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의원으로부터 듣는다 - 추석 호남 민심
  • '민족대이동'이 이뤄지는 추석이다. 정치적으로 바라보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전국 8도의 노·장·청 국민 여론이 확산되고 혼합되는 절기다.

    특히 올해 설날과 추석 사이에는 그 어느 해보다 정치적 격변이 심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져,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문재인정권이 들어선지 5개월, 외교·안보와 국내정책 양쪽 측면에서 국민들 사이에서의 논란이 거세다. 정권과 국민 사이의 '허니문'이 끝난 지금, 추석을 맞이해 고향에 내려간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생각들을 털어놨을까.

    여론 수렴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각 정당의 3선 이상 중진 국회의원들로부터 추석을 맞아 지역의 민심을 직접 들어봤다.

    ①중진의원으로부터 듣는다 - 추석 호남 민심
    ②중진의원으로부터 듣는다 - 추석 영남·강원 민심


  •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호남(광주·전남·전북)의 현재 인구는 525만 명.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흔히들 '천만 호남'이라 부르는 이유는 출향민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8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고속도로 정체가 심했다. 호남으로의 귀향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내년 6·13 지방선거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추석 시기 호남 민심에 정치권의 촉각이 다시금 쏠리고 있다. 6일 본지와 통화를 가진 호남 지역 중진의원들은 △호남 민심 △지방선거 등에 관해 다양한 지역 민심을 전했다.

    ◆"민심 나쁘지 않아… 오히려 국민의당 격려해주는 분들 많다"

    호남 중진의원들은 이 권역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을 향한 지역민들의 애정과 관심이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수치와는 달랐다고 전했다.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4선·광주 동남갑)은 이날 통화에서 "광주 민심이 나쁘지는 않다. 지금 여론조사에 겉으로 나타나는 수치와 민심의 실체는 다르다"며 "국민의당을 지지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을 뿐, 여론조사에서처럼 '더불어민주당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더라"고 말했다.

    중진의원들은 여론조사의 맹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근래 여론조사 중에서 지난 5·9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이 60%를 넘는 조사들도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실제 득표율은 41%였다. 그만큼 현 여권 지지층의 비율이 과장돼 있다는 것이고, 이를 지역민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4선·전남 여수을)도 여론조사와 정당 지지율과 관련해 오히려 지역민들의 격려가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이 지지도가 낮다고 오히려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더라"며 "나도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 국민의당에 힘을 좀 실어달라는 이야기를 부탁드렸다"고 분위기를 전해왔다.

  • ▲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유성엽 "전북 민심, 김이수 인준 부결로 격앙… 잘 해명해야"

    다만 전북의 민심에는 광주·전남과 다소 다른 부분도 읽혔다.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3선·전북 정읍고창)은 "전북의 민심은 대체로 문재인정부가 나름대로 잘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다"며 "국민의당도 잘하는 일은 협치를 해서 잘 추진해갈 수 있도록 하라는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더라"고 전했다.

    특히 추석 연휴 직전에 있었던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의 임명동의안 국회 부결과 관련해 지역 민심이 격앙된 듯 했다.

    유성엽 의원은 "(내 지역구인 전북) 고창이 그분(김이수 후보자) 출신지 아니냐"라며 "국민의당이 전북 출신 (김이수 후보자)은 낙마시키고 부산 출신 (김명수 대법원장)은 처리해줬다고 아주 감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기준으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야기하기에 아주 쉬운 이야기가 돼버려서 곤혹스러웠다"며 "앞으로 잘 해명해나가야겠더라"고 덧붙였다.

    ◆"호남 SOC 예산 3조 삭감, 지역민 사이에 반향 있다"

    호남 중진의원들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박주선 부의장은 "지방선거는 대통령 지지도와 꼭 연관되지도 않는다"며 "열우당 시절에도 절대다수 여당이었지만, 광주시장부터 구청장은 전부 꼬마민주당이 돼버렸잖느냐"고 회상했다.

