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이동과 논설위원이 쓴 '통일부 전성시대, 실종된 외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고위 책임자를 지낸 A 씨는 ‘햇볕정책 이후’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 일이 있다.

    “간첩 잡는 일과 대북 정보 수집이 주임무였는데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어느 날부터인가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막후 지원하는 일이 일상 업무가 됐다. 특히 외국의 파트너들을 만나 햇볕정책의 효용성을 설명하다가 ‘당신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냉전시대 남북관계는 양측의 정보기관이 경쟁하면서도 조직 존립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共生)관계’를 유지했다. 상대 쪽에 정보를 흘려주기도 했다. ‘강한 적(敵)이 있어야 내 입지도 튼튼해진다’는 역설의 논리가 통했다.

    그러나 DJ정권이 햇볕정책을 본격 추진하면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남의 통일부와 북의 대남공작기구인 노동당 산하 통일전선부(통전부)로 넘어갔다. ‘민족끼리’의 슬로건이 전면에 나선 탓이다. 특히 남쪽 정부는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물적 가용(可用) 자원을 남북관계에 ‘다걸기(올인)’했다. 사람만 보아도 DJ정부 시절에는 임동원 씨가 외교안보수석비서관-국가정보원장-통일부 장관-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를 돌아가며 맡았다. 현 정부에서는 이종석 씨가 대통령직인수위원-국가안보회의(NSC) 사무차장을 거쳐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인 중심의 ‘회전문 인사’가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외교안보정책의 잣대는 바로 남북관계였던 것이다.

    ‘통일과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면 선(善), 방해가 되면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장관급 회담을 강행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남북대화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는 통일부의 논리가 외교통상부 국방부 정보기관 등의 반대를 압도했다. 청와대는 통일부의 논리를 옹호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선군(先軍)이 남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북측 대표의 망언(妄言)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낭만주의적 대북 접근과 달리 북은 철저히 ‘실용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대남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북측 관계자들의 입에서는 “북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남은 경제발전을 이뤄 북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남북의 역할분담이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이른바 ‘젖소 이론’이다.

    남측 ‘햇볕 코드’의 중심에 통일부가 있다. 통일부는 1969년 국토통일원이라는 총리직속 기관으로 출범했다. 바로 같은 시기 서독은 우리의 통일부 같은 부처를 해체하고 내독부(內獨部)를 만들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관계는 인정하되 ‘국가 대(對) 국가’로서 상대하자는 발상에서다. 본보 최정호 객원대기자가 5월 독일 정부의 십자공로훈장을 받으면서 한 답사에서 “독일의 비(非)통일정책이 통일을 앞당겼다”고 한 것은 바로 ‘평상적(平常的)인 외교관계’로 전환할 필요성을 지적한 것이었다.

    남북관계가 최소한의 상호주의와 국제적 상식에 입각한 실용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외교 코드’가 ‘남북 코드’의 상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일에서 멀어지고 중국과도 가까워지지 못하면서 북에는 모욕을 당하는 국제적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부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제 통일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논의를 원점에서 시작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