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외교엔 북한인권이 없다!

    - 잡지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 /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축제 참가 후기 -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 올해 3월 10일경이었다.
    영국 <BBC>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런던올림픽 문화행사 차원에서 시(詩) 축제가 열리는데, 주최 측에서 나를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게 도대체 뭔 말인가 싶었다.

    사우스뱅크 센터는 무엇이며,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The Poetry Parnassus)는 또 무엇인지,
    그리고 왜 하필 탈북자를 초대하려는지 말이다.

    일단 알겠다고 대답한 지 보름이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주최 측으로부터 축제를 상세히 소개하는 이메일이 왔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이 초대]가 나에겐 엄청난 기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메일 내용은 이러했다.


    “6월 말 런던에 전 세계 시인이 집결한다.
    제30회 런던올림픽(7월 27일 개회)을 맞아,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시 축제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가 열린다.

    이 축제에는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204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참여한다.
    축제 조직위원회와 각국 독자들의 투표를 통해 나라마다 시인 한 명씩을 선정했다.

    장진성 시인은 북한 대표로 참석하게 된다.
    영국 <BBC>를 통해 알려진 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가 당신을 초대하게 했다.

    약 200개국 시인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문학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인 축제로서 [시인 올림픽]이다.
    축제 명칭은 시의 여신 뮤즈가 태어난 그리스의 파르나소스 산에서 따왔다.
    고대 올림픽이 열릴 당시 그리스인들이 품었던 시적 영감을 잇는다는 뜻이다.”


    이어 주최 측은,
    다른 독재 국가 시인들도 초청하는 관계로 자기들이 공개할 때까지는 보안을 지켜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5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 관계자에게서 또 다른 메일이 날아왔다.
    나에게 영국 옥스퍼드 문학상을 주겠다는 것이다.


    “<렉스워너상>은,
    1610년도에 만들어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워덤 칼리지>가 주는 상이다.
    상 이름은 <렉스워너상>이라고 하는데,
    영국의 유명 소설가이며 역사가였던 <렉스 워너>의 삶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1년에 한 번씩 세계 문학작품들 중에서 몇 편을 선정해 <렉스워너상>을 준다.
    수상작품이 없으면 그 해에는 발표를 안 할 만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워덤 칼리지>는 이번에 장진성 시인에게,
    한국인 최초로 <렉스워너 1등 상>을 주게 된다.

    1등 수상작품들은,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아이의 꿈〉,
    〈사형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우리의 삶은〉
    이다.
    이 시들은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로 기록되게 된다.”


    [시인올림픽]에 초대받은 것만도 행운인데,
    나의 조국인 한국에서도 받지 못한 문학상을 세계 유명 대학인 옥스퍼드로부터 먼저 받게 되어,
    영국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기대는 더 커졌다.


    계관시인 케이 라이언,

    “너무 슬픈 시여서 아름다웠다”


     

  • 내가 런던 국제공항에 도착한 날은 지난 6월 25일이다.
    <아시아문학저널> 대표와 그 부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호텔로 가는 동안, 나는 시 축제 준비위원인 이영은(재미교포 출신)씨와의 대화에서
    축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로비로 내려오니,
    벌써 수십 명의 시인이 모여 자신의 책들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서로 아는 사이인 듯싶었다.
    하긴 각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인 만큼,
    세계문학축제들을 통해 낯을 익힐 기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오직 나만 외로웠다.
    더구나 북한의 폐쇄성만큼이나 영어도 할 줄 몰라,
    다가오는 시인들과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화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언어 감옥]에서 나를 구원해 준 은인은 재미교포 출신 이영은씨였다.
    남편이 영국의 유명시인이며 <아시아문학저널> 대표여서 아는 시인들도 참 많았다.
    그녀가 나를 북한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외국시인들은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영국 《파이낸셜 매거진》에서 내 사진과 시를 보았다며 알아보는 시인들도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Wole Soyinka)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고 싶었던 시인이었다”고 이야기하자,
    북한시인에 대한 다른 시인들의 관심은 더 커졌다.

    그때 미국 대통령 계관시인 케이 라이언이 호텔에 나타났다.
    이영은씨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나의 영문판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건네며,
    나를 소개했다.
    케이 라이언은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며 가볍게 인사한 후 객실로 올라가 쉬겠다고 했다.

    그런데 두 시간 후 그 시인이 다시 로비로 내려와 나를 찾았다.
    그녀는 “내가 잠을 뒤로 미루고 내려온 것은 당신 때문”이라며
    “침대에 누워 한 장 두 장 읽다가 단숨에 읽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집은 역사적 증언이다.
    책을 괜히 봤다는 생각을 했다.
    잠들 수가 없었다.
    시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을,
    북한의 시인으로부터 받아서 충격이었다.
    정말 슬펐다.
    그런데 시여서 아름다웠다.”


