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3개년 종합계획...전문가들 “학생 지도 포기하란 말이냐”
  •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모 국립대 윤리교육학과를 졸업한 김 모 씨는 현재 서울 소재 윤리(도덕)과목 기간제 교사로 재직하면서 올해 11월 임용고시에 응시할 예정이다. 그는 정교사가 된 후에도 학생들에게 틈틈이 올바른 언어 사용과 바른 행실 등을 가르쳐 도덕적 품성을 높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학생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토가 일상화되면서 교사의 역할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교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수업권·학생생활 지도권 등 ‘교권’은 시간이 흐를수록 추락하는데, 정작 교권을 보호해야 할 시도교육청은 ‘학생인권’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 조례’에 이어 일선 학교에, ‘학생인권 증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작, 배포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런 우려는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서울교육청은 2일 ‘학생인권종합계획’(2018~2020)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주요 내용은 △학생인권의 보장 △교육구성원의 인권역량 강화 △인권존중 학교문화 조성 △인권행정 시스템 활성화 등으로 크게 나뉜다.

    이 가운데는 ‘교권 보호’ 관련 내용도 있다. 다만 그 분량은 전체 34쪽 중 달랑 한 장에 그쳤다. 그 내용도 전담 변호사 확대, 교사를 위한 힐링센터 건립 등 현장 교원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책을 소개한 것이 전부다. 이들 정책은, 교실에서 학생들의 놀림감으로 전락한 교사들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공허할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만을 강조한 나머지 교권 실추를 교육청이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쿠션장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교육청은 학생인권 증진과 보호를 위해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대신, 문제 학생에 대한 상담과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희망교실도 매년 확대해 사제 간의 공감적 관계형성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2020년까지 주무부처와의 공청회, 토론회 등을 거쳐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장 전문가들의 우려는 매우 크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재임 시절 단행된 ‘체벌 전면금지’, ‘두발·복장 자유화’,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시행은 ’교권 무시‘, ’교권 실종‘이란 심각한 역기능을 낳았다.

    이들 정책 시행 직후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의 지시를 비웃고, 조롱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젊은 여교사에 대한 성적 희롱은 물론,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지도하던 교사가 욕설을 듣고 얻어맞는 사건도 발생했다.

    교권침해가 학생인권조례 시행 후 대폭 늘었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도 입증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조훈현 의원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에 접수된 교권침해 신고 건수는 학생인권조례 시행 전인 2010년 130건에 불과했지만, 조례 시행 후인 2012년에는 1,691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시교육청이 실실적인 교권 보호는커녕, 학생인권만을 내세우는 행태는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시교육청은 세부 가이드라인을 정해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학생인권 3개년 종합계획을 살펴보면, 그나마 남은 규제마저 대폭 풀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이 경우 가뜩이나 학생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는 일선 교사들의 수업권과 지도권 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뉴데일리>가 입수한 ‘가정통신문’을 보면, 서울 소재 모 학교는 두발과 복장을 규제하는 학칙 제·개정 과정에 학생의 참여기회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통신문에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 소지 및 사용에서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는 3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학생인권조례도 그렇지만 체벌 등을 ‘폭력’의 범주에서 바라보는 지침을 만든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교사보고 학생을 지도하지 말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조 대표는 “이미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후 교사들이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면서 “어떤 불이익과 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교총은 성명서를 내고 “전자기기 사용 등에 있어 학생의 사생활을 보장하도록 한 부분은, 수업 및 교육활동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다른 학생이 ‘온전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시교육청이 상벌점제를 손보겠다는 계획도 문제다.

    시교육청은 상벌점제의 대안으로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해, 처벌 위주의 지도에서 공동체성 강화 위주의 생활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학생이 학급규칙을 직접 제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상벌점제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폐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교총도 “수업규칙·학급규칙 제정을 통해 상벌점제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은 사실상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며, “증가하는 학교폭력과 교권침해에 교사가 대응할 수 있는 사실상의 최후 보루라는 점에서 확실한 대안도 없이 폐지부터 먼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시교육청이 제시한 학생인권계획 중 ‘소수자 학생 보호 항목’은, 향후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쟁점이다.

    서울교육청은 소수자 학생의 인권개선을 위해 교육청 차원의 상담시스템 마련, ‘학생 차별 예방 가이드’ 제작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에는 성적(性的)지향과 성별(性別) 정체성을 기준으로, 특정한 성향을 가진 학생이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부분을 문제삼고 있다. 교육청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국가가 나서 동성애를 조장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경자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장애인이나 다문화학생의 인권을 보호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며, “다만 소수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특정한 성적취향을 학생들에게 조장하거나 성 개념에 혼란을 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임신하거나 출산한 학생에 대한 인권보호 부분도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성숙한 아이들이 임신을 하거나 출산을 하는 경우, 무엇을 어떻게 지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학부모들이 2009년부터 반대해온 인권조례인데, 한술 더 떠 가이드라인까지 만들게 되면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교 학생들에게 참정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시교육청의 시각에 대해서는, “교실을 정치 투쟁과 이념갈등의 장(場)으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탄핵 정국에서 아이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다 보니까, 선거권을 줘도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불필요한 이념 갈등, 교단의 정치화를 막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대책을 먼저 검토하고 난 뒤에 만18세 선거권 문제를 논의하는 게 순서”라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교육감 선거 연령을 16세로 내리자는 주장은 (조희연 교육감이) 자기 표를 계산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