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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리버가 첫 눈에 반해버린 이승만의 얼굴.(자료사진)
▶ "하나님, 감사합니다"...국가기반 국민 직선제 완성에 자부심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백성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기도에 항상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제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올렸던 기도를 버리지 않으시고, 언제 죽을지 모를 이 늙은 몸을 이용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뜻으로 진정한 헌법까지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국민은 이제 하나님의 충직한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정의를 받들어 용기를 가지고 남북통일까지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게 인도하여 주십시오. 자유의 적과 싸우는 전쟁터에서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국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기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아멘.”
자나깨나 기도, 앉으나 서나 기도, 기도로 눈을 뜨고 기도로 일을 하고 기도로 잠드는
기도의 인간 ‘하나님의 종’ 이승만은 국회개원이래 그래왔듯이 직선제 개헌도
‘하나님의 역사’로 믿어 감사드리는 기도 항목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는 기자회견에서도 여러 차례 자기의 뜻을 분명히 공표하였다.
“우리 국민이 자기가 원하는 국가지도자를 직접 뽑을 수 있도록 대통령 직선제가 헌법으로
보장해주어야 하며, 통일이 되면 이북의 총선거를 실시하고 즉시 상하 양원제가 실현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독립을 위해 구상해왔던 일들은 대강 끝나는 셈이다.”
이승만에게 ‘직선제’ 개헌은 건국 시나리오의 마지막 챕터에서 ‘서둘러 건국하느라 빠져버린’
장면을 다시 재생시켜 미완의 헌법을 완성시킨 작업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만은 독일의 유명한 잡지 [칸츨리트: Kanzlit]의 요청에 따라
‘개헌과 건국4년’에 대한 발표문을 보내, 자신의 평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시작 단계에서 전쟁으로 인한 황폐화, 인플레의 극한적 상황에
시달리고 있지만, 우리의 헌법 개정은 폭력 없이 압도적인 국민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졌다.
새로운 헌법 아래에서 민주주의는 한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 확고하게 뿌리는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4년의 기록에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토지개혁 프로그램 성공으로 소작농이 사라졌고, 교육자원은 일제 식민지 35년보다
4배나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4차에 걸친 전국규모 선거 참여율이 평균 90%에 달한다.
공산당의 선전공세와 국민이 선출한 민주정부 전복과 암살 음모는 완전히 실패하였으며,
강대국의 각축장에서 중립주의라는 불확실성 대신에 유엔과 뜻을 같이 할 것을 선택함으로써
엄청난 고통의 대가에도 불구하고 세계 민주우방들은 우리의 충정을 잘 알고 도와주고 있다.
금년 4월과 5월에는 과거 지명직이던 1만7천여명 지방 공직자들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였고,
비판의 자유와 정치참여의 자유가 보호되고 자유로이 행사되었음을 유엔이 증명한다.
최근 몇몇 중동 남미 국가에서 폭력적인 혁명운동이 일어나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우리는 국민들이 비폭혁 혁명을 달성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신생 4년짜리 국가로서
유엔의 이상을 이만큼 실천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이보다 더 잘 입증할 수 있을지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우리 국민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수 있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국민의 주권의식에 기반을 두게 되었으니, 이런 기반 없이는 독립된 나라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세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독립국가의 기반, 그 필수조건으로서의 대통령 직선제, 즉 국민주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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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선제 개헌후 '국회의원 소환'등 7개항 보충수정안을 제안한 이승만. 52.7.19일자 조선일보ⓒ조선DB
이승만은 이 기반을 보다 튼튼하게 완전한 헌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선제만으로 불충분하므로
7개항의 헌법조항을 더 고쳐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① 민국의 정체(政體)를 변동하거나 독립운명에 관한 문제는
투표권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② 대통령이 고의로 민의를 무시해서 위기를 일으킬 때도 3분의 2로 탄핵할 수 있게 한다.
③ 국회의원이 뇌물을 받고 의원 직권을 행사했을 때는 언제든지 검가하며
재판에서 유죄가 되었을때는 평민보다 중벌에 처하게 한다.