    그 외에도 영국의 계관시인인 앤드루 모션,
    [시의 여왕]이라는 조셉 코트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북한에도 문학이 있고,
    그것을 정권 유지로 악용하는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면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나는 선한 얼굴의 그 시인들이 인권이란 단어 앞에서는 투사로 돌변하는 것을 보며,
    한국에서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시인으로서의 사명과 긍지감을 새삼스레 갖게 됐다.

    시인들을 만나며 느꼈던 또 하나는,
    국제대회라는 큰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의 옷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단 점이다.
    나만 정장을 입었고 모두 캐주얼 차림이었다.
    심지어는 축제 개막식이나
    런던 시민들과 국제기구 대표들이 참석하는 큰 시낭송 모임에서까지도
    사회자의 옷차림이 캐주얼이었다.
    나는 그 어떤 형식과 틀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축제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영국 주재 한국대사의 요란한 행차


     


  • 영국, 그 나라에서 내가 받았던 첫 느낌은,
    문화선진국일수록 인권선진국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영국이어서 아시아-아프리카-중동과 같은 세계 도처의 [인권 호소]가 다 모여 있었다.
    TV나 신문들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인권 소식이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사가 비상히 높은 것이 신기했다.

    한마디로 서방의 인권의식에는 민족주의가 따로 없었다.
    인권, 그 자체일 뿐이었다.
    남의 나라 인권에 분노할 줄 아는 인권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통역을 맡았던 재미교포 출신 이영은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서방은 북한 실상을 잘 모른다.
    그 이유는 북한 인권에 무관심한 한국의 외교 탓이다.

    어느 정도인지 아는가?

    영국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옥스퍼드 대학에 강의를 나왔을 때,
    학생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질문하자,
    자기는 통일부 직원이 아니라 한국 외교관이라며 K팝만 설명하더라.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어떻게 자기 동포의 인권문제가 한국 외교에서 빠질 수 있는지 의아했다."


    실제로 나는 북한 인권이 없는 한국의 외교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축제 기간 행사장에는 명단에 없는 외국인들이 자주 보였다.
    주최 측 설명에 의하면,
    서방외교는 주로 문화외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국 대표 시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온 외교관들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영국 주재 한국 대사도 축제 폐막식 때 여러 명의 사진기자를 대동하고 행사장을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축제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 몇 장만 찍고 올 때처럼 갈 때도 요란하게 사라졌다.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외국시인들은 한국 대사의 한순간 시끄러운 행차를 보며,
    “저 사람은 여기 왜 왔었나?
    한국 대사인데도 왜 한국에 망명 온 당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당신이 북한 시인이기 때문인가?
    한국은 북한 인권과 통일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재영탈북인연합회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도,
    나는 한국 외교의 북한 인권 공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재영탈북인연합회> 김주일 회장을 비롯해, 사무총장-이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대화 중
    거의 절반은 영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 대한 비판이었다.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에는 북한 인권 운동을 반대하던 친북외교였고,
    이명박(李明博) 정부 들어와서는 아예 무관심 외교로 변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외교정책도 변했으니 대사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 보라는 나의 말에,
    그들은 큰소리로 웃었다.
    자기들도 처음에 그런 순진한 생각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당신들은 북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대사관이 도움을 줄 수 없다”
    냉정하게 거절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야 제3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외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모두 북한 국적의 망명자 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외에서 가장 큰 탈북자 조직인 <재영탈북인연합회>는,
    자기들이 번 돈과 민간 후원금으로 북한인권운동을 외롭게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들은 나와 헤어지면서 왠지 허전한 얼굴로,
    “코리아타운에는 DMZ가 없다.
    남한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모두 한국인이고,
    그래서 차별이나 경계도 없는 좋은 통일한국이다”라고
    했다.

    영국 귀족원의 어느 정치인도 나와의 사석에서 한국 외교를 비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외교관보다 북한 외교관에게 더 정(情)이 간다.
    북한 외교관들은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솔직해서 인간적이다.

    그런데 한국 외교관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선진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대단한 격식과 자존심을 내세운다.
    북한에 비해 사람이 자주 교체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외교란 결론적으로 인간적 외교이고, 개별적 외교다.

