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사스 휴스턴과 수도분할 세종시

    미국 역사의 최대 격동기는 남북전쟁 시대였습니다.
    흑인 노예 문제를 놓고 지지와 반대가 분노와 증오로 치달았던 미국은 결국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통해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 속에 미합중국의 깃발을 보존했습니다. 노예 해방의 대 결전을 앞두고 미국은 수많은 정치인들의 수없는 연설과 타협을 통해 위기의 관문을 지내 왔으나 결국 인간의 욕심과, 편견, 자기 신념, 자기 정의는 미국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했습니다.

    이 내전이 일어나기 2년 전, 샘 휴스턴(Sam Houston)이 텍사스 주지사로 선출되었습니다.
    휴스턴이 주지사로 취임한 뒤 텍사스주와 미국의 운명을 선택해야 하는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텍사스주 의회는 텍사스주가  미국 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에 가담키로 결정했습니다. 미국 연합은 노예 해방을 반대하는 남부의 주들로 구성되어 있는 남부 연합으로 아브라함 링컨이 이끄는 북부 연합인 미국 연방(United States of America)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습니다. 노예 해방을 전쟁으로 막고, 노예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분리할 것을 각오한 남부 신념의 연합체였습니다.

    휴스턴의 용기를 기리는 휴스턴市 이름

    휴스턴 텍사스 주지사는 주 의회가 결정한 연방 탈퇴 결정에 반대하고, 분리주의 연합체에 충성 서약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휴스턴은 주지사 직에서 축출 당했습니다. 그에 대한 비난과 욕설과 저주가 어제의 지지자, 칭송자들로 부터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그는 텍사스의 배신자, 남부의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휴스턴 주지사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고, 노예 제도를 폐지시켜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라를 둘로 분리시킬 수 없다는 더 큰 대의명분의 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노예제도를 찬성하면서도,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더 큰 명분은 그의 신념을 꺾게 만들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쇄도하는 '배신자'의 비난 앞에 휴스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귀중한 생명을 희생시킨 다음에 신이 당신들을 지지하신다면 남부 연합은 독립 연방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허지만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의 반대자인 북부 연합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주지사에서 쫓겨난 뒤 휴스턴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육의 남북전쟁이 끝나기 2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용기와 혜안은 죽은 뒤에 빛났고, 텍사스주는 '휴스턴'이라는 텍사스 최대 도시의 명칭을 그의 이름으로 추모하고 있습니다.

    "재미 좀 봤다"는 재미 따르는 정치인들

    한국 국회의원들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고 수도를 분할키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저는 샘 휴스턴을 생각했습니다. 휴스턴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퓰리처 수상 저서인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 in Courage)에서 나오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용기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휴스턴의 용기를 생각하면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말했다는 '파부침선'(破釜沈船)의 뜻을 생각하고, 뒤 이어 전 노무현 대통령의 "세종시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거인처럼 우뚝 선 휴스턴 앞에 정세균이나 노무현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세종시 공약으로 표를 얻었기로서니 "재미 좀 봤다"는 철없는 아이 같은 발언이 듣기도 민망스러웠고,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을 가졌다는 '파부침선'의 언어적 결기에 쓴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전쟁터로 가면서 집에 있는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것은 전쟁에서 죽을 각오라는 뜻 같은데,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는 것을 앞두고 '파부침선' 이라니, 참으로 어이없는 비유였고, 기가 찬 국가관이고 정치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지도자들입니다.

    어차피 게임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승복 밖에 없습니다.
    수정안을 추진했던 정운찬 국무총리가 수정안이 부결된 것에 책임을 지고 물러갈 뜻을 밝혔다고 했는데 그 말은 잘못 된 것입니다. 총리가 뭘 책임지겠다는 것입니까? 총리로서 떳떳하게 물러가려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국회의 결정은 앞을 못 내다보는 근시안적 정치꾼들의 당리당략에서 나온 결정으로 나는 의회의 다수결 결정은 승복하지만, 마음으로는 승복할 수 없어 총리직을 사임합니다."