④ 국회의원이 민의를 위반하고 사심을 주장하여 국정에 많은 혼란을 끼칠때는
선구민 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소환할 수 있게 한다.
⑤ 정부 각료 등 공무원이 뇌물을 받거나 공전(공금)을 쓴 범죄가 드러날 때는
평민보다 중벌에 처하게 한다.
⑥ 행정부, 입법부와 사법부가 각각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알력이 생겨 국가의 위신과 안위를
불고하여 민국의 중대한 문제가 일어날때는 국민투표로 임시재판소를 구성해서 판결 시행게 할 것.
⑦ 어떤 단체나 개인을 막론하고 국가 권위와 위신을 무시하고 외국의 세력을 의지해서
민국을 방해하는 자는 공적(公敵)으로 인정해서 증거가 드러날 때는 중벌에 처할 것.
이 7개항을 보면, 이승만이 당시 국회와 정치인들의 언행에 얼마나 큰 불만과 문제의식을
가졌는지 한 눈에 보인다. 좌익분자들의 국가 정체 변혁 움직임을 비롯하여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외국 돈을 받아 활동하는 ‘매국 행위’등을 엄벌에 처해야할 시급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당시 국회상이라 할까. 특히 정권교체를 위해 미국 자금지원을 받는 야당 지도자들에게
넌더리를 낸 이승만은 이들을 ‘국가의 공적’으로 반역-반란죄로 다스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 제안들은 그러나 그후 헌법연구회를 만들어 토론까지 벌였지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때 이들 7개항이 헌법에 반영되었더라면 오늘날의 국회 정치는 보다 선진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툭하면 국회독재와 국회해산론이 나오는 ‘여의도 정치’ 행태가
이승만의 선견지명이 실현되지 못한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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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대통령의 오랜 홍보고문이자 친구, 로버트 올리버. 사진은 1995년 조선일보가 개최한 '이승만 나라세우기' 전시회에 초청되어 내한한 노년의 올리버.(자료사진)
▶ "절제된 위엄에 반했다" 올리버의 [독립정신] 읽기
피난수도 부산에 이승만을 따라와 대외홍보 작업을 돕던 올리버는 77세 노대통령에게
가끔 “무리하지 마시라”고 쓴 소리를 했다고 한다. 40일간 개헌투쟁으로 과로한 뒤에도 ‘완전한 헌법’ 만들기에 집념을 놓지않는 그가 걱정되어 과중한 업무를 줄이고 휴식을 취하라 해도
무시하는 듯 웃으면서 이승만은 이렇게 답하곤 하였다.
“신체 근육은 써야 튼튼해지고 쓰지 않으면 힘이 빠지는 법이오. 그건 두뇌도 마찬가지요.
휴식이 아니라 일을 많이 해야 운동이 되오.”
올리버가 이승만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9월중순 워싱턴 코네티컷 애비뉴의 숄스 카피테리아(Sholl’s cafeteria)에서였다. 백악관과 국무성에 인접한 라파예트 광장에 가까운 그 식당은 미국 정부 중견관리들이 애용하는 ‘정책 토론장’이어서 외교와 로비에 안성맞춤이었다.
한달전 영문저서 [일본 내막기: Japan Inside-Out]을 출판한 이승만은 “때가 임박한지라”
본격활동을 위한 미국인 고문을 구하는 중에, 이승만도 절친한 한국태생 미국인 선교사 전킨(E. Junkin)에 부탁하여 대학교수인 올리버를 만난 것이었다.
때가 임박했다는 인식은 이승만의 책에 잘 나와있다. 일본이 조만간 미국을 공격하리라는 예언, 미국은 이길 것이고 따라서 한국의 독립도 임박했다는 통찰력이 이승만을 서두르게 하였다.
