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는 합법적 '동거입사증'이 있다
    -고향추억 중에서-
    장진성 기자

    김정일 "저 연기가 무엇이냐?"

    2002년 1월 경 평양시를 현지시찰 하던 김정일은 아파트 지하창문으로 삐죽 나온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고 저 연기가 무엇이냐고 동행 간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동행간부는 전화로 뒤 쫓아 오는 호위차량에게 사실 확인을 지시했고, 이후 지하에서 사는 한 가족의 연탄 연기라는 것을 김정일에게 보고했습니다.

     김정일은 대노하여 아파트 지하는 유사시 대피 공간인데 거기에 가정집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평양시 아파트들에 불법적으로 입주한 가족들과, 그것을 허용한 간부들을 조사하여 군법으로 엄하게 다스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아파트 지하 입주자들 체포령

     다음날부터 조선인민군 검찰소 검사,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로 구성된 '전시대피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대책위원회의 조사는 김정일이 직접 목격한 지하 아파트 가족과 동사무소 직원들에 대한 체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갑을 차고 보위사령부에 끌려간 그들은 전시법을 어겼다는 검사의 추궁에 아연했습니다.

     그들의 죄라면 김정일의 시야에 우연히 들었다는 그것일 뿐, 아파트 지하입주는 너무도 당연한 시민의 권리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추궁하는 검사들도 이 문제를 어떻게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전시법으로 다스리기엔 그 법적 요구가 너무 현실성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89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를 위해 2년이란 짧은 기간에 북한은 평양시 5만 세대 건설을 하였습니다.  그 후, 후유증으로 북한의 모든 지역들에서는 사실상 아파트건설이 1990년부터 일체 중단되었습니다.

    아파트 불법 거래...평양시내만 지하 생활 주민 15만명

     겨우 생산되는 시멘트, 철, 목재들마저도 발전소와 같은 전략시설들과 군수 건설에 우선 집중되었기 때문에 권력기관들이 직원 아파트를 짓자고 해도 7:3 비율로 개인과 나누는 방식의 거래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즉, 기관은 토지와 인력을 내고, 개인은 중국에서 건설자재를 들여오는 방식으로 기관은 70%의 소유권을, 개인은 30%의 소유권을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급되거나 팔리는 고가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간부들이나 돈 있는 사람들의 소유로 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에겐 새 아파트란 꿈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파트난이 체제불만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평양시는 전시법 위반인 줄 알면서도 처음엔 시민들의 불법적 지하입주를 방치하였습니다.

     특히 겨울이면 지하입주 가정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경쟁률도 치열해지자 나중엔 평양시가 아예 지하입주권을 공식 발행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렇게 평양시가 발행한 합법적 지하입주권으로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족 인원은 2002년 1월 전시대피대책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15만이나 되었습니다.

    평양 인구200만명 10%가 옥상생활...전시법 위반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아파트건설을 할 때 반드시 지하와 옥상을 전시용으로 설계합니다. 지하는 대피 지역으로, 옥상은 전시방송 설치 및 감시 기능을 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아파트들마다 지하와 옥상에 대한 관리권한만은 별도로 해당 구역 당 민방위에서 갖고 있습니다.

     평양시는 지하입주권과 함께 나중에 옥상입주권까지 발행하게 됐는데 그 인원은 평양시 200만 인구의 10%에 해당되는 20만 수준이었습니다. 그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전시 대피지역을 가정집으로 만든 것은 평화 시기 쌀이 부족하다고 전시용 군양미를 다 먹어치우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역적행위라며 한 달을 더 주겠으니 관계자들의 처벌은 물론, 자기가 정한 그 시간을 더는 넘기지 말도록 간부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추운 1월에 20만이나 되는 시민들을 한지로 내몰 경우 그것이 더 큰 악재로 돌아올 것이라는 이견들이 모아져 전시대피대책위원회는 처음엔 군법으로 아파트 수탈 작전에 돌입합니다. 그 첫 대상이 개인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된 북한에서 아파트를 돈으로 사고 판 범죄자들이었습니다.

    범인은 모두 고급간부들...'동거입주' 아비규환

     그런데 그 범인들이 중앙간부들이거나 그들의 연고자들이었고, 또 대부분 고급아파트들이 었습니다. 결국 대책위원회는 군법으로 '동거입사증'을 새롭게 발행하고 실천하도록 하였습니다. 동거입사증이란 방 숫자에 비해 가족 수가 적은 가정들을 요해 종합하여 그 집에 지하, 혹은 옥상가족들을 동거시킨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정한 한 달 시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전시대피대책위원회가 군법으로 동거입주를 일괄 강행하자 평양시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되버렸습니다.

    평화롭던 가정에 생전 보지도 못했던 남의 집 식구들이 동거입사증의 합법성을 주장하며 이삿짐과 함께 쳐들어오자 몸싸움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졌습니다. 아들딸을 모두 장가 시집보내고 노부부만 오붓이 살던 어떤 집에서는 동거가족이 처음부터 주인행세를 하려고 하자 아예 창문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전시대피대책위원회는 시민들의 분노를 억제시키기 위해 중앙당의 간부들이 동거입사에 앞장 섰다며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간부들이 일반 시민들을 기만하기 위해 따로 살림하던 자녀들이나 친척들을 일시적으로 불러들이는 가족 친인척동거가 그 선전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대책위원회는 동거입사를 허용하는 가족들에 한해 여러 가지 우대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싸움, 불륜, 절도, 살인 등 범죄 잇따라

     새 아파트가 건설되면 먼저 공급한다는 것, 대북지원 식량이 들어오면 석 달 분을 먼저 배급해 준다는 것, TV나 냉장고 둘 중 하나를 앞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을 믿을 시민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여, 대책위원회는 동거입사 갈등을 최소한하기 위해 각 기관들에서 자체로 동거입주를 조절 해결하도록 했고 대신 아파트 건설에 대한 자율화 조건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돈 있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부동산업에 뛰어들면서 아파트 시장에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렇듯 동거입사 정책실현 이후 오히려 체제불만을 가증시키는 부작용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서로 모르는 가족끼리 화장실도, 부엌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과정에 몸싸움, 불륜, 도둑, 살인과 같은 범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전시대피대책위원회는 기본 입주권자가 동거입주권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내보낼 수도 있다는 조건을 발표하면서 3달도 채 안 돼 다시 평양시 지하와 옥상에는 입주 가족들이 꽉 차게 됐습니다. 김정은이 어느 날 또 다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면 그때는 과연 어떤 비상조치가 나올지 궁금할 뿐입니다.       

    장진성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저자 /뉴포커스 대표 www.newfoc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