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사회 향한 통렬한 비판, 19~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
  • 한 아버지의 비극을 그린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은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남긴 가장 비극적인 작품 '리골레토'를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새롭게 선보인다. 1997년 이후 20년만이다.

    '리골레토'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오페라로 각색 중이던 베르디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을 읽고 "벼락을 맞은 듯"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왕의 환락'은 16세기 프랑스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궁정 광대였던 트리불레를 주인공으로 삼아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한 작품이다.

    오페라는 부도덕하고 방탕한 귀족사회를 벌하려다 되려 자신의 딸을 죽이게 되는 광대 리골레토의 잔혹한 운명을 다룬다. 궁정광대 리골레토는 호색한 만토바 공작이 숨겨두고 곱게 기르던 자신의 딸을 유혹하고 겁탈하자 자객을 시켜 죽이려 한다. 하지만 그 딸은 자객으로부터 공작을 구한 후 대신 목숨을 잃는다.

    이번 '리골레토'에서는 연륜의 지휘자 알랭 갱갈과 젊은 연출가 알렉산드로 탈레비가 만나 당대 부조리한 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던 베르디의 정신을 새롭게 펼쳐낸다. 현대적 감각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무대에는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어둠의 세상, 부패한 사회를 상징하는 나이트클럽이 들어선다.

    만토바 공작은 나이트클럽의 오너, 리골레토는 그 클럽에서 쇼를 하는 코미디언이다.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에 의해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왜곡된 순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 연출가 알레산드로 탈레비는 10일 오전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 오페라는 어두운 요소와 색깔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하다. 이걸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백작이 권력을 누리고 있는 세상에서 살인과 폭력을 수면 위로 묶여져 보여줘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권력싸움은 계속되고 나약한 여성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목숨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고, 물질 만능주의가 극도로 심했다. 여자는 중간 지점 없이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 취급하거나 여신으로 우상화했다. 그런 사악한 분위기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현대적으로 연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탈레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출신으로 최근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각광받는 젊은 연출가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베르디가 표현하고 싶었던 어두움을 현대인들이 익숙한 범죄, 갱스터, 폭력적인 세상을 극적으로 옮겼다.

    "2가지를 중요한 포인트로 잡았다. 하나는 리골레토에서 볼 수 있듯 선하게 살고 있던 우리도 사악함이 내 얘기가 됐을 때는 남보다 더 사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부녀의 비정상적인 관계다. 사회 자체가 위협적이고 딸 질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과잉보호를 하고 되고, 결국 질다는 성숙한 여성으로 자라나지 못한다. 딸을 너무 사랑하지만 궁극적으로 딸을 파괴하게 된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곳곳에 비극적 스토리를 뛰어 넘는 아리아로 가득하다. 1막에서 청순한 질다가 부르는 '그리운 이름이여', 3막에 나오는 만토바 공작의 바람기가 잘 드러낸 노래 '여자의 마음' 등이 귀에 익숙하다. 이 아리아는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 모두 자연스럽게 극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알랭 갱갈 지휘자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베르디의 '일트로바토레','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작품이다. 현재 '리골레토'의 음악이 평범해보일 수 있지만 당시는 상당히 앞섰다. 원작에 등장하는 4명의 개성 강한 인물들을 표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베르디는 음악을 통해 실현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편의 작품들과 다르게 '리골레토'는 먼저 큰 장면이 나오고 다음에 아리아와 2중창이 이어진다. 예전의 형식을 반대로 뒤집은 획기적인 시도"라며 "무엇보다 베르디는 성악가들을 위해 이 오페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보이스의 개성이 뚜렷하다. 이런 면에서 캐스팅이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주인공 '리골레토' 역은 바리톤 데비드 체코니와 다비데 다미아니가 나눠 맡는다. '질다' 역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주역으로 활약 중인 소프라노 캐슬린 김, 화려한 외모와 탁월한 실력의 신예 제시카 누초가 더블 캐스팅됐다. 국립오페라단과 꾸준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테너 정호윤과 신상근은 '만토바 공작'으로 분한다.

    데비드 체코니는 "지금까지 리골레토 역을 약 80번 정도 연기했다. 할 때마다 특별한 게 있을까,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 작품은 구식적인 방법에서 한 번 먼지를 털어내는 인상을 받았다.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젊고 신선한 느낌의 리골레토를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전했다.

    관람료 1만~15만원. 문의 02-580-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