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의식 운동

    이제 대한민국은 '새마을 운동'처럼 '새 의식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 좀 잘 살게 되었다고 어느새 굉장히 도도해지고, 시건방져지고, 태만해져 가고 있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것.
    이것은 오직 우리 자신들이 똑똑하고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 선배님, 스승님 세대 덕분입니다. 그들이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근검과 절약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며 뒷받침 해왔기 때문에 궁핍에서 벗어나 부를 일구게 된 것입니다.

    “왜 노후대책을 하지 않았느냐?”
    부모에게 볼멘소리로 항의하듯 이렇게 묻는 자식들이 있다 합니다.
    어째서 노후대책을 하지 않았는가? 노후대책을 어떻게 합니까? 당장 자식들에게 하루 세끼 먹이는 게 당면 과제인데!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어느 잡지에 피난 시절을 돌이켜보며 수필 하나를 개제했는데, 주인 집 아이들이 먹는 군것질이 부러워 엄마에게 투정부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은 어느 독자가, '당신은 피난시절에 군것질을 생각할 정도로 참 부유하게 자랐군요. 나는 매일 밤마다 냉수로 배를 채우고 잠들곤 했습니다.” 라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지금도 그 편지를 읽으며 냉수 마시고 잠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 세대 젊은이들은 상상조차 못할 가난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들에게 어째서 노후대책을 세우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묻는 자식들.
    한데 누가 저들을 저런 식으로 자라게 했는가? 그 또한 부모세대 탓입니다.
    내가 너무 찌든 가난 속에서 주눅 들어 살았기 때문에, 내 자식들만큼은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며 키웠기 때문에 그만 안하무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이민사회에서도 종종 봅니다.
    이민 온 부모들은 밤 낮 가리지 않고 일 해 가며 재산을 모았습니다.
    내 가난을, 내 고생을 자식들에게 대물림 해주지 않겠다는 마음에 자식들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사주고 다 해줍니다. 자동차도 남들 보다 더 좋은 걸 사주고, 액수가 정해진 용돈을 주는 게 아니라 아예 신용카드를 한도액 없이 무조건 쓰도록 줍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기 힘듭니다.

    미국의 중산층 보통 가정에서는 열세 살이 넘은 자녀들에게는 용돈도 그냥 무조건 주지 않습니다.
    부엌에 있는 쓰레기통을 내다 버린다든가, 일주일에 한 번 집 앞 잔디를 깎는다든가 무엇이든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감을 주고 그 아이는 그 임무를 착실하게 행함으로써 용돈을 받습니다.

    내 두 딸애가 고등학교 다닐 때, 두 아이는 방학동안 가방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얼마큼 힘들게 일을 해야 시간 당 5불 정도를 벌 수 있는 건지,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용돈이든 무엇이든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자는 목적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선 채로 일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 다리는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붓기가 내려가라고 찬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아이들은, 일생동안 그런 험한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현실에 놀라워했습니다. 
    두 달 동안 그 경험이 아이들에게 부모가 주는 용돈의 귀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했고 사람은 많이 배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자식 교육, 자식 사랑은 무제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제한 퍼주기 식은 자칫 아이들을 노력하지 않는 아이들, 게으른 아이들, 무서운 것 없는 아이들, 고마움을 모르는 아이들을 만들기 쉽습니다.

    정신 교육.
    사람 교육.
    지금 한국의 당면 과제는 바로 사람다운 사람 교육이 아닌가 합니다.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숙제를 잘 해오지 않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머리가 참 빨라 왜 숙제를 안 해왔는가 물으면 이런 저런 변명이 금방 나왔습니다.
    어느 날, 그날도 그 애는 숙제를 해오지 않았고 왜 안 해왔는가 묻는 선생님에게 분명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해왔다는 것을 믿고 선생인 나는 숙제 칸에 숙제를 해온 것으로 기입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아이가 준이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준이가 숙제를 해왔다고 했으니까 해온 거다. 준이가 정말 해오고 해왔다고 하는 건지 안 해오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지, 그건 준이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준이가 해왔다고 하니까 나는 준이를 믿는다.”
    그 날 이후, 준이는 꼬박 꼬박 숙제를 해왔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또는 엄마가 자식에게 “너 거짓말이지? 거짓말 시키는 거지?” 라고 다그치는 순간, 그 두 사람 사이에 신뢰는 무너집니다. 선생님이든 부모든 아이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너, 거짓말 시키는 거지? 내가 다 안다.” 입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열 번이든 백 번이든 거짓말을 고스란히 믿어주면 아이들 본성은 착하고 순진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계속 하지 못합니다. 

    정신교육은 윗사람부터 맑아야 합니다.
    나 자신은 그야말로 위선자, 이중인격자, 심지어 사기꾼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엉망이면서 아이들에게 바른 정신 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교육감이 돈을 먹었다. 국회의원이 돈을 먹었다. 교장이, 교감이, 지방자치단체장이....... 각계각층 윗사람들이 돈관계로 고소당하고 잡혀가고 하는 뉴스가 거의 매일같이 언론에 보도되어도 사람들은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지.”, “으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입니다.

    거짓과 속임수, 사기행각이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소수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국새를 만든 장인이라는 사람까지 사기요, 국전 심사, 예술 대회, 이런저런 숫한 상, 하다못해 문학상까지! 그야말로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학 입시에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 하니까 봉사활동까지 가짜로 만드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의사 또는 고아원을 경영하는 동창친구를 찾아가 내 아이가 자원봉사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달라고 부탁하는 엄마가 있습니다. 더 기막힌 것은 대학입시에 꼭 필요한 자기 소개서를 대신 만들어주는 학원까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관, 인생관, 포부 등,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기 소개서를 자신이 쓰지 않고 남이 대신 써준다는 이 가짜 행각은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네가 어떻게 쓴다는 거야? 내가 아주 좋은 곳 알아봤다. 엄청 비싸긴 하지만 하여튼 네가 쓸 생각은 꿈에도 마.”
    이런 엄마에게서 아이들은 은연중에 '사기행각'은 당연하고 사기를 잘 칠수록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비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올곧게 사는 사람들이 주변머리 없는 바보들로 취급당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분명 부패한 사회입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에서 무너지지 않고 당당한 선진대열에 올라서려면 '새마을 운동'처럼 '새 의식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올바른 정신교육.
    오직 이것만이 대한민국이 선진 문화국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