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1주년 공연, 배삼식·최우정·정영두 의기투합
  • 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의 삶이 한 편의 음악극으로 되살아난다.

    서울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 김정승)은 자체 제작 브랜드 공연 '적로-이슬의 노래'(이하 '적로')를 11월 3일부터 24일까지 선보인다.

    음악극 '적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 두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다. 우리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두 예술가의 불꽃같은 삶과 예술혼을 담는다.

    김정승 예술감독은 16일 오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위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잘 모르는 예술가들을 소재로 극을 만들어서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박종기와 김계선은 삶과 음악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제강점기 돈화문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한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박종기는 대금 산조의 창시자로, 뛰어난 가락구성과 재기 넘치고 현란한 리듬이 매우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며, 진도아리랑을 창작했다. 김계선은 조선정악전습소 회원으로, 이왕직아악부의 간판스타였다. 그는 궁중의 악사 신분으로 민요, 무기반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 '적로'는 방울져 떨어지는 이슬,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소리'를 찾아 평생을 떠돈 사람들, 필멸의 소리로 불멸을 붙잡으려 헤매며 한 생을 지나갔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삼식 작가는 두 명인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상상력을 덧붙여 극적 인물로 재창조해 따뜻한 인간애를 그려낸다. 최우정 작곡가는 전통음악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스윙재즈 등의 대중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배 작가는 "음반 목록을 보면 박종기와 김계선이 함게 연주한 기록이 남아있고, 당대 내로라하는 두 사람이 서로 몰랐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적로'는 빼어난 예술가들의 업적을 기리는 작품보다는 모든 인간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즉 삶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마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종기 명인은 항상 술에 취해서 녹음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짐작컨데 순간에 만들어지고 동시에 사라져야하는 소리, 음악을 붙들어놓는 것을 멋쩍고 불편해했던 것 같다. 극은 두 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이지만 불멸의 예술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의 고뇌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적로'는 돈화문국악당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내놓는 브랜드 공연이다. 지난해 9월 1일 개관한 돈화문국악당은 서울 남산국악당과 국립국악원에 이어 건축된 국악 전용 공연장이다.

    돈화문국악당은 마이크나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건축음향(자연음향)을 들을 수 있다. 이에 140석의 소규모를 유지해 음향을 최대한 살렸다. 공연장 천장에는 나무로 된 흡음판과 반사판을 설치해 국악에 알맞은 음역을 객석으로 전달할 수 있게 설계했다.

  • ▲ 왼쪽부터 배삼식 작가·최우정 작곡가·정영두 연출.
    ▲ 왼쪽부터 배삼식 작가·최우정 작곡가·정영두 연출.
    최 작곡가는 "공연장이 작기 때문에 음악의 바탕은 신디사이저다. 스피커를 골고루 배치해 키보드 소리만 전체 공간을 휘감고 대금, 클라리넷, 아쟁 등 다른 악기들은 한쪽에 배치할 계획"이라며 "배우들이 힘들다고 악기의 소리를 줄이지는 않을 거다. 배우들은 악기와 싸워서 뚫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정영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각종 무용, 연극, 뮤지컬의 안무, 연기, 연출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전방위 예술가이다. 그는 "극을 올리기에 한계가 있는 작은 극장이지만 객석과 가까워 아늑하다. 음악이 주는 분위기와 소도구, 연기자의 섬세한 움직임 등으로 저만의 색깔을 드러낼 예정이다"고 했다.

    주인공 '박종기'와 기생 '산월'은 소리꾼·가객(정가) 출신의 안이호와 하윤주가 각각 연기한다. '김계선' 역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신예 정윤형이 발탁됐다. 박종기 명인의 대를 잇는 그의 고손자 박명규(대금)를 비롯해 한림(아쟁), 김준수(타악), 이승훈(클라리넷), 황경은(건반)이 연주한다.

    정 연출가는 "대본 안에 본인의 삶을 풀어내는 장면이 있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닌 선택을 받았구나를 느낀다. 소리가 나를 택해서 내 몸을 빌어 나오는 것 같다. 단순히 세 배우에게 맡기기도 하지만, 시선이나 작은 손짓 등을 통해 각 인물의 감정과 헛헛함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음악극 '적로'는 서울돈화문국악당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티켓에서 예매할 수 있다. 관람료 전석 2만원. 문의 02-3210-7001~2.

  • ▲ 왼쪽부터 배삼식 작가·최우정 작곡가·정영두 연출.
    [사진=세종문화회관 돈화문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