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인 미군의 한국경험은 '증오'

    미국의 한 병사가 주한미군으로 한국을 복무한 다음 다시는 한국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한국을 혐오한다는 극단적인 증오감을 표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흑인 병사는 아메리칸 인디언과 흑인 피가 섞인 사람으로 한국인들이 인디언의 모습과 비슷한 데가 있다는 것에 호감을 느끼고 한국 복무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근무를 하면서 한국인들의 차별에 실망이 아니라 절망을 했습니다.
    같은 미군이지만 백인들에게 대하는 태도와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차별은 부분적이거나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었고 문화적이었다는 것이 이 군인의 지적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이 군복무를 하면서 당했던 인간적인 수모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고 슬펐다고 했습니다.

    잘난 인종엔 굴종, 못난 인종엔 잔인

    저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제가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 흑인 혼혈 군인의 분노와 혐오감을 제가 단호하게 부인하고 한국인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혼혈 군인의 말이 사실일 수밖에 없는 조국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런 현상을 한국에서 많이 목격했고 미국에 살면서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들도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흑인들을 비하하고, 특히 흑인들을 아주 노골적으로 멸시합니다. 한국인 의식 속에는 자기와 다른 것,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편협성이 강합니다.
    이런 배타성이 일률성과 일관성이 있다면 그래도 부끄러운 중에도 위로를 얻겠는데, 이 배타성이 차별성까지 가졌다는 것에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자기보다 잘나 보이는 인종이나 민족에 대해서는 배타적 태도를 쉽게 개방하고 사대적 굴종까지 하면서도 자기보다 못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낄 경우 그 배타적 차별성은 더욱 잔인해집니다.

    흑인동네 강도...6.25때 거지

    미국에 사는 많은 동포들이 처음 이민 와서 흑인이나 히스패닉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인종 차별 의식은 많은 부작용과 갈등과 분쟁을 야기 시켰습니다. 흑인 젊은이들 가운데는 절도와 강도가 많았고 한국인들이 흑인 강도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런 범죄는 한국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더욱 강화시켰고 편견을 고착화 시켰습니다.
    인간이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이 파괴되면 도덕과 윤리가 망가지고 범죄율이 많아집니다. 6.25 전쟁 후, 한국 거리에 수없이 넘쳤던 날치기 들치기와 도둑과 거지와 부랑아들의 이야기가 지금은 전설처럼 들리지만, 한국도 그랬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주 동포들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각 지역에서 갖가지 분쟁과 갈등을 야기 시켰고, 로스앤젤리스에서 발생했던 4.29 폭동은 그 절정이었습니다.
    물론 LA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이 불타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 인종적인 요소만은 아니었지만 코리안들의 인종적인 요소가 상당히 결정적이었습니다. 코리안 커뮤니티의 얼굴과 명분을 위해서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코리안들이 인종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뒤 자각의 기운이 커졌고, 인종을 차별하고 비하하면서는 함께 살 수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깨우쳐 갔습니다. 한 때 흑인들을 가리켜 '깜둥이' '깜씨'라고 경멸하고 맥시칸들을 '맥장'이라고 비하하던 한국인들의 인종 차별 언어도 조금씩 순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자각은 흑인 지역에 장학금도 지급하고 서로가 연대해서 교류를 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마음 속 인종 편견 의식은 뿌리 깊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더욱 심할 것입니다.

    인순이의 눈물...하인스의 명성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흑인차별을 얼마나 심하게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비밀이고, 미국에 있는 많은 흑인 지도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흑인 사회가 한국인의 흑인 차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어느 시점에 한국이나 미주 동포사회에 대해 폭발적인 화약  심지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지구촌으로 좁아지고 혼자 살수 없는 세상이 되면서 어떤 특정 인종으로부터 분노와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뜻하지 않게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루 빨리 인종차별 의식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혼혈 가수 인순이의 눈물과 아픔을 노래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응어리진 차별과 수모의 한을 한국인들은 자기 성찰과 회오의 절규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인종 차별의식에 변화와 각성을 주는 채찍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가 명성을 얻었을 때 잠시 반짝했던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반성은 그 때 뿐이었습니다. 마음의 근본 바탕에서 인종차별의식이 흔들려야 합니다.

    '외국인 배우자'? 호칭부터 틀렸다

    지금 한국 사회는 또 다른 외국인과 혼혈인들이 차별과 조롱으로 가슴에 깊은 상처를 얻고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와 외국인 배우자, 거기서 태어나는 혼혈 자녀들입니다. 어느 보도에 의하면 한국내 외국인 근로자가 40만 명에서 50만 명에 달하고, 외국인 배우자는 13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태어난 자녀들을 합치면 머지않아 한국 내 '외국인' 별칭이 붙는 이들 숫자가 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숫자는 전통적으로 타인종과 함께 살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 파장은 예상보다 무척 클 것입니다.

