표정으로 바뀌어가는데, 어떻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김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만이 이런 돌발적인,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지만이도 성규도 그랬던 것 같았다. 성규가 다시 묻고 있었다.

    "왜 그러시지요. 제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네."
    "그럼, 처제가 어디 특별히 먼 곳으로라도 간 건가요. 일테면, 좀 말하기 곤란한 곳이라든가요."
    "말하기 곤란한 것은 아니네. 그러나 율리히가 특별히 먼 곳으로 간 것은 맞네."

    율리히는 성규의 처제, 그러니까 오르그뜨의 여동생의 이름이었다.

    나중에 성규한테 들은 얘기이지만, 성규가 처제가 어디 특별히 먼 데에라도 간 거냐고 물었을 때 성규가 염두에 둔 곳은 여자를 돈으로 사고파는 데였다. 몽골은 먹고 살기가 힘든 반면 가정에서의 여자의 기대 역할이 강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자가 나서는 게 통상적이라고 했다. 더욱이 오르그뜨네 친정집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집안 살림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자식들 교육보다는 일단 먹고사는 살이가 우선이었었다고 했다. 오르그뜨가 하고 싶은 음악을 때려치고 한국인인 성규에게 시집을 온 것도 따지고 보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집안 사정이 큰 몫을 한 일이었었다. 성규는 처제도 언니와는 좀 다른 선택이긴 하지만, 집안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가 있는 게 아닌가 추측해보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말하기 곤란한 곳이냐는 단서를 달았던 것이기도 했다.

    성규의 추측이 좀 지나친 것이긴 하였지만, 몽골 사정을 좀 아는 사람이면 또 충분히 그럴만한 추측이기도 했다. 게다가 처제가 어디 갔느냐는 성규의 질문에 오르그뜨네 식구들이 몹시 당황스럽고 슬픈 표정들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그 돌발적이고도 예상치 못한 분위기 변화에서, 다소 무리한 추리는 무리한 추리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겠다.

    "특별히 먼 곳으로 간 게 맞다면요, 처제도 자기 언니처럼 시집을 간 건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네. 율리히는…"

    율리히의 어머니, 그러니까 성규의 장모는 여기서 말을 끊었다. 말하기가 힘든 것 같았다. 율리히가 어디로 갔는지.

    말하는 대신 어머니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황한 것은, 우리였다. 정말이지 물어선 안 될 것을 성규가 물었다는 느낌이었다. 처제의 용처를 왜 물어선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대하고 나면 이유야 어떻든 아무래도 그렇다는 느낌이었다.

    "율리히는 하늘나라로 갔네."

    대답한 것은 어머니 대신 할머니였다.

    "작년 겨울에 하늘나라로 갔네. 방년 열 아홉이었지."
    "?…"

    어머니가 왜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규가 처제의 용처를 조심성 없이 물은 게 왜 잘못이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얼마나 무심했으면 형부가 돼 가지고 처제가 죽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더라도, 지구라는 공간 내였다. 비행기로 서너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이었다. 혹여 혹성을 달리하는 곳에 살고 있었다 하더라도 처제의 죽음 소식을 몇 개월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형부의 도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처제가 죽은 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마치 우리 책임인 것 같은 느낌이 엄습해왔다. 나와 지만이마저 이럴진데, 성규는 더할 거였다. 안 좋은 느낌이었다.

    "오르그뜨가 얘기하지 않았나 보지."

    어머니였다.

    "예. 얘기했다면 당장에 달려와 봤을 겁니다."
    "잘한 거야. 얘기 안 한 게  잘한 거야. 지 동생 죽은 게 무슨 좋은 소식이라고 얘길 해. 안 좋은 소식은 전하지 않는 게 좋은 거야. 좋은 소식만 전해도 귀가 아플 수 있는 일인데."
    "죄송합니다. 알았다면 정말이지 당장 와 봤을 겁니다."
    "걔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당장 와. 지 엄마보다 먼저 죽은 년이 뭐가 예쁘다고. 우리도 쉬쉬 하면서 치렀어. 지 언니한테도 안 알렸어야 했는데. 워낙에 율리히가 오르그뜨를 따랐어서 안 알리면 안 될 것 같아 알렸던 것 뿐이야. 몽골에 오겠다는 오르그뜨를 내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었어."
    "?…"

    어머니는 처제의 죽음을 보러오지 않은 성규의 처사에 대해 잘했다는 건지 아니면 원망하는 건지 좀 헷깔렸다. 말씀은 분명 괜찮다고 하시는데, 말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또 그와는 백 팔 십도 다른 원망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는 것이었다. 실제 어머니는 괜찮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시는 걸 거였다. 문제는 성규였다.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못한 데에서 오는 자괴감이 성규에게 어머니가 말하는 것 이외의 말소리를 듣게 하는 걸 거였다.

    율리히가 생명을 잃은 것은 지난 해 11월 초였다고 했고, 심장판막증이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원래 심장이 약했었는데, 그게 기어이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율리히를 데리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해 11월 초라면, 오르그뜨가 야반도주한 시기와 대체로 일치하는 시기였다. 오르그뜨가 집을 나간 게 율리히의 죽음 때문은 아니겠지만, 시기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르그뜨는 집을 나가기 전에 그녀의 동생 율리히의 죽음 소식을 몽골의 어머니로부터 듣고 있었고, 그 소식을 접한 상태에서 집을 나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율리히의 죽음이 오르그뜨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테고, 이후의 그녀의 행동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보는 것은 타당한 추리였다고 할 수 있었다.

    성규가 율리히가 어디에 영면하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어머니는 어디에도 영면하고 있지 않다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율리히가 할머니나 자신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무덤을 만들 수 없었고, 화장을 했다고 했다. 화장해서 남은 일부의 재는 가져다 마을 뒤의 간산 오름 위에 올라가 사방을 향해 뿌렸다고 했다. 자유롭게 어디든 너 좋은 대로 훠어이 훠어이 날아가 보라고. 재의 일부는 바람에 날려 날려 지 언니가 있는 한국에까지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끔찍이도 지 언니를 보고 싶어 했었으니까.

    "어머니, 제가 불쑥 여기에 온 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제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르그뜨가 처제를 만나고 오라고 하였던 거니까요. 이제야 오르그뜨가 왜 저더러 처제를 만나고 오라고 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르그뜨가 율리히를 만나고 오라고 보냈단 말이야 자넬? 오르그뜨는 율리히가 죽은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냈다는 겁니다,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