    한국 외교에 북한 인권 참사 직함이라도 있으면 논의해 보겠지만,
    그게 없다.
    그 직함은 결코 유엔 가입국, 즉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 아니다.
    분단 독일 시절에도 서독의 외교는 자기 민족의 인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탈북자 지원한다면서 이사장 연봉이 1억원 이상


  • 이명박 정부 초기, 대통령은 통일부를 축소시키고 대북기능을 외교부로 옮기려 했었다.
    그런데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반통일 행위라고 비난해서 무효화됐다.
    사실 한국 외교의 문제는 정부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통일부가 불필요하게 과잉조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통일부에만 국한시켜 놓으니,
    외교부는 북한 인권이 [남의 집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중대한 손실이다.
    남북 직접 구도로 가면 북한의 평화협박 전략에 항상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북한은 국제동맹으로 압박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북핵과 함께 인권문제로 국제공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즉 정책적 공감보다 정서적 공감이 우선인데,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또한 자유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할 통일부에 남북대화 기능이 함께 있는 것 자체도 문제다.
    결국 남북 실적을 위해 자유통일 정책 일관성을 일부 조정할 수밖에 없고,
    통일부의 주요 목표가 돼야 할 북한 인권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역시 인권보다 남북대화를 더 우선한 결과이다.

    통일부의 독과점은 남북대화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경협이나 대화 주체를 분산시켜야 북한의 전략도 무력화시킨다.
    이를테면 이산가족 상봉은 인권위원회에서,
    남북경협은 경제부처가 주관하게 해야 북한의 전략적 주적 명분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인권위원회에서 다루면,
    북한이 대외적으로 <인권위>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도 약화된다.

    그런데 모든 교류를 통일부에 국한시키니,
    북한이 저들의 전략적 목표에 따라 대화공백이 필요할 시점에는
    통일부의 대북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탈북자 정착 지원도 왜 통일부 소관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왔으면 남한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
    행정자치부로부터 행정 서비스를 받고,
    정착이 덜 된 불우계층은 보건복지부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통일부에 귀속시켜 놓으니 탈북자라는 [딱지]가 계속 따라다녀 차별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통일부 소속으로 260억원 예산을 가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있다.
    탈북자 지원 예산까지 통일부가 독점하면서,
    탈북자들이 행자부나 복지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다문화가정 범주의 지원개념으로 축소된다.
    외관상으로는 탈북자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재단 같지만,
    실은 통일부 노후재단에 불과할 뿐이다.
    탈북자들은 빈곤한데,
    살찐 귀족재단으로 이사장 연봉은 1억원 이상,
    사무총장 연봉은 9,000만원, 기획총괄실장은 7,000만원이나 된다.

    재단 홍보담당자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남들처럼 이익을 창출하는 기관이 아닌데도,
    다른 공공기관들에 비해 적은 연봉이라고 공개 글을 올릴 정도이다.
    탈북자 지원에 둔감한 정도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둔감한 [양심이탈지원재단]인 것이다.
    이렇듯 통일부는 남북관계를 의식해,
    북한 인권 운동을 하는 탈북단체들도 지원할 수 없는,
    구조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매우 불합리한 조직이다.


    “북한의 악행은 나치독일의 만행보다 심하다”


     


  •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 축제> 준비위원회 측은 시 축제가 열리는 한 달 동안,
    영국의 중부와 북부-남부 지방도시들을 순회하는 시낭송 축제를 기획했다.
    그 축제들에서 나는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의 시들을 낭송했다.
    시를 들은 영국인들은 처음 듣는 북한의 이야기여서인지 흥분했다.
    나를 찾아온 어떤 영국인은,
    “과거 나치독일의 만행은 교과서에 나온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악행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다.
    과거보다 더 나쁜 일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주변에 당신과 당신 나라의 일들을 다 말하겠다”
    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크자,
    축제준비위원들도 나에게
    “북한 인권을 모르고 살아온 데 대해 지식인으로서 반성한다.
    이제는 알았으니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그동안 아프리카-중동의 인권에만 적응했는지,
    시와 현실을 분리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그들의 관심을 유도할 목적으로
    영국과 가까운 <타이타닉>을 악용한 북한의 사례부터 들려주었다.
    우연하게도 <타이타닉>이 침몰한 날짜에 김일성(金日成)이 태어났다.
    북한은 이마저 신격화에 이용하기 위해,
    “타이타닉이 침몰되던 1912년 4월 15일 서양에선 태양이 침몰할 때, 동양에선 태양이 솟았다”는 억지비교를 했다고 말해 주었더니,
    그들은 “오 마이 갓!”하며 ‘미친 나라’의 실상을 더 듣고 싶어했다.

    그들은 중대한 조언도 해주었다. 


    “서방에 북한 인권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정치적 요인도 있겠지만,
    기본은 북한에서 망명한 작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중동에선 많은 작가가 서방으로 망명해 자국의 실태를 알렸다.

