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은 외교부 관리들...
  • 지피지기[ 知彼知己]의 노력이 아쉬운 시점




  • 이재춘 회고록 표지ⓒ
    ▲ 이재춘 회고록 표지ⓒ

    추석 연휴 기간 중의 언론 보도 중 주목할만한 외교 관련 기사는,
    현재 최악의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일관계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중앙일보>는,
    한-일관계의 악화가 한-미-일 3각안보협력관계에 미치는 부작용과 한-중관계와 미-중관계, 그리고 전반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위시한 대한민국의 안보위기를 극복하는데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하였다.
    특히 최근 들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미-중-일, 북한 등 관련국들의 동향을 소개하면서,
    자칫 한국이 외교적으로 외톨이가 될 가능성까지 지적 하고, 9월 한 달이 한국외교의 입지가 결정될 분수령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조선> <동아> 등 여타 신문에서도,
    이달 중으로 예정되어 있는 각종 회담,
    예컨대 한-일 아주국장회의, 한-일간 안보정책협의회, 한-중-일 차관보급 회담, 한-중-일 차관급 전략대화 등 회의 일정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회담을 통해 금년 11월에 북경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담에서 한-일간 또는 한-중-일간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어느 언론이나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한-일간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양국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원만한 합의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해석한다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없는 한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위안부 문제가 한국의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경고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약간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언론의 지적과 경고에 일리가 있다고 사료되어 몇가지 부연하고자 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양국간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현안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양국관계의 전반을 좌우하는 사안은  아니다.
    더구나 이 문제로 대한민국의 외교적 입지가 좌우 되어야 할 그런 사안은 더욱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이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관료들이,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려는 잘못된 시각으로 접근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연휴기간 중 외교부의 간부들이 정신대 문제연구소에 찾아갔다든지,
    또는 어떤 모임에 가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원칙고수를 강조했다든지 하여,
    언론에서는 국장급 위안부 문제 회담을 앞둔 외교부의 “대일 압박” 이라는 해설을 달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 나라의 외교안보 환경이 연휴기간에 그런 일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관료들이 국익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일본에 관한한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여야 책임을 추궁 당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 아연할 뿐이다.
    손자병법으로 일컬어지는 謀攻篇(모공편)에는,
    知彼知己(지피지기)는 百戰百勝(백전백승)이요,
    不知彼不知己(부지피부지기)는 每戰必敗(매전필패)라고 했다.
    외교교섭에 있어서도 그 원리는 같다고 할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흔히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이 있어야 해결 된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문제야 말로 知彼知己(지피지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양국 정부의 그동안의 대응을 요약해본다.

    일본 정부의 사과문제: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14일 고오노(河野)관방장관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과 동원 관리 등에 일본 官憲(관헌)의 관여가 있었다는 점과 총체적으로 강제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며 사과한다”고 발표 하였다.
    최근에 이 담화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부의 언동이 있지만,
    아베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공언하였다.
    따라서 사과문제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한국 측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의 진실성 여부를 계속 따지는 것은 자승자박이 될 뿐이다.

    일본 정부의 보상문제 :
    고오노 담화 후에 한-일간에 보상문제가 협의에 들어간 시점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은 것으로 족하며 보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이로써 이 문제는 일단 해소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외교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교섭할 의무를 진다고 판시했다.
    이 때문에 재교섭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헌법재판소의 판결문 때문에 외교 교섭을 한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일본에 대한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본은 1965년 한-일 간의 청구권협정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에 대한 모든 권리와 의무가 동 협정의 규정에 따라 영구적으로 소멸된다” 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따라서 그들이 이러한 입장을 철회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문제는 한국의 입장이다.
    일본 문제를 다루어온 많은 관리들이 그간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재점검해 보면,
    위안부 문제 교섭은 명분과 실리 양면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크게 기여할 이슈가 아니라는 것, 
    즉 知彼知己(지피지기)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얻을 것도 크게 잃을 것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 교섭은 당분간 휴면 상태로 접어두고,
    국가안보와 북핵문제 등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위에 관련되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외교력을 집중해야될 시기가 되지 않았겠는가?

    여론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커다란 이익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