    아울러 "'요즘 (정당) 지지율이 국민의당이 낮더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나면 '옛날에 문재인은 지지율이 높아서 대통령이 됐소?' 하면 '그건 그렇다'고 답하는 분들이 많다"며, 지금의 지지율과 내년 지방선거는 아직 연관지을 수 없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주승용 전 원내대표도 "호남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견제와 균형을 맞춰줘야지, 일방적인 게임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 지역의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전남도지사 출신이 국무총리가 됐는데도 정부예산안에서 호남의 도로·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참혹하게 깎여나간 것과 관련해서는, 지역의 '밑바닥 민심' 사이에 반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호남 출신으로는 32년 만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맡아, 호남에 2조 원이 넘는 '예산폭탄'을 쏟아붓는 등 '호남 예산 전문가'인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호남의 SOC 예산 삭감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아니다'라고 해도 확실히 지역민들의 반향이 있더라"며 "어쨌든 3조 원이 깎인 것 아니냐"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우리 여수도 세계박람회를 치르느라 도로와 철도가 좋아지니, (박람회가) 끝나고도 얼마나 관광객이 많이 오느냐"며 "SOC가 곧 지역경제활성화고 복지인데, 예산이 깎이면 손해보는 곳은 우리 낙후된 호남"이라고 단언했다.

  • ▲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유성엽 "지방선거, 안철수 나서야 선당후사 분위기 만들어질 것"

    중진의원들은 당장 스스로가 내년 6·13 지방선거에 출마 대상자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호남 중진의원들은 자신의 출마 여부에 관한 입장은 엇갈렸지만, 지방선거를 '인물 싸움'으로 이끌기 위해 안철수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결 같았다.

    박주선 부의장은 "나는 (광주시장에는) 아예 생각이 없다"는 불출마 입장을 확고한 전제로, 다가올 지방선거는 "정치신인을 가지고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물 싸움이 돼야 한다고들 이야기하더라"고 밝혔다.

    전북도지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유성엽 의원은 "(지사에 출마하라는) 그런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데, 지난해 (총선)에 이미 공개적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해놨던 상황이라 번복해서 좋은 일은 아니다"라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번복하고 나가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유성엽 의원은 '선당후사적 자기희생'을 요구받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그 전제는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밝혔다.

    유성엽 의원은 "안철수 대표부터 본인의 입장을 정해야 할 것 같다"며 "'내가 죽을 각오를 하고 서울시장에 나설테니, 당의 중진들도 각자 연고를 찾아서 한 번 나서서 뛰어보자' 이렇게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일반적으로 지방선거를 이끄는 정도로는 (안철수 대표가)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당의 중진들도 죽을 각오로 함께 당을 살리기 위해서 나서보자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개인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안철수 대표부터 솔선수범해 중진들이 나서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나로서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불가피한 상황이 생긴다면 개인적인 승리 여부의 판단을 떠나서 당원으로서 당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의지를 내비쳤다.

    ◆주승용 "광역 1석도 못 얻으면 당 없어져… 안철수, 승부 걸어야"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국민의당의 전남도지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주승용 전 원내대표도 정확히 똑같은 입장이었다.

    이들의 입장은 단순히 개인적인 정치적 의사의 표명이 아니라, 추석 연휴를 지내면서 호남에 귀향한 지역민들의 여론을 수렴한 결과라는 점에서 향후 수도권 민심과 안철수 대표에게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자신이 전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당의 광역단체장 선거 승리를 위해서 뛰는 것이니 그 책임감이 막중하다"며 "(내년 지방선거) 광주·전남에서 2석을 얻으면 승리고, 1석을 얻으면 본전, 1석도 못 얻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상황에 빗댔다.

    그러면서 "안철수 대표가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본다"며 "서울시장은 호남을 견인하는 큰 역할인데, 우리 당에 (후보감이) 없다"고 우려했다.

    앞서 박주선 부의장이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박주선 부의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우당이 다수 여당이었는데도 '꼬마민주당'이 광주·전남지사를 휩쓸었던 예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박주선 부의장 본인의 정치적 결단이 있었다. 당시 박주선 부의장은 정치적 연고인 전남지사 출마를 준비 중이었는데,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마땅한 서울시장 후보가 없자 노무현정권의 거듭된 정치탄압 기소와 무죄 판결로 '오뚝이' '불사조'라는 명성을 얻고 있던 박주선 부의장의 서울시장 출마를 호소했다.

    전남지사로서는 당선이 유력하고 서울시장으로서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박주선 부의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서울에서 '꼬마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1~2% 수준이었는데도 박주선 부의장은 7.7%를 득표하며 한나라당 오세훈, 열우당 강금실 후보에 맞서 선전했다.

    이 7.7%는 단순한 사표(死票)가 아니라, 서울의 호남 출향민 결집의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서울시장 후보로 누구를 내세우느냐가 호남 선거도 견인하게 된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차원에서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수도권에 너무 약한 후보가 나와버리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강 구도로 지방선거가 가버리게 된다"며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와야 수도권의 호남 사람들도 (국민의당에) 관심을 갖게 되고, 호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