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에서 메이둠까지 세계 최대의 공동묘지

    고대 이집트인들은 해가 뜨는 나일 강의 동안을 「산 자의 땅」으로 아크로폴리스 acropolis라고 불렀으며 그곳에 왕궁과 신전을 지었다.
    해가 지는 나일 강의 서안은 「죽은 자의 땅」으로 네크로폴리스 necropolis라고 불렀으며 그곳에 무덤과 장제전을 두었다.

    카이로에서 남서 25㎞, 기자의 세 피라미드를 지나 나일 강을 남으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 왕조의 첫 왕도 멤피스Memphis에 이른다.
    멤피스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90㎞에 이르는 사막지대가 「피라미드 지대Pyramid Fields 」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이다.

    이 일대에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왕비, 왕족, 귀족들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으며
    1972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멤피스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 피라미드로 유명한 사카라, 북쪽에는 태양신전 유적이 있는 아부시르와 세 피라미드로 유명한 기자,
    남쪽에는 굽은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가 있는 다슈르 그리고 무너진 피라미드가 있는 메이둠이 있다.

  • ▲ 낙타 산책 (피라미드 지대) 
    ▲ 낙타 산책 (피라미드 지대) 



    영생의 내세는 어디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뒤에 재생·부활하여 내세에서 영생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내세에서 살 집이 필요했다.
    그것이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처인 무덤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내세가 하늘에 있다고 믿었고,
    나중에는 서쪽 사막너머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일 강 서안의 농경지대가 끝나고 사막이 시작되는 경계에 무덤을 만들고 이것을 내세로 가는 기점으로 삼았다.

    무덤은 오래 보존될 수 있도록 돌로 만들었다.
    내세에서도 현세와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덤은 생전에 살던 집과 유사하게 지었다. 그리고 그 안에 응접실, 거실, 침실, 널방을 두고 여러 부장품을 함께 묻었다.

    고대의 무덤은 선사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사막의 모래를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간단한 부장품과 함께 유해를 묻었다.
    유해는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자연히 미라가 되었다.

    생전의 집과 똑 같이...진흙벽돌에서 돌로

    왕조시대의 초기에는 위가 평평한 직사각 모양의 무덤을 만들고 그 지하에 유해를 안치했다. 이 무덤의 겉모양이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와 비슷하다 해서 아랍어로 마스타바Mastaba라고 불렀다.
    이것은 지하에 널방이 있고 지상에 제사를 지내는 예배실이 있는 직사각모양의 무덤 집이었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살던 집과 유사한 모양으로 지었다.
    마스타바는 햇볕에 말린 진흙벽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풍화되어 대부분이 없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사카라에 있는 제1왕조의 파라오 아하의 마스타바이다.

    고왕국시대의 초기에는 파라오의 무덤은 돌로 만든 마스타바를 몇 개 쌓아 올려 미완성된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이다.
    그 후 파라오의 무덤은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로 발전했다.
    다슈르에 있는 굽은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가 최초의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이다.

    뒤이어 다슈르의 붉은 피라미드처럼 정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가 건조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기자의 세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의 건조는 고왕국의 제4왕조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돌로 만든 거대한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가 등장하면서 마스타바는 왕족과 귀족의 무덤이 되었다.

  • ▲ 선사시대 무덤속 유골. 사막에 구덩이를 파고 묻은 유해는 자연 미라가 됨. 
    ▲ 선사시대 무덤속 유골. 사막에 구덩이를 파고 묻은 유해는 자연 미라가 됨. 



    룩소르 '왕들의 계곡' 암굴 무덤들

    중왕국시대에도 피라미드는 계속 건조되었다.
    그렇지만 그 규모가 작아지고 돌 대신에 주로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로 만들었다.
    신왕국시대에는 막대한 재정 부담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피라미드 대신에 암굴무덤으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것이 룩소르의 나일 강 서안에 있는 왕들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의 무덤으로 사막의 바위 계곡에 굴을 파서 암굴무덤을 만들었다.

    이 시대의 특징은 피라미드와 장제전이 함께 있는 피라미드복합체를 이루지 않고 장제전이 무덤과 떨어져 있었다.
    이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무덤의 위치를 못 찾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기파랑(02-763-8996)의 <이집트의 유혹> 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