    정총리 사임해선 안되는 이유

    진심으로 의회 결정을 승복할 수 있으면 정총리는 사임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특정 정책안을 추진한 것이 부결되었다고 정치적 책임을 지고 그 직책에서 물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정치적 행태입니다.
    부시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 미국의 장래 운명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는 이민법 제정을 추진했다가, 자기 당 의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물러난 장관도 없고 물러가라고 아우성친 사람도 없습니다. 정치의 격이 다른 것입니다.
    야당이 "세종시 부결은 사실상 정총리에 대한 불신임으로 즉각 물러가야한다"든가, "수정안이 부결됐는데도 계속 자리에 연연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철면피 정부가 될 것"이라면서 총리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한국 정치가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대통령 책임제 정치에서, 특정 정책안이 부결되었다고 총리가 왜 물러가야 합니까?
    이치에 맞지 않고, 정치의 격도 수준도 너무 떨어지는 발상입니다.

    이제는 승복 밖에 없으니 정부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고 더 이상 이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원론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승복 뒤에 오는 나라의 장래가 걱정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종시 원안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수도를 송두리째 옮기는 것이면 몰라도 대통령과 국회는 서울에 있는데 교통지옥이 숨통을 조이는 한국에서 수도를 분할한다는 게 국가의 기능과 효율성과 능력을 쪼개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나라의 수도를 분할하는 것을 국가를 쪼개는 것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샘 휴스턴의 용기는 천착되어야 할 것입니다. 집안이나 회사나, 수도가 나누어질 때, 자칫하면 기러기 집안, 기러기 수도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의 불씨가 묻혀있습니다. 허지만 민주정치는 다수결이니 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용기는 잘못을 시인하는 것

    그동안 세종시 논쟁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반대하는 야당이나 박근혜 의원의 논리와 이성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샘 휴스턴 같은 용기나 명철과 혜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말이 참으로 아둔한 신념 같았고, 국민과의 신뢰란 말 뒤에 차가운 이기주의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신념과 신뢰 때문에,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으나,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신념과 약속이 잘못되었으면 고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가장 큰 용기는 잘못을 시인하고 교정하는 용기입니다.
    거기다가 박근혜 사람들은 보스가 수정안을 반대한다고 떼를 지어 무조건 따라가고, 이명박 사람들 가운데 반대한 사람들은 원안에 문제가 있지만 "지역 주민들 의사를 존중해서"라는 한심한 발언을 했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은 선거였고, 권력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이기적인 시대에 내 권력과 선거를 챙겨야지 무슨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느냐고 속으로 비웃을지 모르지만, 정치인들 마음에 나라의 이익과 장래를 위해 자기 당과 개인의 야심을 절제할 수 없을 때 그 나라의 장래에는 암운이 깃들게 됩니다.

    케네디 "양심을 따를 때 친구들을 잃는다"

    결국은 정치인의 수준, 정치의 품격으로 돌아갑니다.
    정치의 격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정치의 격도 결국은 국민의 격입니다.
    미국서도 격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격이 떨어지는 정치인을 선출합니다. 인종차별주의 지역에서는 인종차별 정치인을 뽑았던 것이 미국의 정치였습니다. 정치가 문명화 되어서 이제 그런 정치인들이 설 땅이 없어졌습니다. 국민이 그만큼 깨어난 것입니다.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승리의 축배를 든 후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수도를 분할하는 것이 정말로 현명한 결정일까, 하고 말입니다.
    "양심을 따를 때, 친구를 잃거나, 재산과 사람들의 존경까지도 잃어야 하는 희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용기의 도전입니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이 말이 한국 정치에서 너무나 쓸모없는 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냉소입니까?

    껍데기 도시, 어떻게 해야하나

    이제 이렇게 된 마당에, 마음은 답답하지만 세종시 쪽박을 깰 수는 없습니다.
    원안대로 가면 쪽박이 깨질 확률이 커 보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일을 성사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이것도 국민의 의식과 문화가 결정할 것입니다. 정부 부처가 옮겨간다고 해도 가족이 따라가지 않고, 정부 부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각 분야의 기업과 기관이 그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세종시는 껍데기 도시가 될 것입니다.

    세종시가 완공되어 행정복합도시의 기능을 제대로 하느냐 하는 것이 논란될 때는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 '파부침선'을 말했던 정치인도, 신뢰와 약속 때문이었다는 정치인도, 생각 없이 줄서기에 급급했던 국회의원들도 정치 무대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행정 중심 도시라는 허명에 이끌려 사실 파악을 제대로 못한 오늘의 충청도 사람들도 없을 것 입니다. 다만 후세의 사람들이 그 짐을 져야 할 뿐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국가 기능의 능률화를 위해 청와대와 국회도 옮겨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부작용을 최소화 시키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국은 그 말이 나올 것 같지만, 이런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