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장군님 접견해야 대통령 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집권을 노리는 여.야당의 주요 정객들이 북을 방문해 장군님의 접견을 받아야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북한의 대외홍보용 주간지 통일신보(7월 8일자)의 내용이다. 북한의 상투적 선전선동 문구일 뿐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대선 주자들은 물론이고 여야 정치인들은 '장군님 접견'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의 기피 인물'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

    더 들여다보자. "남에서 '북남 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한.미 공조'주장을 압도하고 있다""6.15선언 이후에는 각계각층이 미국을 '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로 여기고 있다"는 대목도 있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북한이 어떻게 이 정도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신기하다. 하기야 북한인들 왜 모르겠는가. 전교조 홈페이지에는 북한을 찬양하는 글들이 널려 있고, 정부는 친북 사이트에 대해 통제하는 시늉만 하는데 말이다. 한.미 FTA 협상이나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 미국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폭력시위를 벌여서라도 훼방 놓는 세력도 적지 않다.

    북한이 우리 통일부 장관의 목숨을 좌지우지한 지 꽤 됐으니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하다. 북한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북한에 큰소리친 통일부 장관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의 고압적 태도에 결렬을 선언하고 돌아온 홍순영 통일부 장관의 설명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분노와 북한의 거부 반응 때문에 대통령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임동원 통일특보를 통해 사표를 내야 했다"고 전했다. 2004년 2월 13차 장관급회담이 열렸을 때 북한의 김영성 내각책임참사가 모두발언에서 "남측이 해준 게 뭐 있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정세현 장관은 회담 내내 눈을 감고서 대꾸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 후 북한이 불만을 표시했고 정 장관은 몇 달 뒤 교체됐다.

    2004년 7월 취임한 정동영 장관은 문익환 목사의 부인이 북한의 김일성 사망 10주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막았다 해서 속된 말로 북한에 찍혔다. 이후 정 장관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격에 맞지 않는 개성공단 행사에 참석하는 등 북한에 '성의'를 보였다. 1년 가까이 지난 2005년 6월 정 장관은 200만㎾ 전력 공급이라는 '중대 제안'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이종석 장관의 경우도 이런 틀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비료와 식량 지원을 거부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취소, 금강산 면회소 공사 중단, 개성공단 내 경협사무소의 북측 관계자 철수 등으로 보복했다. "이 장관이 미국 압력으로 쌀과 비료 제공마저 거부했다"며 인신공격도 했다. 이 장관에게는 위기다. 우연인지 그 직후 이 장관은 "미사일 발사 건에서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한.미 간에 이견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 한 당국자는 "북한과 정부 내 '민족공조론자'의 압박에 이 장관이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이 다가온다. 북한이 통일부 장관을 '다루는' 것을 보면 대선 국면을 활용하려 할 게 뻔하다. "미국 간 적 없다"는 게 자랑이 되고, "북한 간 적 없다"는 것은 숨겨야 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와 정동영, 한나라당의 박근혜와 이명박과 손학규 등 유력 대선주자들은 이미 방북했거나 김정일을 만났다.

    북한은 우리 정치인이 뒷전에서 얼마나 추파를 보내는지 잘 알고 있다. 미국 변수보다는 북한 변수에 훨씬 신경 쓰는 게 우리 정치인이다. 그러니 북한은 '장군님 접견'이나 동의를 받아야 대선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마치 과거 왕조시대에 왕위에 오르기 위해 중국 황제가 내주는 임명장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처럼 말이다. 북한과 좋은 관계를 이뤄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대선주자의 덕목이다. 그러나 통일부 장관에 이어 대통령 후보까지 북한이 좌지우지하게 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