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한 부부의 칼날 같은 언어

    이혼한 부부들에게 왜 이혼했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이 각양각색입니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출세한 번 못하면서 자격지심으로 술이나 마시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으니 어떻게 살아요?"
    "잘 사는 사람만 쳐다보고 분수없이 사치하기만 해요. 성격이 모질고 독해서 같이 살 수가 없어요."
    이런 대답 속에는 이혼부부의 시퍼런 앙금이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은 못했지만 좋은 남자였어요. 허지만 가정보다는 너무 사회적인 일에 관심이 많아서 서로가 맞지 않았어요."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어요. 그러나 저와는 성격이 맞지가 않았어요."
    이런 대답에는 이혼을 해서 남남이 되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있습니다.

    이혼한 한국인 부부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아직 감정이 마르지 않은 전자의 감정적인 대답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누구든 이혼 과정까지 가면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갈등과 좌절과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어진 마당에 함께 살았던 인간적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언어를 절제하는 것이 이혼의 상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제일은 言

    개인도 그렇고 지도자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사람과 나라의 품위와 품격을 가늠해 줍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옛 전통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이었습니다.
    용모와 말하는 태도와 글씨와 판단력의 신언서판에 낡은 것이 있고 그것으로 인한 폐해도 있지만 '언'에 관한한 아직 변함없이 인간의 인격을 척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품위를 알 수 있고, 그 사회를 지배하는 언어들을 보면 그 사회의 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자기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합니다.
    이혼한 부부의 감정대로 말하자면 끝이 없고, 상대의 약점을 나열하자면 수도 없겠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인격과 품위를 위해 감정과 언어를 절제합니다.
    이것이 선진의식입니다. 이런 절제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되고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듯이 상대의 감정과 언어도 절제될 것입니다.
    이것이 언의 격이고, 언어가 주는 인격이고, 언어가 주는 치유입니다.

    북한의 광적인 언어

    격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언어가 조악하고 거칠듯이 격이 떨어지는 사회의 언어는 감정적이고 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언어입니다.
    북한은 상대를 비판하거나 공격할 때 가장 수위가 높은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합니다.
    1990년대 남북한 회담에서 북한의 대표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해서 북한의 언어 실체를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능력도 없고 그것이 가능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 고강도의 공격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북한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진보되어도 북한의 언어는 변하지 않고 여전히 거칠고 전투적이고 공격적입니다. "미 제국주의 원수들을 무찌르자"는 증오감이 넘치는 언어와 "위대한 민족의 태양이신 영도자"라는 최존칭 과장 언어가 일상에서 공존하는 것이 북한입니다.
    언어가 극단적이고 광적이고 증오적이면 그 사회가 그런 사회로 변해갑니다.

    여학생도 "X나게 뛰었더니 X나게 숨차네"

    북한에 비해 남한은 언어가 부드럽고 세련되었지만 언어가 야해지고 품위를 잃어가고 욕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수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헐레벌떡 뛰어 오더니 제 옆에 있는 친구에서 "x나게 뛰어 왔더니 x나게 숨이 차네" 하고 말했습니다.
    너무 깜짝 놀라 이 여학생을 쳐다봤으나 앳되어 보이는 여학생은 제가 놀란 마음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어린 여학생의 입에서 그것도 길에서 나이든 사람 앞에서 "x나게"란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걸 보면 그런 언어가 그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모양이었습니다.
    길에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언어를 유심히 들으면 어린 남학생들 사이에서 "x새끼" "x같은 놈" 하는 말들이 무척 자주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언어가 무섭게 거칠어지고 저속해 지고 있었습니다.

    노무현의 막말들

    학생들 언어를 들으면서 생각은 정치권의 언어로 연결되었습니다.
    저는 고인이 된 전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못 마땅한 것 가운데 하나가 그의 거친 언어였습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니, 어떻게 저런 실언을 할까?" 했다가 나중에는 "저 양반 저런 수준이군" 하는 체념과 쓴 웃음이 지나갔습니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미국 안 갔다고 반미주의냐. 반미면 또 어떠냐?" "미국 밑에 기어들어 간다고 나라가 지켜지겠느냐고?" "형 밑에 삘삘대고 기어 들어가면 그게 어디 자주국방이냐?" "이쯤 되면 막가는 거지요?" 하면서 끝도 없이 이어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언은 "대통령직 더러워 못해먹겠다"는 놀라운 말까지 생산했습니다.

