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 확보 어려움 겪던 건설사들에 '단비'
  • 정부가 공공성이 강한 임대주택과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신규 택지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택지지구 지정이 한동안 없었던 데다 내년 이후 전망에 암운이 드리웠던 터라 건설업계에서는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늘어난 입주물량에 이들 물량까지 더해질 경우 일시적으로 시장에 물량이 많이 풀리면서 집값 급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또 이들 택지지구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택지로 공급되면서 앞서 '보금자리주택'과 같은 실패한 정책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연간 20만호씩 총 100만호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팀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 발표한 6·19대책과 8·2대책이 투기를 막기 위한 '수요 억제'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로드맵은 '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규제책만으로는 서울 등 인기지역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시장 논리 관점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할 경우 집값이 안정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 신규 공공주택지구 개발 등 공급 확대책을 꺼내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공공택지 확보안의 경우 건설업계 관심을 끌고 있다.
    국토부는 이미 77만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공공택지를 확보했고, 중장기적으로 택지를 여유 있게 확보하기 위해 내년부터 추가로 40여곳의 공공주택지구를 신규 개발해 16만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수도권에 10만호, 비수도권에 6만호를 건설할 수 있는 규모의 택지 확보가 추진된다.
    우선 성남 금토지구와 복정지구 △의왕 월암지구 △구리 갈매역세권 △남양주 진접2지구  △부천 괴안·원종 △군포 대야미 수도권 8개 택지와 경북 경산시 대임지구 등을 개발해 5만700호 규모 주택을 건설하기로 했다. 나머지 10만9300호가량이 건설될 택지는 내년 하반기까지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건설사들에게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그동안 수도권에 신규아파트를 지을 땅을 구할 수조차 없었는데, 이번 조치로 수도권에서 물량 확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건설사들은 택지 확보에 난항을 겪어왔다. 수도권은 여전히 주택수요가 많지만, 2014년 9·1대책으로 신규택지지구 지정이 잠정 중단되면서 주택을 지을 땅이 부족했다. 이에 건설사들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에 더욱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분기보고서 분석 결과 시공능력평가액 1조원 이상 34개 건설사 가운데 보유용지 현황이 공개된 21개사 중 10개사가 1년 사이 보유용지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롯데건설과 한양의 경우 지난해와 변동 없이 동일한 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사실상 절반 이상이 용지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에스동서가 지난해 3분기 4578억원에서 올 3분기 1887억원 규모로 58.7% 줄어들면서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으며 이어 △대우건설 -52.3% △금호산업 -34.4% △대림산업 -18.8% △KCC건설 -18.4% △현대산업개발 -14.0% 등의 감소폭이 컸다. 
    게다가 건설사들의 내년 전망이 기준금리 인상과 각종 규제책으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 해외사업 부진, SOC예산 감축 등으로 부정적인 상황이다.
    때문에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 물량을 수도권에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비'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A투자증권 건설 담당 연구원은 "이번 로드맵을 통해 공공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공공주택의 시공을 담당하게 될 일부 건설사들의 수주에 도움이 돼 외형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내년 경기지역 아파트 입주물량이 16만3000가구로, 올해보다 253% 늘어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라는 점이다. 이는 수도권 전체 입주물량(21만2500가구), 전국 입주물량(44만가구)의 37%가 일시에 쏟아지는 셈이다.
    '입주폭탄'에 더해 역대 최대 규모의 공적주택 확대 정책이 자칫 부동산 시세 급락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 전문위원은 "내년에 경기·인천 지역에서 입주물량이 하우스푸어 사례를 초래했던 2012년의 전국 입주물량보다 6300여가구가 더 많다"며 "공공물량까지 쏟아지면 경기와 인천 일부 지역은 단기적으로 물량 압박에 시장이 위축될 수 있고, 특히 소형 빌라나 다세대, 다가구, 오피스텔 등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민간과 공공의 주택공급 유형이 일치하면 결국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의 급격한 하락이 불가피한데, 전셋값이 받쳐주지 않으면 수분양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정상적인 분양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며 "일부 건설사의 경우 정부의 공적임대주택 확대 정책이 미칠 영향을 우려해 당분간 자체 분양사업은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들 신규 공급 택지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택지라는 점이다. 분양가상한제는 신규 분양주택의 고분양가로 인해 주변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주변 시세보다 낮은 분양주택이 공급되면 인기지역에서는 청약과열을, 주택시장이 침체된 지역에서는 집값 하락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주택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분양가 인하로 사업성이 떨어지면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분양가 인하가 주택품질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공급도 감소시키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MB정권에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공급했던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시세보다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민간 분양시장은 침체되고 공급도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초 총 150만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사업이 축소되거나 지구 지정이 해제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역대 모든 정부도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고 주거안정을 꾀하려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장밋빛 공급 확대안보다 공급자 중심의 부동산 특혜를 청산하고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