“67세의 적지않은 나이에도 젊은이 같은 패기 넘치는 얼굴에서 독립투쟁의 긴 세월 고초를 겪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박사는 언변이 좋았다. 적절한 어휘 선택과 나무랄 데 없는 또렷한 발음으로 쉽고 조리있게 말을 구사하는데, 말 보다 그의 온몸으로 표현하는 웅변이 극히 인상적이며 빛나는 눈과 입술의 미소가 풍부한 유머 감각과 진지함이 함께 묻어났다. 무엇보다 강한 것은 그의 절제된 품위였다. 침착함과 자신감이 결연했지만 도를 넘치 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사람은 대인이다. 자제력과 지도력을 겸비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설명은 뭔가 알아내려는 탐구적이면서도 상대의 말도 경청할 줄 아는, 즉 소통에 신경을
많이 쓰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세련된 교양의 지적수준에서 우선 압도되고 만다.”
첫 만남에서 자신의 생애와 한국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이승만과 마주앉아 넋 잃은 34살 차이 젊은 교수는 한마디로 고매한 스승의 ‘절제된 위엄’에 감복하였다고 썼다.
그날부터 이승만을 돕고 싶어져 미국 신문 잡지에 ‘잊혀진 나라-한국’을 비롯한 글들을 쓰기 시작하였고 47년부터 정치고문으로 관계를 맺은 올리버는 건국과정과 6.25까지 ‘이승만의 그림자’처럼 미국 정부와 여론을 겨냥하여 한국 홍보활동에 올인한다.
그즈음 부산에서 올리버가 ‘이승만 스토리’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하자 이승만은 웃기부터 했다.
“당신은 나를 결코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할 것이오. 나 라는 사람은 주위 환경에 지배되기 보다는 내 신념에 따라 콘트롤되는 인간이란 걸 먼저 이해하지 못한다면....물론 어것 때문에 자주 곤경에 처하지만 말이오”
꼭 10년간 이승만을 겪어본 뒤 ‘내가 깨달은 것은 이승만은 세속적이면서도 동시에 신비스러운 인간’이란 점이라고 고백한 올리버는 그의 책 제목도 [이승만: 신비속의 인물/ Syngman Rhee: The Man bihind the Myth]이라고 붙였다.(1954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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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올리버가 쓴 '이승만: 신비에 가린 인물' 책 표지(자료사진)
올리버의 글을 좀더 인용해보자.
‘내가 관찰해 온 바로는, 그의 전 생애를 이끌어온 힘은 오로지 국민들의 행복한 삶의 성취였다. 바로 이것 때문에 1986~99년간 조선왕조의 억압적 반동주의에 반대하고 개혁을 주창하다가
투옥되었다....(중략).....이승만은 한국인의 행복한 삶과 공산제국주의자들로부터 셰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세계 공산화를 압박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어떤 국가 국민도 안전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중략)....그의 신념에 의하면,
공산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느 전제정치 못지않은 진짜 독재정치였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일시적인 정서가 아니라 가장 심오한 신념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승만의 기본적 정치철학을
정리한 책 [독립정신:The Spirit of Indepedence]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승만이란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올리버는 그리하여 책을 쓰기 전에 [독립정신]을 꼼꼼히 몇번이고 읽었다고 한다.
미국인이 열심히 읽은 [독립정신]을 우리도 조그만 읽어보자.
집필기간: 1904년 2월19일~6월 29일
집필장소: 한성감옥서 몰래 쓰다
내용: 당시 백성들이 꼭 알아야할
국내외정세와 역사
자유민주주의 소개
독립국가 국민의 요건
새로운 독립국가의 설계도
독립정신 실천 6대강령
◀왼쪽 책 표지는
현대문으로 간추린 요약판
2010년 동서문화사 발행
인물사진은 하버드대생 이승만.
