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서 궁금한 점들(1)

     

    1. 왜 지난 일을 되돌아 봐야 하나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는 2008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왜 지금 그 문제를 거론하는가’라고 의문을 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대한민국내 심각한 갈등현상은 이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사건, 4대강 개발, 세종시문제 등 새로운 소재가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정치세력간 갈등으로 국회도 무력화되어 있고, 사법부도 잇단 좌편향 판결로 제기능을 의심받고 있다. 기업은 물론 공직에서 조차도 갈등현상이 상당한 상황이다. 언론간, 언론 내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각종 국가정책을 둘러싸고도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갈등하여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앞으로 올해 지방선거, 2012년 총선, 대선 등을 앞두고 더욱 치열한 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분열과 갈등으로 성장동력을 갉아먹고 있고, 장차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깊어지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러한 갈등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갈등을 하는 그룹간 내세우는 나름대로의 논리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밑바닥에는 서로간 불신하는 사상그룹간 갈등이 가로놓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중반경 대한민국을 3개월간 달구었던 광우병 파동은 미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높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근저에는 사상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 하고, 국민들이 행복한 삶의 질이 보장되는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들 저변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상갈등의 근원과 대책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몸에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병의 원인을 찾고 그 처방전을 받아야 하듯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갈등의 원인을 찾고 이에 적합한 처방전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2008년도를 강타한 촛불시위는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갈등의 원인, 그에 맞는 처방전을 내리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촛불시위의 다양한 측면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2008년 촛불시위는 특이한 역사적 사건

    2008년 5월에서 7월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특이한 경험을 한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출범(2008.2.25)한 후 불과 2개월 이후부터 3개월간 한국 전역에 촛불시위라는 광풍이 몰아친 것이다. 경찰 등 공권력은 무력화되어 대응능력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고 대통령직선제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싶은 간절한 국민적 여망이 분출하였던 1987년 6·10항쟁 이래 최대의 반정부적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때 정부대표단은 4월 18일 미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타결지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졸속협상론, 광우병 위험성 제기 등 일부 부정적 여론이 있었지만 촛불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4월 29일 MBC-PD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이 방영된 후 인터넷을 통해 악성 괴담이 급속히 확산되더니 5월 2일 첫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괴담의 정도도 더욱 심해졌다. “소를 이용해 만드는 라면·캡슐약·과자 등 식품은 물론 화장품·생리대·기저귀 등 600가지 제품을 사용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 “광우병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에 의해 수돗물까지도 오염된다” “미국 내 치매환자가 약 500여만 명인데, 이중 25-65여만 명이 인간 광우병으로 추정된다” 등이다.

    학생 전용 카페들에서도 미국소는 곧 미친소이며 미국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으로 죽는다는 공포가 가득했다. 어린 학생들이 “광우병 때문에 죽는 게 억울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꿈도 못 이루고, 이제 막 공부 시작할 나이인데” “광우병 걸리면 100% 죽는다는데, 난 아직 살길이 많이 남았어요” “나는 죽기 싫어요. 아직 인생의 1/5도 못 살았어요”라는 등 불안 심리가 만연하였다.

    광화문 등 도심의 거리들은 촛불로 넘쳐났다.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판단력이 미성숙한 어린 초등학생들도 촛불을 들고 나섰다. 유아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도 있었다. 촛불시위를 촛불축제로 생각하고 나온 것으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촛불시위가 과격한 시위로 변질하여 시위대가 청와대 진격을 시도하고, 경찰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서로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하였다. 

    언론의 과잉 보도와 인터넷을 통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던 촛불시위는 우리사회에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우선 경제위기와 국민들의 이념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할 구심체인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가 크게 손상되었다. 2개월간 진실로 건강을 염려하여 촛불시위에 동참했던 어린 학생들도 상처를 입었다. MBC-PD수첩의 왜곡 보도를 사실로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심어주었다. 한편으로는 촛불시위대에 무기력한 경찰이나 정부의 대응을 경험하면서, ‘시위를 하면 정부가 꼼짝 못하는구나’ ‘대통령을 욕해도 되는 구나’ 등을 가르치는 생생한 현장교육 장소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 촛불시위의 정체는 무엇일까. 2개월간 나라를 혼동 속에 몰아넣고 홀연히 사라진 촛불. 고속도로 상에서 60중 추돌사고를 유발한 후 종적도 없이 사라진 아침 안개가 아닐까. 계기가 되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날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안개의 본질을 파헤쳐야 한다.

    2008년 촛불시위의 발생·확산·소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한국 내에 내재되어 있던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MBC-PD수첩의 왜곡 보도, 반미감정, 인터넷의 발달, 좌성향 세력의 개입, 북한의 전략전술, 국민들의 정서적 측면 등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촛불시위에서 궁금한 점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시발로 한 반미·반정부 촛불시위는 2008년 5월 2일 첫 번째 시위가 일어난 이후 2008년 8월 15일 백 번째 시위로 대체적인 막을 내렸다. 2002년 여중생(효순·미선) 미군장갑차 압사사건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는 2008년 미쇠고기 수입협상을 계기로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단군이 이 땅에 국가를 세운 이래 최대의 촛불이 동원되었다. 그 피해 규모는 수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8년 미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대해 궁금한 점을 열거해 본다.
    첫째,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일으킨 계기는 MBC-PD수첩의 왜곡 과장 보도였다는데, 무엇을 어떻게 왜곡·과장 보도했다는 것일까.

    둘째, 촛불시위에는 반미감정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반미(反美)라면 몇 달씩이라도 촛불시위를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 왜 반북·반중·반일 행사에는 촛불시위를 하지 않는 것일까.

    셋째, 2008년 촛불시위에서 인터넷은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앞으로 국가 정치·정책에 어떤 긍·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가.

    넷째, “촛불시위는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문화축제다” “아니다. 좌성향 세력이 주동한 반정부·반체제 시위에 일반 시민들이 말려든 것이다” 도대체 어느 말이 맞는 것일까.

    다섯째, 국민들은 MBC-PD수첩에 자극받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는데, 우리 국민들의 성향과 관계는 없는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