    이명박의 실언들

    이명박 대통령의 실언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발언이기는 했지만,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에서부터 선거 때 박근혜 대표를 비난하면서 "나처럼 애를 낳아 키워 봐야 보육을 예기할 수 있고, 고3생 4명은 키워봐야 교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사찰의 가장 가운데 토막인 대웅전에 방을 만들어 살았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70년-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다." "요즘 젊은 배우들이 뜨는데 그 영화는 한물 살짝 간 중견 배우들을 모아 만든 영화"라고 실언을 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시절 외국 근무 이야기를 하면서 "한 선배는 마사지 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른다더라... 얼굴이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남자들이..." 하는 실언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저와 비슷한 세대를 산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런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런 언어가 이명박, 노무현 개인의 품위와 품격의 문제인지 아니면 한국의 언어문화를 반영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제 판단으로는 양쪽의 복합 같습니다.
    두 대통령의 언어 품격에 문제가 있고 거기에 한국의 언어문화가 이런 실언을 부채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이런 정도의 실언을 한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언어가 이런 수준이라면 국회의원이나 다른 정치인들의 언어 수준은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고, 여자 중학생이 길에서 "x나게"란 말을 쓰는 것을 바로 잡을 수가 없고, 인터넷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끔찍한 폭력 언어와 망언이 난무하는 것을 말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의 막가는 욕설

    특별히 인터넷에서 한국의 언어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고, 특정 지역을 욕하는 발언이나 극우 극좌가 서로 욕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같은 하늘, 같은 땅에서 민족과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라를 번영시키면서 살아갈 사람들일까 하는 회의를 갖게 합니다.
    20대 젊은이들이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퍼붓는 무례한 댓글이나, 할아버지 같은 어른들에게 욕을 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세계 선진국 10위권에 들어갔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패악스런 언어들을 만들어 내는 인터넷 깡패들과 패륜아들이 장차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한탄이 나오게 합니다.

    얼굴이 없는 곳에서는 이렇게 패악스럽던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오면 양처럼 순한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달라도 하늘땅으로 차이가 있고, 위선의 정도가 극과 극이라면, 이렇게 망가진 품성으로 어떻게 신뢰받는 미래 한국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인터넷 언어 규제법을

    이들 양두구육의 인터넷 무뢰한들을 추방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국 언어가 더렵혀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책임과 절제가 수반되는 사회입니다. 책임과 절제를 못하면 그것이 가능하도록 자율성을 배양시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것입니다.

    인터넷 언어 규제법을 제정해서라도 광란하는 인터넷 언어문화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언어로 인해 지역과 지역 간의 반목이 심화되고, 서로 의견이 다르면 증오심으로 치닫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욕하는 패륜이 깊어지고, 근거 없는 소문으로 사람을 죽이고, 인간성이 파괴되고, 국민간의 대립과 분열이 조장된다면, 그런 인터넷은 마땅히 규제되어야 합니다. 인터넷 자유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품위와 품격이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인터넷 문화를 쇄신시켜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종결한다고 할 만큼 언어가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표시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는 것이 모두 언어입니다.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언어가 병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병들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언어가 격이 없으면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정치의 격이 떨어지고 국가의 격이 실추됩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상대를 공격할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예의를 차리고 언어 선택을 아주 부드럽고 젊잖게 합니다. 웬만해서는 원색적인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형식을 통해 정치문화가 감정의 영역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정착합니다.
    한국 정당의 대변인들이 논평하는 것을 들으면 독하고 튀는 말과 기교적인 언어를 찾기에 골몰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 언어를 감정적이고 격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천박하고 야한 사회 '새로 만들기'

    한국의 언어가 순화되고, 감정에서 이성의 언어로, 공격적인데서 공존적인 언어로 옮겨가야 합니다. 천하고 야한 언어는 천박한 의식과 척박한 품성을 만들어 냅니다.
    언어 순화를 위한 총체적인 운동과 교육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한국 정치인들이 언어의 격을 높이고 정치 언어를 순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야당이나 여당이나 상대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언어 표현을 부드럽고 신중하게 하고, 보수 진보가 상대를 비판하는 언어의 독기를 낮추고, 냉소적이고 야유적인 언어를 피하고, 언론에서 자극적인 언어를 자제하고, 학교에서 언어 순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이념과 생각이 달라도 서로를 용납하고 포용하는 신사적이고 진중한 언어를 찾아야 합니다.
    언어가 이성적이 되면 한국의 품위와 격이 그만큼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