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2주년 기념] 文정부 바람직한 외교안보 전략은?

‘머리 위 핵폭탄’에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한국

[창간 12주년 기념] 文정부 바람직한 외교안보 전략은? ②언론도 말하지 않는 한국의 위기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0.21 09:00:02
  • 메일
  • 프린트
  • 작게
  • 크게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구글플러스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
  • 네이버블로그 공유
  • 전경웅 기자
  • enoch2051@hanmail.net
  • 뉴데일리 통일·외교부장입니다. 통일부,외교부,북한,국제 분야를 담당합니다.

    저의 주된 관심은 '국익보호'입니다. 국익보호와 관련된 이슈는 국제관계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국내의 어두운 세력들이 더 큰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알려주는 정보가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19세기 말 조선과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국내 문제다. 다만 큰 차이는 과거의 조선은 ‘하나’였지만, 지금은 북한과 한국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서로 적대적 관계라는 점이다.

한국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외적 공조 관계 부실, 국내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대립까지 겹쳐 있다. 북한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사회 계층·연령·지역·정치 성향별 대립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北핵무기·탄도미사일, 왜 세계평화 위협이 될까?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이 한반도 또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국한된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세계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주권을 지키기 위한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과 달리 관련 기술이 시리아,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터키 등 다른 나라에 퍼진 흔적들이 많기 때문이다.

1998년 5월 31일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전후 서방 정보기관들은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라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전병호 北노동당 군수담당 비서 간의 커넥션에 주목했다.

서방 정보기관이 입수해 美씽크탱크에 뿌린 칸 박사와 전병호 비서 간의 서한을 보면 “파키스탄 군부 지도자에게 보낼 수백만 달러의 뇌물과 노동 미사일 부품을 비행기로 보내니, 여기에 핵무기 관련 장비와 부품을 실어서 보내 달라”고 돼 있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후 칸 박사의 진술을 통해 파키스탄이 핵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에게도 시설 견학을 허용했으며, 그 대가로 탄도미사일 기술을 얻은 것을 밝혀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이후 2001년 ‘9.11테러’가 터지자 親서방적 행보를 보여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기술 습득 의지는 집요했다. 이후에는 이란, 시리아와 함께 공동 핵무기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기술과 기술자를, 시리아가 장소를, 이란이 자금을 대는 ‘공동 핵개발 커넥션’은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에 의해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미국 등 다른 서방 강대국, 중국 등과 상의했으나 무시당하자 2004년 4월 北용천역 열차 폭발을 일으켰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열차에는 핵무기용 플루토늄 55kg과 핵무기 관련 장비, 시리아의 핵 과학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용천역 폭발로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북한과 시리아, 이란 간 커넥션은 계속된다. 이스라엘 모사드의 첩보 수집 결과 북한은 시리아에 스커드 미사일 60여 발을 비롯해 다양한 무기와 관련 기술을 팔았고, 시리아는 북한에 자금과 함께 舊소련제 무기를 넘겼다. 이란은 북한과의 핵개발 이외에도 ‘연어 급’ 잠수정과 초공동 어뢰, 탄도미사일 기술을 팔아넘겼다.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일어난 일이다.


북한은 2004년부터는 버마에도 핵무기 개발 기술을 팔아넘긴다. 이 내용은 2011년 11월 25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당시 VOA 보도에 따르면, 리처드 루거 美 공화당 의원(당시 美상원 외교위원회 간사)이 “2006년 버마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정부 당국에 넘겼다”고 밝혔고, 美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또한 2011년 1월 “버마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원자로를 도입하려다 실패하자 2004년부터 북한과 손을 잡고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美외교 기밀 가운데 미얀마 주재 美대사관이 2009년 8월 7일 美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버마의 지하 비밀 핵시설에 북한인 300여 명이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버마는 네윈 체제가 끝나고 아웅산 수지 여사가 권력을 잡은 뒤에야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시리아의 경우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으로 2007년 9월 핵시설 자체가 사라졌지만, 파키스탄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이란은 2016년 7월 31일 ‘핵무기 중단 합의’를 했지만 여전히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 국가 외에 브라질, 베네수엘라 또한 북한으로부터 기술과 인력을 제공받아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는 소문이 나돈 적도 있다.

이처럼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면서, 한국과 미국, 일본을 협박하는 한편 반미·반서방 성향의 제3세계 독재 정권들에게 관련 기술과 무기를 팔아넘기는 짓을 해왔다.


북한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북한이 1970년대부터 반미·반서방을 앞세운 중동 이슬람 테러조직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아프리카의 공산주의 독재정권과 손을 잡고 자유 반군을 소탕하는데 앞장섰다. 북한은 심지어 수단, 리비아 등에서 테러조직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이런 ‘테러 육성사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2017년 2월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하마스와 같은 테러조직들에게 舊소련제 9K-111을 카피한 ‘불새 2호’ 대전차 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2016년 2월에는 제임스 클래퍼 당시 美국가정보장(DNI)이 美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 정정이 불안한 지역의 무장 세력들에게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MANPADS)’을 판매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북한으로부터 소형 미사일과 자동화기, 개인화기 등을 구매하는 조직들은 국가 간의 정상적인 무기 거래가 불가능한 테러조직, 공산주의 반군조직, 독재정권 등이 대부분이다. 이런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우리 주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믿어야 할까.

