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국회의원의 품질

    창피한 한민족...北은 세습왕조, 南은 3류정치

    나라의 ‘격’을 생각할 때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이 국가의 이미지입니다.
    국가 이미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가 첫 손가락에 꼽힙니다.
    정치 체제가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고, 정치의 질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을 떠 올리면 외국인들은 희한하고 만화적인 폐쇄 체제를 연상합니다.
    21세기 시대에 아직도 왕조적인 “위대한 어버이 수령”과 “영용한 불세출의 지도자”를 노래하고, 20대의 젊은이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세습을 준비하는 체제를 믿을 수 없어 합니다.
    남한은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놀라운 경제 건설을 이룩한 나라로 주목받고, 촛불 시위와 월드컵의 폭발적인 열정을 가진 특이한 사회이고, 여성들이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으면서 셀 폰과 인터넷을 이끌어가는 우수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문화로 옮겨가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경제나 스포츠나 문화에서는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데 왜 정치가 3류, 4류에서 화제 거리로 회자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선 국회 폭력이 왜 자주 일어나느냐?"

    수년전 미국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어느 한인에게 동료 미국인 교사가 시카고 트리뷴에 게재된 사진 한 장을 오려서 내밀었다고 합니다. 여자 국회의원이 머리채를 잡힌 광경이었습니다.
    모욕감을 느낀 한인이 왜, 이런 사진을 나에게 가져다 주냐고 화를 내자 미국인 교사는 다소 당황해하면서 “네가 코리안이니까 재미있는 사진 같아서 그냥 보여준 것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미디어법 통과 때는 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이 망치를 들고 문을 부수고, 한미통상법이 통과될 때는 전기톱과 해머와 소화기까지 동원된 가운데 국회의원들이 떼를 지어 의장 단상 주변에서 난투극을 벌였습니다. 조직 폭력배들의 패싸움을 하는 것 같은 장소가 대한국민의 국회의사당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이런 장면을 해외에서 미디어로 지켜보는 심정은 부끄러움을 넘어서서 참담해 집니다.
    타문화와 타민족에 대해 관용을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한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의 이러한 정치 행태에 대해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지만, 대화가 진지해지면 조심스럽게 한국 정치, 특히 국회에 폭력이 잦은 원인을 묻습니다.

    저질일수록 투사 대접받는 건 구시대 유물

  • ▲ '공중부양'? ⓒ 뉴데일리
    ▲ '공중부양'? ⓒ 뉴데일리



    이런 질문을 한국인들에게 물으면 대답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국회의원 질이 낮아서” 그렇고, “국회의원이 국민들 수준을 못 따라가서” 그렇고, “저질 폭력문화가 습관화가 돼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해답은 아는데도 저질 국회와 폭력 국회의 문제는 풀려지지 않고 만성적인 중병으로 되어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김형오 국회의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김형오씨! 똑바로 하세요” 라고 소리치고, 국회의장을 “청와대 용역 깡패, 사기꾼” 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회의원이기 전에 인간의 질이 떨어지는 이런 국회의원이 야당에서는 값이 많이 나가는 투사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모양입니다.
    국회의원의 투사적인 혈기가 높이 평가되었던 정치 암흑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저항이 미덕이었던 독재시대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21세기입니다. 국회의원들은 과거 독재시대의 투쟁적 언어와 사고와 몸짓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도끼 들면 살인 미수범으로 체포

    미국 의회에서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이 있어도 의장석을 점령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고, 의원이 망치를 들고 의사당 건물을 파괴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도끼를 들었다면 살인미수범으로 체포되었을 것입니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품위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자질로 대두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절제력입니다.
    공석에서는 ‘템퍼’(Temper)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질, 기질, 분노라는 뜻을 가진 ‘템퍼’는 공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애국심과 신념이 강하고 열정이 많거나 무지하고 단순할수록 ‘템퍼’가 많고, 자제력을 잃기 쉽습니다. 그만큼 나라를 사랑하고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이 방법만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애국심과 신념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내가 비판하는 상대방도 나와 비슷한 애국심과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국회 의사당은 계속 폭력과 싸움이 점철되는 거리의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좌절과 도전, 타협할 줄 모르면 민주주의 무자격자

    민주주의는 좌절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인데도 상대방이나 국민들이 이것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방법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에 성질 같아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방법을 관철시키고 싶고, 상대방의 법안을 폭력적으로라도 막고 싶지만 이것은 유혹이고 탈선입니다. 내 방법을 관철시키거나 상대방 법안을 막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게 되면, 이미 내가 주장하는 가치와 신념의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폭력적 항의는 가장 저질의 정치 행태이기 때문에 애국이나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은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독재와 싸웠던 저항시대에 각광받던 용기이지 민주주의 시대에는 폐기처분해야할 구시대 산물입니다. 민주주의는 타협과 협상이고, 이것이 가능치 않으면 표로 대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뜻대로, 내 애국심과 내 신념의 방법만으로 일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고, 이것이 민주주의가 주는 좌절이자 도전입니다.

