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는 원대 후보 저격, 원대 후보는 복당파 저격… 당직사퇴 소동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2011년 12월, 유승민·남경필·원희룡 최고위원의 동반 사퇴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이주영 의원과 텅 빈 지도부 좌석을 뒤로 하고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2011년 12월, 유승민·남경필·원희룡 최고위원의 동반 사퇴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이주영 의원과 텅 빈 지도부 좌석을 뒤로 하고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자유한국당이 원내대표 경선일을 확정짓고 2주 간의 레이스에 돌입하자마자, '콩가루'처럼 결속력을 잃고 바스러지고 있다.

    당대표가 특정 원내대표 후보를 겨냥한 '저격글'을 올리는가 하면, 또다른 원내대표 후보는 출마의 변에서 복당파 의원들을 '저격'했다. 이에 저격당한 복당파 당직의원이 사퇴하겠다고 발끈하는 등 불과 하루 사이에 엄청난 일들이 전개됐다.

    한국당은 28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차기 원내대표 경선을 내달 12일에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날부터 14일이 남은 만큼, 2주 간의 원내대표 경선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날부터 당내 분위기는 흉흉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내 개명(改名) 절차에 헛소문이 많다"며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어느 분이 자기가 내 이름을 개명해줬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처사"라고 밝혔다.

    이는 비박비홍(非朴非洪) 제3지대의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이주영 의원을 '저격'한 글이라는 분석이다.

    이주영 의원은 홍준표 대표와 청주지법 형사단독판사와 초임검사로 만났던 시절부터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이 시절 '홍판표'였던 이름을 지금의 '준표'로 개명을 권한 인물이 이주영 의원이었던 것으로 그간 알려져 있었다. 여러 차례 보도도 돼서, 정치권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개명 절차는 판사가 아닌 법원장 소관"이라고 해명했지만, 그간 알려진 사실도 이주영 의원이 홍준표 대표에게 개명을 권한 뒤 수락하자 법원장에게 양해를 구해 매듭을 지어줬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직접 개명해줬다고 한 적은 없다.

    뭣보다도 이주영 의원도 그 자신 서울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인데, 개명 절차가 판사가 아닌 법원장 소관이라는 것을 모를 리도 없는 것이다.

    역시 이 스토리를 잘 알고 있던 한선교 의원은 이날 원내대표 출마선언 직후 취재진과 만나 "여러 해 동안 여러 번 이야기가 나왔는데 (홍준표 대표가) 그동안 아무 소리도 안했잖느냐"며 "비겁한 행동"이라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대표가 굳이 수십 년도 더 지난 개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뭘까.

    그동안 여러 우회적인 경로로 이주영 의원을 공격하려 했지만 자꾸 다른 타겟을 공격한 것으로 해석이 잘못 나가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지도 않는 계파갈등을 부추겨 원내대표 선거에 나서려는 사람(25일 페이스북)" "아무런 소신없이 바람앞에 수양버들처럼 흔들리던 사람(26일 페이스북)" "'비빔밥식'으로 화합하자는 것은 안된다(27일 홍보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등 사흘 연속으로 이주영 의원을 공격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권에서 이주영 의원의 이미지가 워낙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로 형성돼 있다보니, 홍준표 대표가 지칭한 '그런 사람'으로 프레임이 씌워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러한 3연타를 주로 친박계 원내대표 주자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다.

  •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지난달 1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현안 브리핑을 마친 뒤, 자리에서 물러서 나오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지난달 1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현안 브리핑을 마친 뒤, 자리에서 물러서 나오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그러다보니 작심하고 이주영 의원을 흠집낼 방법을 찾던 중에 '개명' 건이 튀어나오게 됐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국당 핵심관계자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홍준표 대표의 '저격글'은 주변 측근들에게 '이주영 의원은 내편이 아니다'라고 못박아두려는 내부단속의 의도도 크다"고 귀띔했다.

    홍준표 대표의 주변 측근들 중에서 경상남도에서 오래 있었던 인사 일부는 홍준표 대표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힘을 싣는 후보보다, 경남에서 내리 5선을 하고 경남도 정무부지사도 지냈던 이주영 의원과 관계가 훨씬 두텁다.

    최근 일부 주변 인사들이 취재진을 만나 "(홍준표 대표가) 이주영 의원을 밀 수도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가고 일부에서 보도까지 이뤄지자, 작심하고 내부단속에 나섰다는 것이다.

    수십 년전 '개명' 이야기를 꺼내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것과 관련해, 이주영 의원 측은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이주영 의원은 이날 "(그 건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맞다"며 "대응하지 않겠다"고 자제했다. 다만 이주영 의원 측 관계자는 "비정하다"며 "이것이 정치인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이것이 정치인가'라는 말은 같은날 저녁에 반복됐다.

    홍준표 대표의 잇단 내부 공격에 불만을 품은 한선교 의원이 이날 오후 원내대표 공식 출마선언을 했는데, 한선교 의원은 출마의 변에서 "홍준표 대표가 사무총장을 비롯해 주요 당직과 수석대변인까지 복당파로 채웠다"며 "원내대표까지 복당파를 당선시킴으로써 사당화의 화룡점정을 찍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출마의 변 중 대부분은 홍준표 대표의 사당화와 언사에 대한 비판이었고, 복당파 비판은 그 중 일각이었는데 여기에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발끈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에 "마치 수석대변인이 감투인양 후배를 저격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하는 모습에 '이것이 정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지역구에 내려가 백의종군하겠다"고 사퇴를 선언했다.

    아울러 "자격없는 사람이 대표의 사당화를 위한 도구가 돼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한선교 의원은 우리가 복당하면 자신이 당을 나가겠다는 약속부터 지키라"고 꼬집었다.

    앞서 한선교 의원은 지난 5월초, 대선을 앞두고 13인 의원의 복당 신청이 있자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한 표가 황금 같은 가치가 있더라도 (이들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일괄 복당이 이뤄지면 내가 한국당을 떠나겠다"고 반발했는데, 이를 상기시킨 것이다.

    이러다보니 홍준표 대표가 뒤늦게 이날 저녁 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견제는 내가 아니고 문재인정권"이라고 했지만, 당대표 본인부터 특정 원내대표를 '저격글'로 견제하는 마당에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첫날부터 전후방이 따로 없는 난타전인데, 2주간 원내대표 경선을 치르는 동안 혼란의 끝이 어디일지 두려울 따름"이라며 "당의 결속을 이끌어낼 화합형 리더로 원내대표를 선출해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