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의 반만큼만...

    “내가 나의 자녀들에게 내 부모의 반만큼만 되는 사람이 된다면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일 것이다.”
    미국의 스타 요리사인 Guy Fieri의 말입니다.
    이 사람은 미전역의 허술한 식당, 근사한 식당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음식 평을 하고, 요리책도 쓰고, 또 TV에도 자주 나와 요리 강좌도 하는 인기 배우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나는 자라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나는 자라서 엄마처럼 현명한 여자가 되고 싶다.” 
    “나는 자라서 아버지같이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자가 되고 싶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찬사도 찬사지만, “부모의 반만큼만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말이야말로 부모가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라 하겠습니다.

    오래 전 교직에 있을 때, 한국학생들뿐 아니라 부모님들과도 가끔 상담을 하였습니다.
    50여명이 넘는 교사중 하나밖에 없는 한국인 선생인지라, 학생들뿐 아니라 때로 한국인 부모님들도 찾아오시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갓 이민 온 가정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부모들 스스로도 낯 선 땅에서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한 나날을 계속하지만 아이들 또한 부모 못지않게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 따라 미국에 온 아이들. 교실 아이들과 외모부터 다를 뿐 아니라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학교생활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벅찬 것이었습니다.

    “너 때문에, 네 장래 때문에 미국에 이민 왔다.”는 말을 아이들은 제일 듣기 싫어했습니다.
    “내가 언제 미국 가자 했느냐?”
    아이는 이렇게 말대꾸를 하다 부모에게 혼나고 가출까지 하는 등, 참으로 아슬아슬한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그들은 차츰차츰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나는 자라서 절대 내 아버지 같은 이중인격자는 되지 않겠다.”
    열네 살 남학생의 말이었습니다. 그 아이 아버지는 한인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만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해요. 아버지는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고 자기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세상 모든 걸 다 안다 생각하고, 자기한테 거역하면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인들에게는 술 마시면 안 된다 하면서 아버지는 방에 술병 감춰놓고 마신다고요.”
    외롭고 슬프고 때로 몹시 억울해도 어디 가 하소연 할 곳이 없으니 아이들은 한번 말문이 열리면 벼라 별 말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도 엄마도 내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아이들이 제일 많이 불평하는 게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자라서 엄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툭하면 나도 때리고 엄마도 때립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하는 줄 아느냐' 하면서 그 분풀이를 우리에게 합니다. 왜 엄마는 도망도 가지 못하는지, 왜 그러고 사는지, 나는 자라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으렵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사춘기 여학생의 그 절규가 오랫동안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성장기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다 하도록 들어주는 사람만 있어도 아이들의 탈선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먹는 것, 입는 것, 학교 잘 다니는 것,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고 슬픔이 있고 외로움도 있는 법입니다.
    “해 달라는 거 다 해주고 비싼 과외 다 시켜주는 데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밥 먹어라”, “공부해라”,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마라”
    자식과의 대화가 이것이 다라면 부모와 자식사이에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
    '아버지는 얼굴도 보기 힘든 사람.'
    부모가 이렇다면 성장기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것입니다.
    부모가 아니라면 선생님이든 선배든 누군가 인생 상담자가 되어 줄 수 있고, 나아가 롤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 신문이나 잡지에 흔히 인성교육, 도덕교육 부재라는 말이 오르곤 하는 데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은 국어, 수학, 영어처럼 한 두 시간 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 만들기, 사람 가꾸기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행동거지가 하나, 하나가 다 산 교육입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사춘기 때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의 인생관을 결정합니다.
    그 시절에 부모에게서 위선, 오만, 편견, 위법 같은 것을 보게 된다면 부모에 대한 불신을 넘어 기성사회에 대해 냉소적이 되기 쉽습니다. 매사에 냉소적인 인간은 사회에 나가서도 긍정적인 사람, 건강한 사람 구실을 하기 힘듭니다.
    우리 말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한 인간이 태어나 어떤 인간형이 되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인품에 달린 것입니다.
     
    며칠 전, 한국에서 40대 기러기 아빠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하여' 라는 명분으로 젊은 부부들이 이산가족처럼 헤어져 살고 있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혼자 아이들만 데리고 와 있는 젊은 엄마들이 탈선하는 경우가 신문지상에 가끔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파출부와 가정교사에게 맡겨놓고 아예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토요일마다 각 동네 운동장에 아이들 운동경기가 벌어집니다.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는 아이들에게 소리소리 질러가면서 응원하는 부모들을 보면 백인, 흑인, 인도, 한국, 베트남 등등, 그야말로 유엔 마을처럼 각 인종이 함께 어울려 있습니다.
    아이들보다 더 열성인 부모들. 할머니, 할아버지들. 
    심판도 코치도 팀장도 아이들 아빠나 엄마들로 다 자원봉사자들입니다. 그들은 심판이나 코치를 하기 위해 특별히 자격면허증을 딴 사람들입니다. 축구, 야구, 정구, 농구, 학키 등등, 토요일은 대항전이 열리지만 주중에도 연습 게임을 합니다.

    내가 운동장에서 만나 본 부모들 중에는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데 그들은 토요일에 골프를 치러 간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운동은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위한 필수 과목입니다. 운동은 단순히 땀 흘리며 뛴다는 것뿐 아니라 함께 운동 하면서 참을성과 기다림과 어울림을 배우는 것입니다. 
    Long Beach, California에 있는 Hills 중학교 운동장에는 정구코트가 20여개, 야구장이 하나, 축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경기장이 네 개나 있습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것.
    아이들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고 싶어 할 때 들어주는 것.
    그들은 아버지가 변호사라서, 의사라서, 또는 사업가라서,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해주기에 아버지가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가" 라는 답에 주저함 없이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도 그 중 한사람으로 빌 게이츠 아버지는 보이스카웃 팀장으로 청소년들을 데리고 주말이나 방학 때 캠핑을 다녔다 합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홉 살, 일곱 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LA에서 시카고까지 왕복 자동차 여행을 한 아버지도 있습니다. 두 살짜리 딸과 아내는 빼놓고 아들 둘만 데리고 여행한 이 남자의 뜻은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러쉬모어에 있는 대통령 상 등, 곳곳 역사적인 명소를 둘러보면서 아이들에게 생생한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운동장에 나가 공을 던져주며 연습시켜준 아버지, 운동 팀에 자원해 코치까지 해 준 아버지, 자기들을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캠프를 다닌 아버지, 자기들을 데리고 대륙 횡단을 하며 많을 것을 보여준 아버지, 이렇게 자기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준 아버지로 각인되기 마련입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
    아버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최대 선물을 드리고 싶은 Sharon.
    60년대 초반에 알게 된 미국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그녀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처녀였는데 적은 월급봉투에서 꼬박꼬박 얼마씩을 떼 내어 저축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아버지에게 Cadillac 자동차를 사드리는 게 꿈이라 말했습니다. 지금은 외제차가 많아졌지만 1960년대 Cadillac은 미국인들에게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Sharon의 아버지는 30년 넘게 오리온 과자회사의 트럭을 모는 운전사였는데 Sharon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고 늘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스스로의 양심을 가장 무섭게 생각하는 사람. 허튼 짓은 절대 안 하는 사람.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
    어째서 아버지를 그토록 존경하는가 물었을 때, Sharon이 요약한 답이었습니다.

    스타 요리사 Guy Fieri의 부모도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대단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아주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내가 나의 자녀들에게 내 부모의 반만큼만 되는 사람이 된다면 나는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부모라면 그야말로 그는 인생을 성공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김유미 /재미 작가, 언론인>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