    그러니 장진성 시인을 비롯한 탈북 작가들이 북한 인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선 이번에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하라.”


    마침 그런 기회가 왔다.
    축제준비위원회가 개막 이전에,
    204개 나라 시인들의 대표 시들로 엮어진 시집 《THE WORLD RECORD》를 출판했는데,
    거기에 실린 내 시를 보고,
    영국 <BBC> 방송의 유명 아나운서 리지아 이크발이 마련해 준 인터뷰 자리였다.

    그날 방송은 8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전 세계에 방송하는 <BBC> <뉴스 아워>였다.
    인터뷰 진행자는 <뉴스 아워>의 앵커 오웬 베네트 존스였다.
    그는 방송에서 내가,
    “당신들은 내 말에 경악하는데,
    나는 북한 인권 상황을 모르는 당신들이 더 놀랍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인권문제는 심각하게 의식하면서도
    어떻게 그 나라들보다 더 지독한 북한의 3대세습 독재를 모를 수 있나?
    인권 기준이 투자가치로 판단하는 것인가?
    중동은 기름이 많이 나오는 나라여서 꾸준히 인권제기를 하는가?”
    라고 하자,
    진행자는 편집자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이 부분을 강조하라는 의미에서 엄지손가락까지 세웠다.

    방송이 나간 후 <BBC> 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그날 <뉴스 아워> 프로그램 중,
    북한 인권 관련 인터뷰가 가장 좋았다는 방송 편집국의 평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번의 <BBC> 방송과,
    영어권 나라들에 송출하는 <네덜란드 국영방송>의 50분짜리 인터뷰를 하게 됐다.
    또한 미국 AP통신이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 축제> 참가소감과 옥스퍼드 문학상 작품들인 5개의 시를 소개했는데, 이를 《워싱턴 포스트》를 포함한 미국의 6대 신문을 비롯해,
    세계 944개 언론이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한국 언론만 조용했다.
    정치범 출신인 신동혁도,
    미국의 유명인들만 출연한다는 <60분> 토크쇼에 나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고발했지만, 그에 대해서도 역시 한국 언론만 침묵을 지켰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영국 3대 신문사 중 한 곳과 유명 인권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북한 인권과 관련한 칼럼을 정기적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광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북한 이야기를 북한 사람에게서 직접 들을 수 있게 된 데 대해 자기들이 행운”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발행하는 《뉴포커스》 영문판이 만들어질 때쯤,
    칼럼에 홈페이지 주소를 넣어 소개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 달라고 했고,
    그들은 충분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서방의 진보는 한국의 진보와 달라


     


  • 영국 <BBC> 유명 아나운서 리지아 이크발은,
    이번 시 축제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북한 인권의 심각함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충격이 컸던지 그녀는 7월 13일,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영국 남부 지방도시 다팅턴에 있는 귀족의 성지에서,
    세계적인 칼럼리스트-작가-기자-영화감독들과 시민들이 초청된 문학축제의 시낭송자로,
    나를 지명했다.

    그날 시낭송이 끝나고 토크쇼가 진행될 때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상황도 있었다.
    어느 아프리카 작가가,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라는 나의 발언에 거칠게 항의를 한 것이다.
    아프리카 나라 인권이 더 극심하다면서 말이다.
    나도, 객석의 사람들도 모두가 당황했다.

    사회를 보던 리지아 이크발은 두 손을 들어 보이고 나서 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나는,
    “아프리카 인권도 물론 심각하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국가 간 전쟁이나 지역 및 종교분쟁, 정권부패에 의한
    무질서와 혼란이 낳은 빈곤이고 인권유린이다.
    그에 비해 북한은 정권 주도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독재이다.
    사실 이런 조직적인 독재가 더 지독하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그렇게 수용소 환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3대 세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박수로 호응해 주었다. 

  • 그날 축제 손님들 중에는,
    세계 12위권 안에 드는 정치저널지 《뉴레프트 리뷰(마르크스저널)》의 대표 타리크 알리도 있었다.
    파키스탄 출신인 타리크 알리는,
    저술가-소설가-역사가로 서방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집하는,
    세계적인 좌파운동의 대부(代父)로도 유명하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라크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
    특히 9·11테러를 미 제국주의의 통쾌한 붕괴로 보는 철저한 반미주의자이기도 하다.

    한국에 번역된 그의 주요 저서로는,
    《근본주의의 충돌》(이토),
    《1968》(삼인),
    《술탄 살라딘》(미래인),
    《석류나무 그늘 아래》(미래인) 등이 있어,
    한국 내에서도 그를 추종하는 진보세력들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내 손을 잡고,
    장시간 북한을 방문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김일성에 대한 증오를 피력했다.