북한 핵무기·탄도미사일 위협에 무심한 한국사회

이처럼 북한은 헐리우드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세계적 악당’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천하태평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쏘아도 “어, 전쟁 날려나” 정도의 반응이 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마치 일본 네티즌이 자국을 비웃듯 한반도 전쟁을 희화화하거나 장난스럽게 표현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까지 가지 않더라도 EU 회원국이나 북미, 남아시아 등이었다면, 사회 전체가 불안해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한국은 왜 이럴까. 그 원인을 두고 한국 언론과 학계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다양한 분석과 해법을 내놓았지만 맞아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이는 사실 언론과 전문가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밝혔다가는 자신들에게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해서로 보인다.


67년 전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사망하는 전쟁을 겪었던 나라가 핵전쟁의 위협에 무관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배금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기주의’ 탓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는 ‘원자 현미경적 시각’으로 사람을 나누고 분류하고 평가한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등 정치적 이념은 물론 집안 족보, 출신 지역, 졸업 학교, 고향, 보유 자산, 외모, 성적, 소속 조직 등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이를 동시에 적용해 남과 나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그 가운데 내가 제일 잘났다는 평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이용자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칼럼, 인문해설서, 사회과학서, 심지어 과학해설서까지도 ‘사실’의 전달보다는 “남들로부터 내가 잘났다는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굴종하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하다고 판단되면 인격적인 공격까지 퍼부어도 용서가 되는 듯한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거짓말 같은가.

운전을 할 때는 차종과 연식을 보고, 그 안에 탄 사람까지 판단하고, 백화점에서는 세일 때만 되면 호화 사치품을 사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해외여행, 귀금속, 사치품, 고급 수입차, 고급 식당 등에서 찍은 사진들로 가득 차 있다.


정부와 기업, 학교에서 직원이든 교육대상자든 사람을 뽑을 때 성적이나 자격증 같은 ‘스펙’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임에도 이를 본 지원자들은 ‘스펙’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취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사회를 욕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자기보다 성적이 낮은 사람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일부 젊은이는 자기보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사람들을 향해 "나도 성인인데 왜 반발하느냐"며 '꼰대'라 부르고 난리를 부린다. 그러는 사람들일수록 자기보다 10살 가량 어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존대말을 할 생각도 않는다. 아니, 나이를 확인한 뒤 한 살만 어려도 반말 짓거리다.

학계와 언론계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 확인’보다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사실’을 찾아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타 학자나 매체를 대놓고 공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언론의 경우 헌법 조문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인’ 기준을 여기저기 들이대면서도 정작 자신들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개인 사생활’과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언론, 학계, 전문직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사고방식도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보다 못 살거나 못 났거나 하면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보쉰의 책 ‘아큐정전’ 속 주인공처럼 ‘정신승리’에 빠진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인생은 한 방”이라며 각종 사행성 게임과 음주, 유흥에 빠져 산다. 그리고 목적만 달성하면 수단과 과정이야 어떻든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이런 행동들이 안보의식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생각과 “나는 나의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이라는 정신 승리에 빠지면, 모든 문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외부로 나타난 것이 소위 ‘갑질’이다.

‘갑질’은 단순히 직장 내에서나 서비스 업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가족 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사회와 국가를 향해서도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무를 하기는 싫지만 권리는 모두 챙기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행태가 정치인과 고위 관료, 재벌에서부터 급여 생활자와 자영업자, 생활보호대상자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국가를 대상으로 해대는 대표적 갑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년실업’과 ‘노인복지’를 강조하는 정치권과 언론, 학계의 행태다. 청년실업은 1997년 11월 외환위기 때 심각해진 뒤 계속 이어졌고, 노인복지는 한국에서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었다. 이것이 갑자기 국가적 문제로 부각된 이유가 대체 뭘까. 혹시 50대가 된 운동권 출신들이 곧 다가올 노후를 준비함과 동시에 자기 자녀들이 취업할 나이가 되자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킨 것은 아닐까.

‘안전제일 우리부대’와 임오군란 당시 구식군대

아무튼 현재 한국 사회는 19세기 구한말과 형식과 방향은 다르지만 사회적 분열과 대립 때문에 방어능력이 없는 상태다. 게다가 사회를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으면서 안보 분야와 사회 안전 분야의 공백은 심각한 수준이 됐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징병제를 도입한 나라 가운데 ‘가고 싶은 군대’는 존재한 적이 없다. 병역 기피는 오래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야 모병제를 실시한 미국 또한 병역 기피가 사회적 문제였다. 한국은 100만 병력을 보유한 북한과의 대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규모 병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냉전 당시에는 정부 예산의 30% 이상을 국방비로 사용해야 할 정도로 북한과의 대치는 국가적 부담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장병 개개인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해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국이 경제적 성장을 한 뒤에는 군인들에 대한 처우가 바뀌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군대는 곧 군사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자라온 사람들이 사회 주류가 되면서 ‘군대는 국민을 지키는 조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이런 인식은 그들 자녀들에게도 대물림 됐다.

