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연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아들이 다니던 미국 초등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왔다.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 기념행사를 하니까 관심 있는 학부모들은 와서 보라고 했다. 미국에는 향군의 날이 현충일(Memorial Day, 5월 마지막 월요일)과는 별도로 있다. 현충일도 휴일이지만, 매년 11월 둘째 주 월요일에 맞는 재향군인의 날도 휴일이다. 아들 학교의 향군 기념행사는 그 전 주의 금요일 아침에 있었다. 아이들이 단상에 올라가 자기들끼리 문답식으로 재향군인의 날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다. 행사장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노병 한 사람도 참석했다. 교장 선생님이 그 노병을 소개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러한 기념행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가 교육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전쟁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국가주의적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주입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의 경우 전쟁의 정당성 자체를 둘러싼 논란이 지금도 뜨겁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가르쳐야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정당한 전쟁마저 기념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말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과 1, 2차 세계대전 참전은 백번 정당한 것이었고 그런 전쟁은 기려 마땅하다.

    미국에서 퇴역군인과 전몰장병들은 아이들의 영웅이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산화해 간 자랑스러운 용사들로 우러름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자원해서 싸우러 나가겠다는 젊은이들이 미국에는 많다. 일례로 케네디 대통령도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직후 해군에 자원입대하여 싸우던 중 한 때 실종됐다가 살아났다. 그의 형은 같은 시기에 공군조종사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당시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부호였던 케네디 집안의 두 형제가 스스로 참전하여 한 사람은 죽고 다른 한 사람도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 전에 개봉됐던 영화 ‘라파예트’를 보면 미국의 젊은이들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가 참전을 결정하기도 전에 프랑스 공군부대에 자원입대하여 호전적 침략세력인 독일군과 싸우다가 대다수가 전사하고 극소수만이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의 영웅은 비단 군인만이 아니다. 미국 아이들의 영웅은 또 있다. 9 ․ 11 테러 당시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속에 남아있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했던 소방관 300명 이상이 사망하자, 미국 전역에서 그들을 추모하고 받드는 거대한 물결이 일어났고, 순직 소방관들은 미국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다수가 ‘소방관’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영웅이 많은 나라인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 초등학교에서도 현충일 기념 백일장과 사생대회, 국군묘지 참배, 전쟁기념관 견학 같은 행사들이 있다. 문제는 참전용사와 전몰장병들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느냐이다. 오히려 군사문화의 잔재로 경원시하는 분위기마저 엄존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데올로기를 악용하여 인권을 유린하였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음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안보논리를 악용한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하지만 안보나 반공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나라의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잃은 설움을 겪고 북한 공산집단의 남침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지난 역사가 웅변한다. 공산주의가 얼마나 악독한지는 오늘날 북한 주민이 처한 참상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하다. 이제는 안보와 반공이 지닌 본래 의미와 가치를 회복할 때다.

    안보와 반공이 국가제일의 가치라고 한다면 누가 국가 최고의 영웅인지는 자명해진다. 나라를 지키고 공산주의 세력을 무찌른 사람이 바로 국가적, 민족적 영웅인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변함없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북한은 한국 전쟁을 일으킨 데 이어 그 후에도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거듭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군인과 경찰들이 거기에 맞서 싸우다가 피를 흘렸다. 피로써 자유를 지킨 이들을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기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화재 현장에 출동하여 생명을 구하고 불을 끄다가 숨진 소방관,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순직한 경찰관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하다. 미국 같은 나라는 살아있는 목숨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의 시신까지도 매우 귀하게 여긴다. 미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장병의 시신을 한 구라도 더 찾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한다. 일본도 북한에 납치된 민간인을 송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담판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갔을 만큼 결사적 자세로 임했다. 사람 문제가 결론 나기 전에는 다른 문제를 가지고 정치적 거래나 흥정, 타협을 할 수 없다는 강경자세였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1950년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60년간 공산세력과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숱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마음을 모아 기려야 할 ‘영웅’이 많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웅 기리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어 다행이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좌파 정부 10년 동안에는 이른바 ‘영웅 죽이기’가 공공연히 행해졌다.

    서해교전 전사자 유가족은 좌파 집권 시절 정부와 사회의 홀대를 견디다 못해 해외이민 길에 오르고 말았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은 수십 년간 북한 땅에서 생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이미 다수가 가족을 만나지도,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사람들도 언제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국군포로들은 이제 더는 국가를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탈북하거나 아니면 남한의 가족들이 자력으로 그들을 탈북시키고 있다. 조국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다 포로가 된 사람들이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버림받은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남북한정상회담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북한 정권에 갖다 바치면서도 정작 구출해야 할 국민은 구출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는 죽은 목숨도 챙기는데 대한민국은 산목숨도 외면하였다. 이산가족은 한 번에 백 명씩 이벤트성으로 만났지만 그렇게라도 가족을 만난 것은 전체 이산가족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십중팔구는 한을 품은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로 다시 46명의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땅의 좌파세력은 ‘영웅 살리기’가 아니라 ‘영웅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들에겐 천안함 희생자 가족의 가슴 찢는 절규가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직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구출하고 남한의 우파지배체제를 허무는 데만 저들의 관심은 집중돼 있다. 국가의 존립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이 땅 좌파세력의 속성이며, 자신들의 정치적․이념적 목적을 위해서는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사실마저 무시하는 것이 바로 저들 반미친북세력의 본질이요, 실체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다수 국민들이 저들의 거짓 선동에 속아 넘어갔으며, 지금도 속아 흔들리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래서야 누가 조국을 위해 싸우겠는가. 오늘날 한국에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소방관이 되고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은 많지만 전쟁이 나면 싸우겠다는 젊은이는 없는데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참전용사와 순직 소방관, 순직 경찰관은 영웅이 아닌 것이다. 많은 국민이 그 희생자들의 무덤에 침을 뱉으며 ‘영웅 죽이기’에 온힘을 쏟아 붓는데 그들이 어떻게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한국의 아이들에게도 영웅은 있기는 있다. 그것은 연예인, 모델, 운동선수 같은 소위 스타들이다. 그런 스타들 가운데에서도 손기정처럼 국가를 빛낸 인물들이 적지 않지만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너무 나약하다거나 너무 영악하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어른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