    “김일성-김정일은 고약한 사람이다.
    자신들의 신격화를 위해 역사적 사실은 감추고,
    주체에 대해서만 요란하게 광고한다.
    주체는 사실 외국이 무서워서 만든 것이다.
    역사까지 기만하는 그런 권력자에 대한 증오로,
    솔직히 나는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테러하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는 훗날 미국 럼스펠드의 보좌관에게
    [북한을 넘어뜨리도록 왜 남한을 도와주지 않느냐]고
    북한에 대한 결정적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었다.”


    “당신은 진보주의자인데, 왜 사회주의 북한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그는 화난 듯한 억양으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진보주의자니깐,
    정상적 진보라면,
    북한 같은 독재를 증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방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의원들도 같은 주장의 남한 의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대화를 위해 인권을 양보하지 않는다.
    인권과 대화를 같이 병행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원칙외교가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고압적이다.
    그 원칙외교의 중심에는 영국 상원의원 데이비드 알턴이 있다.
    그는 서방과 북한을 잇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인 최태복을 영국으로 초청한 것도 알턴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영국 국회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북한과의 외교적-합법적 관계를 통한 인권해결 방식은
    북한의 거짓을 합법적으로 키워주는 꼴”이라며
    남북 관계를 사례로 2시간 동안 설명했다.
    이에 깊이 공감한 데이비드 알턴은,
    앞으로 북한을 다루는 비합법적 방식에 대한 지원과 공조를 부탁했다.
    그는 자리를 옮겨,
    얼마 전 평양을 방문했던 영국 수상의 비서 겸 상원의장인
    로드 스피커의 직명(귀족이라는 뜻으로, 모든 귀족은 여왕이 임명한 그 여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함)을 갖고 있는 바로네스 콕스를 소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알턴은 내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링크까지 걸어 소개했다.
    그동안 서방과 북한을 이어왔던 유명 정치인의 입장에서,
    평양에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진 셈이다.
    더구나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리는 나의 BBC 인터뷰 사진도 함께 게재함으로써,
    알턴 귀족은 나의 활동과 목적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었다.


    세계 문인들 북한 인권 위해 서울 오기로


     


  • 나는 런던에서의 <시인올림픽> 축제에 참가하는 첫날부터
    [북한 인권을 위해 세계 각국의 대표시인들과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시인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그 계획과 참석여부를 물어보았다.
    남의 집 잔치에 와서 내 손님을 만드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축제준비 성원들이 의외로 지지해 주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그래서 100여 개 나라 시인들로부터
    “서울에서 북한 인권 행사를 하게 된다면 꼭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세계 유명 시인들과 개별적 만남의 자리에서도 북한 인권 행사 계획을 설명했고,
    초청하면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 시인들인
    앤드루 모션(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여하는 훈장을 받음), 조셉 코트, 사이먼 아미티지도,
    나의 기획을 적극 환영하면서 참석을 약속했다.

     


  • [세계 여러 나라 도시에 폭탄이 아니라 평화의 시를 뿌리자]는 행사를 주도한,
    칠레-영국-독일 시인 3인도
    내게 서울에서도 헬기로 시를 뿌리는 평화 행사를 만들어 내자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로 했다.
    영국 런던축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런던 상공에서 시가 비처럼 내리는 장면이었다.

    템스강 상공을 나는 헬리콥터가
    사우스뱅크 센터 주빌리 가든을 향해 10만 장의 시를 뿌리면서 오프닝 행사를 시작했다.
    그날은 런던의 쓰레기도 시로 보이는 날이었다.
    [비가 되어 내리는 시](Rain of Poems)가 런던 하늘을 뒤덮는 장관이,
    우리 서울에서도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끝없이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세계 여러 나라 시인들과 축제 제목도 논의했다.
    나는 그때마다 북한문제에 민감한 한국 내부의 사정을 설명했는데,
    외국인들은 “인권인데, 인권이잖아” 하며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북한 인권이란 단어를 정치적으로 보는 남한의 정치현실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북한 인권만이 아니라 남한의 평화도 함께 강조하는 차원에서
    [북한에는 자유를! 남한에는 평화를! 한반도에는 통일을!]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았다.

    이번 경주 국제펜클럽대회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에게
    “이 행사를 주도하면 오겠는가”라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문제는 돈이다.
    150여 명을 초청하자면 5억원이라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대주겠다는 곳이 없어,
    멋진 손님들도 행사 의미도 충분히 준비됐는데,
    더 추진할 길이 없다.

    내가 부자가 아닌 것이 한스럽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