그래서일까. 한국군 부대는 언제부터인가 ‘초전박살’ ‘일격필살’ 등의 구호보다는 ‘안전제일’을 외치기 시작했다. 한반도 적화를 목표로 하는 북한군을 ‘주적’이라고 부르지도, 한국과 일본, 미국을 향해 800여 발의 핵미사일을 겨누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도 ‘적성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거세된 군대’가 됐다. 군대의 전략전술 개발이나 새로운 전력 도입 또한 정치권의 이벤트에 맞추거나 군 지휘부가 국정감사나 국무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지스 구축함과 F-15K 전투기, 손원일 급 잠수함 등은 갖췄어도, 훈련예산 부족 탓에 실제 미사일과 표적기를 사용하는 실전적인 훈련은 찾아보기 어려워 졌다. 해군은 2차 세계대전 때에나 통하던 폭뢰 투하, 공군은 2.75인치 무유도 로켓과 500파운드 더미 폭탄, 육군은 전차와 자주포, 155mm 견인포, 구룡 다련장 사격으로 ‘화력 시범’이나 보여주고 있다. 전시 생존을 위한 참호구축이나 완전무장 장거리 행군, 모의전투훈련 등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예산으로 연 40조 원이나 쓰는데도 한국군이 그 모양인 이유는 군 간부들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전 상황’인 나라에서 국가 예산의 10% 미만, GDP 대비 3%도 안 되는 금액을 국방비로 사용한다는 것은 실은 비정상이다. 북한은 주민들이 굶는 상황임에도 최대한 많은 국가자원을 투입,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세계 1위다.


한국 사회에서 군인에 대한 처우 또한 문제다. 병사로 군대에 다녀오는 것만도 21개월의 인생을 헌납한 것인데, 이로 인한 기회비용 상실을 복구할 기회나 제도가 전혀 없다. 오히려 합법적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 교육이나 취업 등에서 더 많은 기회를 받고 있다. 게다가 예비군 훈련은 자기 생업을 포기하고 다녀오는 것임에도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는다. “전시에는 예비군이 한국군의 핵심 전력”이라는 것은 말뿐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군대와 경찰, 소방, 공공기관이 한 덩어리가 되어 전쟁을 비롯해 대규모 자연재해 등에 대비하던 민방위 훈련은 ‘민주화 정치인’들이 “군사정권의 색채가 짙다”며 없애 버렸다. 그 결과 국민들 가운데 응급처리 요령을 아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고, 핵전쟁 시 대피요령이나 생존요령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 됐다.

군대만 그럴까. 최근 경찰의 경우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보다 SNS에서 홍보를 잘하는 것이 진급에 더 유리하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경찰을 폭행하거나 괴롭히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소방관들은 인명을 구조해 놓고도 “집이 부서졌다”는 소송을 당해 자기 돈을 배상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경찰이 강력범을 잡고, 어떤 소방관이 목숨을 걸고 불 속에서 사람을 구하고 싶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시의 방어선’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령부 등은 최근 ‘적폐논란’으로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일부 간부에게는 구속 영장이 떨어졌다. 이는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숙청’이 보다 공론화되고 규모가 커진 것이다.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정보요원들에게 임무 수행의 책임을 물으니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그러니 안보기관 내에서는 스스로를 ‘돼지’나 ‘보통 공무원’이라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이런 한국 안보기관의 모습을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마치 구한말 새로 생긴 ‘별기군’에 비해 심하게 차별을 받다 폭발한 ‘임오군란’ 당시의 구식 군대를 보는 듯하다. ‘임오군란’은 조선이 나라를 빼앗기는데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안보기관들을 ‘임오군란 속 구식군대’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③일본의 우경화, 중국의 일인 독재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어집니다.

    • 전경웅 기자
    • enoch2051@hanmail.net
    • 뉴데일리 통일·외교부장입니다. 통일부,외교부,북한,국제 분야를 담당합니다.

      저의 주된 관심은 '국익보호'입니다. 국익보호와 관련된 이슈는 국제관계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국내의 어두운 세력들이 더 큰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알려주는 정보가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관련 키워드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newdaily.co.kr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Copyrights ⓒ 2005 뉴데일리뉴스 -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 청소년에 유해한 댓글 과 광고/반복게재 된 댓글은 작성을 금지합니다. 위반된 게시물은 통보없이 삭제됩니다.
    주간 핫 클릭
    정치
    사회
    연예
    글로벌
    북한
    주소 : (100-120)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5가 120 단암빌딩 3층 뉴데일리(주) | 등록번호: 서울 아00115 | 등록일: 2005년 11월 9일 | 발행인: 인보길 · 편집인: 이진광
    대표전화: 02-6919-7000 | 팩스: 02-702-2079 | 편집국: 02-6919-7053,7030 | 광고국: 02-6919-7008
    Copyright ⓒ Newdai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