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특별조사위원회는 일본을 속였다.

    장진성  /탈북 문학가, 뉴포커스 대표

    북한의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일본인 납치 주범은 대남공작부서인데
    국내 정치감찰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위원장으로 정면에 등장해서였다.
    사전에 일본 내에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과연 누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혀를 찼다. 일본이 북한을 그 정도로 모르나 싶었다.
     
    제대로 된 북한특별조사위원회가 되자면 국가안전보위부는 물론
    일반인들이나 감시 관리하는 인민보안부는 아예 빠졌어야 한다.
    왜냐하면 납치범죄를 감행하고 지금도 피해자들을 직접 관리하는 노동당 대남공작부서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의 영역 밖에 있는 특수기관이기 때문이다.
     
    폐쇄사회인 북한은 보안과 계층등급 차별화를 위해

  • 노동당 과장 급 이상 간부들과 대남공작부서 요원들만 별도로
    창광보위부와 창광보안부에서 감시 관리한다.
    '창광'은 중앙당 청사와 간부사택이 밀집된 거리 이름이다.
    그 부서들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가 아닌
    당 조직지도부 직속이며 오직 그 지휘만을 받게 돼 있다.
 
일본인 납치피해자들은 대남공작부서 소속이어서
창광보위부나 창광보안부 관리 인물등록대장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 북한측이 발표한 특별조사위원회 개요설명 중에는
인민보안부 주민등록대장의 정밀조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북한이 처음부터 거짓말 한 셈이다.
 
함정은 비단 거기에만 있지 않다.
납치피해 주범인 노동당과 그 산하 대남공작부서는 전부 빠지고,
엉뚱하게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국토환경보호성, 조선적십자위원회, 보건성 등
민간부서들로 채워져 있는 점이다. 조사규모도 대남공작부서 기밀실 하나면 충분한데
굳이 전국적 규모로 확산시킨 것 또한 거대한 우롱이다.
 
물론 국방위원회 특별권한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그것도 큰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국방위원회는 북한의 선군정치를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기구이다.
북한의 실제적 관리부서는 국방위원회 위원들까지 임명하고 해임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이다.
 
김정일이 수십년 간 당 조직지도부 부장 겸 비서로 일하면서
김일성 당 총비서 밑에서 다진 세습권력이고,
그래서 북한에서 당과 수령의 유일지도체제란
곧 당 조직지도부의 유일적 통제와 지도, 관리에서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당 조직지도부의 재결심은 있어도
국가안전보위부의 재조사란 있을 수 없는 구조이다.
 
북한이 국방위원회 특별권한으로 모든 기관과 인물을 조사하겠다고 운운한 것 자체가
자유세계의 다양성에 맞는 맞춤형 전략의 기만인 것이다.
북한의 이번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보면 목적은 크게 4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재조사의 형식만 부풀리고 대남공작부서들의 구체적 범죄와 동기, 증거를 회피하고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시선을 3호청사가 아닌 전역으로 돌리고 시간만 지연시키려는 것이다.
 
둘째는 대남공작부서 밖에서 근무했던 납치피해자 한 두 명을 상징적으로 귀환시킨 후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납치회담을 유골회담, 즉 산 사람이 아니라
8.15전 유골 송환문제로 변질시키려는 것이다.
그걸 위해 전국적 규모의 재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회담의 성과가 크게 진전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재조사 기구와 형식을 최대한 늘려 그 하나하나의 인건비와 시간 노력을 계산해서
아베 정부에 현금 영수증을 내밀기 위해서이다.
 
넷째는 궁극적으로 납치회담이 실패할 경우 일본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이다.
북한은 분명 회담이 성숙될 시점에 과거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와 했던 경제지원 약속의 실행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자고 납치문제 해결은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처음부터 못 박아 선전하는 것이다.  
 
그럼 북한은 왜 일본 정부와의 대화를 서둘러 재개했을까?

그 이유는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 이전과 이후의 북중관계는 분명 다르다.
김정일의 '주체'를 참아왔던 중국 지도부가 북한에 작은 미련을 걸었던
유일한 개혁인물은 장성택이었다.
때문에 그를 처형시킨 김정일의 동지들인 당 조직지도부가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오늘의 북한 현실을 계속해서 인내할 중국이 아니다.
 
북핵압박과 원유중단, 그리고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앞서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원하는 것도 장성택 처형에 대한 중국의 분노가 당 조직지도부엔 잠재적 위협이 되어서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일본 정부는 조총련 본부 건물까지 압수한 이상
정치, 심리적으로 북한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고작 납치피해 재조사라는 시간과 변명의 기회를 북한에 제공했고,
거기에 일본 스스로가 구속되는 오류를 범했다.
한마디로 범죄자가 자기 범죄를 재조사할 수 있는 세상에 없는 특별면죄부를 주었다.
일본은 시작부터 국가안전보위부나 전국 재조사 같은 우회적 방법이 아니라
납치피해 주범인 대남공작부서들을 회담 탁에 끌어 내는 직접 대화방식을 취했어야 한다.
 
그래야 회담의제를 처음부터 전원 귀환이냐, 아니냐 하는 공격적 차원에서 주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작 북한과의 재조사 합의에 그 대가로 말이 부분적 대북 제재 해제이지 인적 물적 교류라는 기본적 해제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성급한 양보가 실익이 없을 경우 북한이 언제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도록 조건제공을 해 준 셈이다.
 
범죄의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의 대가를 요구하는 북한에 분노는 커녕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납치 피해자 가족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그 동안 얼마나 컸으면 그럴까 싶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마음은 무겁다. (일본 산케이신문 7월 5일자 기고칼럼)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