    아무런 대비책이나 준비도 없이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특히 외국인 배우자와 그 자녀들을 어떻게 한국인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을지가 걱정됩니다. 인종의 문제를 치밀한 준비와 배려가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정부의 무대책과 무신경은 미래 사회에 큰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외국인' 문제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대상은 외국에서 온 타인종 배우자들입니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온 이들 외국인들과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 온 외국인들은 크게 다릅니다. '외국인 배우자'란 말도 적합한 용어가 아닙니다. 외국인 배우자는 외국에서 왔지만 이미 외국인이 아닙니다. 외국인 배우자가 아니라 '타인종 배우자'입니다.
    하루 빨리 타인종 배우자를 한국 문화와 풍습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아울러 한국인들이 이들을 내 동포로 맞이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포용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부는 물론이고 각 지역 지방 자치 단체에서도 타인종 배우자와 혼혈인 자녀들을 한국인으로 수용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과 교육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시기를 놓치면 이 문제는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끌려온 노예가 아닌데...

    아울러 한국에 체류하면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도 한국사회에 깊은 배려와 아량을 보여줘야 합니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막일을 하는 이들 근로자를 받아들인 이상 한국 사회는 이들을 따뜻한 인간애로 대우해야 합니다. 간간히 언론에 보도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일부 고용주나 동료들의 차별이 어느 정도 만연해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들의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입니다. 일부 악덕 기업주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구타하고, 임금을 체불시키고, 외출을 금지시키고, 여권이나 신분증을 압수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목욕탕이나 화장실을 갈 때도 한국인 감시원이 따라 다니고, 자장면을 먹다가 한국인 동료의 신발에 엎질렀다고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려서 부상을 입혔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신분상 약점을 이용해서 이들 악덕 업주와 저질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한국에 대한 무서운 증오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단일민족 문화권이 다문화 다인종 문화권으로 이전할 때 거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갈등과 충돌이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다문화 다인종의 대표적 국가인 미국은 이 문제를 사회 통합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것에 관용과 포용력을 보여주고, 다른 것에 대해 절대로 조롱하거나 비하하거나 경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종의 문제를 다룰 때는 우열을 논의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해야 합니다. 특히 혼혈 자녀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고 학교를 가기 시작할 때 이 문제는 예민성과 심각성을 더해 갑니다. 한국 학교처럼 자기와 다른 것이 있을 때 놀리거나 따돌리거나 때리기까지 하는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들 어린이들이 한번 상처를 받게 되면 그 상처는 평생을 가게 되고, 낙오자가 되기 쉽고, 폭발적인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순간의 증오감이 전체를 증오한다

    미국처럼 이 문제를 민감하게 다루는 사회에서도 인종간의 문제는 끊임없이 긴장과 대결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30여명의 학생과 교수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을 해서 미국 사회를 경악시켰던 버지니아텍 조승희 사건의 뿌리도 인종 문제에 있었습니다. 조승희라는 소년이 미국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조승희는 사회와 인간을 혐오하고 복수를 생각했었고, 그는 정신질환자가 되었고, 결국은 모두를 불행케 하는 가장 극단적인 광란의 방법을 택했습니다.

    한국사회처럼 인종차별이 극심한 사회에서 혼혈인이나 타인종들 가슴에 혐오 감정이 심어지는 것은 잠간 사이에 일어나고, 그 잠간이 일생을 갑니다. 인종 혐오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 사회에서 차별받고, 경멸당하고,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존엄성을 상실하게 되면 그 사회를 증오하게 됩니다.

    차별은 증오의 싹을 심고 자라게 합니다.
    인종 차별은 차별하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얼굴 빛깔로 사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은 비인간적이고 무지한 사람들이 저지르고, 그 피해는 선량한 사람들이 입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시아가 한국을 혐오할 것

    이러한 피해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이미지가 외국 근로자들을 통해 그 나라로 수출 됩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스리랑카 근로자들을 한국인들이 차별하고 부당한 대우를 할 때 이들의 실태가 이들 나라에 전달될 것이고, 이들을 통해 코리안의 나쁜 이미지가 그 사회에 심어질 것입니다. 이런 이미지가 한번 심어지면 그 피해는 막심한 것이고 국가 간의 선린과 교류는 물론 경제협력에도 지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인종간의 관계는 경험에 따라 그 인종을 영원히 혐오할 수도 있고, 깊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게 합니다. 한사람의 인종적 경험은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기하급수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은 국격을 실추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력을 소진시킵니다.

    타인종이 급격히 유입되는 한국사회는 국격을 검증 당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타인종이 속한 국가들은 자기네 국민이 한국에 가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인종의 문제는 국제적 파장을 일으키고, 그 파장은 세월을 뛰어 넘어 인종의 이미지와 격을 유전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