  • ▲ 절제와 품위, 협상과 타협의 민주주의 상징 미국 국회의사당.
    ▲ 절제와 품위, 협상과 타협의 민주주의 상징 미국 국회의사당.

    공화당, 오바마 의료개혁 반대...고함소리도 없이 통과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국 상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의료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격렬한 논쟁과 대립을 불러일으킨 법안 중에 하나입니다. 이 법안은 민주당으로서는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고, 공화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법안”이고, “미국 의료정책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법안”입니다.
    공화당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법안 통과를 막으려 했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 얼굴에 히틀러 콧수염을 그린 피켓을 들고 “오틀러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시위를 했지만 법안은 통과되었습니다.
    농성은 물론이고 고함 소리조차 없이 조용하게 통과되었습니다. 민주당은 희색이 만면했고, 공화당은 침통했습니다. 이 태도가 국회의원의 ‘격’입니다. 표로 대결하는 것이 국회의 철칙입니다.

    의석 모자라 필리버스터도 못하는 공화당

    의료 법안을 반대하는 공화당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한국 국회의원들처럼 의장 단상을 점령하고 문이라도 때려 부수고 싶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고 하지 않는 것이 미국 의회의 전통과 긍지이고 ‘격’입니다.
    상원에서 반대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필리버스터’(filibuster)입니다. ‘의사 진행방해’라고 하는 필리버스터는 법안이 정해진 회기동안 표결에 붙일 수 없도록 반대 의원들이 나와서 계속 연설을 하는 것입니다. 
    필리버스터를 하려면 미국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41명을 확보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 공화당은 40석 밖에 없어서 이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화당으로서는 참을 수 없지만 민주당의 의료 개혁안 표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를 기다려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내 신념을 위해 민주주의 제도에 상처를 주고 과정을 병들게 하면 결국은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140년전 미국 국회폭력...지팡이로 때려 제명-재판

    미국 의회도 폭력시대가 있었습니다.
    1854년, 미국의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이 노예제도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을 때 북부지역 마사추세츠 출신 상원의원 찰스 섬너가 의회에서 노예 해방을 역설하는 연설을 하면서 노예 해방을 반대하는 동료 상원의원인 남부지역 사우스 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앤드류 버틀러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버틀러는 노쇠하고 병들어서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분개해서 버틀러 상원의원의 사촌인 프레스톤 브룩스 하원의원이 지팡이로 섬너 의원을 때려서 섬너 의원은 중상을 입고 3년간 의사당을 비워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폭력을 행사한 브룩스 의원은 의회에서 제명되고 재판을 받았으나 노예제도를 지지했던 남부지역에서는 영웅대접을 받고 주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다시 의원으로 뽑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 의회는 격조 있고 품위 있는 정치 토론장으로 변했습니다.

    '거짓말장이' 말했다가 사과하고 견책 당해

    얼마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개혁 법안 호소를 위해 의회에서 연설할 때 공화당 의원이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 장이”라고 말했다가 사과를 하고 견책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이 의사당 안에서 폭행이나 집단 농성은 물론이고 언어적인 폭력을 허용해서도 안 됩니다. 나라의 법을 만드는 국회는 정치의 신성지역입니다.
    모든 분쟁을 최종 결정하는 대법원도 결국은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서 판결합니다.
    판결은 판사가 하지만 법은 국회의원이 제정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의사당에서 폭력이나 법을 어기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사오입’이라는 얼룩진 법안 통과에서부터, 날치기 통과, 의원 폭력, 의원들 집단 난투극 등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국회가 이제 한국의 성장 규격에 맞을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합니다. 한국 국회가 국민 수준과, 경제와 문화 수준과 동등할 수 있도록 탈바꿈하는 제도적 장치를 해야 합니다.

    법을 깨는 국회의원이 법을 만든다?

    망치를 들고 기물을 파괴하는 국회의원을 다시 국회로 보내서는 안 되는 단호한 의지를 국민들이 보여줘야 하고,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은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국회의원들이 품위와 품격을 유지하지 못할 때는 국회의장이 질서권을 발동해서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강제력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떼거리 의원들은 이것을 반민주적이라고 격앙하겠지만 질서를 지킬 줄 모르는 미성년자 국회의원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품격을 높이는 것입니다. 격렬한 찬성과 반대의 최종 결정은 표로해야 하고, 최종 심판은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하게 해야 합니다. 국민이 원하지 않고, 나라의 방향을 잘못되게 끌고 가는 법안을 제정한 당은 선거에서 국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국회는 법의 산실이고 법치주의 근간입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국민들이 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한국 정치의 격을 높이는 첫 단계입니다.

    미국 유권자는 국회의원 학력 무관심...성실성 따진다

    미국에서 의원 선거를 할 때 학력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권자들은 학력에 관심이 없습니다. 후보자가 어떤 품격과 자질을 가졌고, 어떤 정책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성실성과 헌신성을 가졌느냐를 눈여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