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퇴' 기대했지만 돌아온건 '너죽고 나살자'… 원내대표 경선까지 간다
  •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시작됐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黜黨)을 추진하며 '친박 청산'의 칼날을 빼들자, 서청원 의원이 '녹취록'과 당대표의 자격까지 운운하며 맞섬으로써 홍준표 대표와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한 친박계 간의 사생결단의 막이 올랐다는 관측이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홍준표, 일단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미국 향했지만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 4박 6일 간의 미국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지난 20일 중앙당윤리위원회를 소집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탈당권유' 징계를 내린지 사흘 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출국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서청원 의원 등의 반발에 대해 "호가호위했던 분들"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국내 문제는 그 정도로만 답변드린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은 미국으로 출국하는 마당에 보도의 초점이 온통 당내 분란으로만 쏠릴 것을 경계한 발언으로 읽힌다.

    하지만 미국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면 당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黜黨) 마무리 절차부터, 서청원·최경환 의원 출당과 관련한 의원총회 소집까지 결국 당내 분란 수습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는 지적이다.

    ◆박근혜 출당, 최고위 의결 과정에서 파열음 들릴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과 관련해서는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의결을 거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한국당 윤리위원회 규정 제21조 3항을 보면, 탈당권유의 징계의결을 받은 자가 10일 내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제명 처분된다고 돼 있다.

    얼핏 보기에는 추후 별도의 의결 절차 없이 10일의 경과로 '자동 제명'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보다 강한 징계인 '제명'의 경우에는 같은 조 2항에서 "위원회의 의결 후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하도록 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탈당권유'를 최고위의 의결이 필요없다고 해석할 경우 하위의 징계인 '탈당권유'가 상위의 징계인 '제명'보다 더 효과가 강력해지는 모순을 빚게 된다.

    결국 3항은 윤리위의 별도 의결은 필요없지만 제명에 필요한 최고위 의결은 필요하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를 의식해 미국에서 돌아온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할 경우, 세(勢) 대결이 벌어지게 된다.

    최고위 구성상 의결을 이끌어내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김태흠·이재만 등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파열음을 우려해 최고위를 소집하지 않고 10일의 경과로 '자동 제명'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제명처분무효확인소송 등 법적 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은 홍준표 대표가 주도하는 출당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인명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인적 청산 시도에 반발해 의원총회에서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는 서청원 의원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은 홍준표 대표가 주도하는 출당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인명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인적 청산 시도에 반발해 의원총회에서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는 서청원 의원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자진 용퇴'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너 죽고 나 살자'

    평당원 신분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달리 현역 국회의원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제명은 의원총회를 소집해 의결해야 한다. 의결정족수도 평소보다 가중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을 같은 당의 동료 의원들이 제명한다는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홍준표 대표 측도 당초에는 '탈당권유'의 징계가 의결되면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알아서 탈당해, 무소속 상태에서 근신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이나 이정현 전 대표 등 친박 의원들이 실제로 탄핵 정국을 전후해 잠시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례를 따를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서청원·최경환 의원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서청원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준표 대표가) 야당대표로는 결격사유로, 당내 절차를 강구해나가겠다"며 "성완종 사건 수사 과정에서 내게 협조를 요청했던 증거를 대겠다"고 상황을 낭떠러지로 몰아갔다.

    둘 중 한 명의 정치생명이 끝나야 끝나는 사생결단의 싸움으로 비화하게 된 것이다.

    ◆녹취록, 있더라도 싸움 결판짓기에는 '역부족'

    홍준표 대표가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전개될 양 측의 '진검승부' 과정에서는 서청원 의원이 주장한 '성완종 사건 관련 녹취록'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서청원 의원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는 증거를 대겠다"며 녹취록의 존재를 시사하자,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윤모 씨는 서청원 대표 사람인데 왜 나를 물고 들어가느냐, 자제시켜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며 "협박만 하지 말고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해서, 회유를 한 것인지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인지 판단을 받아보자"고 맞받았다.

    이와 관련해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제3자인 국민의당으로부터 뜻밖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이날 법사위에서 "서청원 의원과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 간에 오간 대화는 '윤 씨가 진술을 번복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쌍방 및 제3자로부터 제기된 주장들을 종합해볼 때, 이른바 '녹취록'은 설령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싸움을 '결판'지을 수 없고 오히려 쌍방의 다툼을 이전투구 식으로 질질 끌게 만들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사태의 중심에 있는 윤모 씨가 서청원 의원과 '특수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윤 씨는 지난 2013년 서청원 의원에 대한 평전(評傳)인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 등을 집필했다.

    홍준표 대표는 "('서청원 사람인 윤 씨가 사실이 아닌 증언을 하는 것을) 자제시켜라"라고 말했다고 스스로 밝혔고, 서청원 의원은 이를 "협조를 요청했다"고 표현했다. 이용주 의원이 말한 "진술을 번복하게 해달라"는 것도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다르지 않다.

    녹취록이 공개되더라도 '윤 씨의 증언을 자제(또는 번복)시켜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발언에 불과할텐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나 다름없다. '윤 씨의 증언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오는 연말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의 대표주자로 출마가 유력시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오는 연말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의 대표주자로 출마가 유력시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연말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기준 카드'로 승부 걸 듯

    이 때문에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 간의 일전이 단기간에 결판이 나지 않고 장기전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홍준표 대표는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부결 우려 때문에 함부로 의총을 소집해 제명안을 표결에 부칠 수 없다. 그렇다고 서청원 의원이 홍준표 대표를 흔들 '비장의 카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연말로 예정된 한국당의 차기 원내대표 경선이 쌍방의 세(勢) 싸움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쌍방이 원내대표 경선에 대표선수를 내세워 '대리전' 성격의 일합(一合)을 겨뤄본 뒤, 승리를 거둔 측이 여세를 몰아 상대방을 강하게 압박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대표선수로는 부산 서·동구의 4선 유기준 의원이 몸을 풀며 등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기준 의원은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 관계로 해외에 공무 체류 중이지만, 귀국하는대로 정국에 관한 입장을 표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홍계는 누구 내세울까… 이주영? 주호영?

    이에 맞설 친홍계의 대표선수로는 여러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경남 마산의 5선 이주영 의원이 첫 순위로 거론된다. 이주영 의원은 홍준표 대표와 막역한 관계로, 홍준표 대표의 이번 미국 방문길에도 동행했다. 미국 방문 과정에서 원내대표 출마 여부를 둘러싸고 '교통정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구 수성을의 4선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를 내세우는 방안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과거 홍준표 대표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로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투톱'인 당대표~원내대표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기에도 적격일 뿐더러, 대표권한대행으로 바른정당의 '얼굴'을 맡았던 주호영 대표가 통합보수정당의 원내대표로 '수평이동'하면 보수통합을 대내외에 상징적으로 과시하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이라는 분석이다.

    이외에 같은 맥락에서 바른정당에서 돌아온 복당파 중에서 3선의 김성태·권성동 의원도 친홍계의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