<목 차>
머리말
총론---우리 대한은 태풍을 만난 배와 같다
1. 국민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
2.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된다
3. 국민이 힘쓰면 문명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4. 나라를 이롭게 하는 거쇼이 참된 충성이다
5. 마음 속의 독립정신을 굳게 하여야 한다
6. 통상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다
7. 독립국과 중립국의 차이
8.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
9. 자주와 독립의 중요성
10. 우주 법칙의 개요 11. 6대주의 구별 12. 오색인종의 구별
13. 시로운 것과 전통의 구별 14. 세가지 정치제도의 구별
15. 미국 국민들이 누리는 권리
16. 미국 독립의 역사. 17. 미국 독립선언문. 18. 미국의 남북전쟁
19. 자유와 평등을 쟁취한 프랑스 혁명. 20. 입헌정치의 장점
21. 나라의 흥망성쇠는 정치제도에 달렸다
22. 정치제도의 성패는 국민 수전에 달렸다
23. 국민의 마음이 먼저 자유로워야 한다. 24.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25.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의 발자취
26. 고루한 편견에 사로잡힌 청나라. 27. 일본이 흥성하게 된 이유
28. 러시아의 윰흉한 마수
29. 우리나라와 서양세력 간의 충돌
30. 일본이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다
31. 조선이 일본과 처음으로 통상하다
32. 임오군란이 일어난 배경
33. 청일전쟁 직전의 조선, 일본, 청나라 간의 관계
34. 갑신정변이 일어난 사정
35. 각국에 처음으로 공사를 파견하다
36. 청일전쟁의 원인. 37. 청일전쟁후 조선의 대외관계
38. 러시아가 요동반도를 침범하다
39. 청나라 의화단의 난
40. 러일전쟁의 원인
41. 청일정잰 후 개혁에 나선 조선
42. 청일전쟁 이후의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
43. 조선을 놓고 각축을 벌인 러시아와 일본
44.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쟁이 일어나다
45. 러일전쟁 당시의 대한제국
46. 일본의 숨겨진 의도를 해부한다
47. 청나라, 일본,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끼친 해악
48. 우리는 여러번 좋은 기회를 놓쳤다
49. 일본 정부의 의도를 파헤친다. 50. 일본인들의 의도를 파헤친다.
결론: 독립정신 실천의 6대강령
▶ “조선 망국의 썩은 계급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다를 바 없다“
일본함대의 기습공격으로 인천항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의 대포소리가 쿵쿵 울리는 감옥,
이승만이 눈물을 훔치며 옥중에서 남몰래 써낸 [독립정신]의 머리말만 읽어보아도
그의 국민관(國民觀)과 국가관이 어떤 것인지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옥중에 지루한 세월이 어언 7년이라, 천금같은 세월을 허송하기 애석하여
내외국 친구들이 보내주는 각색 서책에 묻혀 고초와 근심을 잊고자 하나
세상 형편이 어리석은 창자에 울분한 피가 북받침을 억제할 길 없어
번역한 책이 몇가지 있으나 발간치 못하매 울적함을 이기지 못하다가,
수년간 신문 논설을 써보내 회포를 말했더니 무슨 사단인지 그것마저 폐지하고 있던 차에
마침내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판에 어찌 남아가 갇혀 있을 때리오, 강개격분(慷慨擊憤)한 눈물을 금치 못하여
그 동안 만들던 한영자전(韓英字典)을 정지하고 양력 2월19일 이 책 쓰기를 시작하니
당초에는 몇만장을 써서 발간하고 싶었으나 한도 끝도 없는지라,
수차 사형집행도 있고 죄수도 여럿이매 시끄럽고 비밀히 쓰노라고 몇 번씩 감추기도
하였으매 맥락이 자연스럽지 못하나마 서로 연락되는 뜻은
다 ‘독립’ 두 글자에 집중되는 것이라.
지명과 인명을 많이 쓰지 않고 모두 국문(한글)로 기록함은
전국에 수 많은 인민이 보기 쉽게 만듬이오, 특별히 백성 편을 향하여 많이 의론함은
대한(大韓)의 장래가 전부 인민에게 달림이라.
소위 중등이상 사람이나 한문자(漢文字)나 안다는 사람은 거의 다 썩고 물이 들어
다시 바랄 것이 없으며 또한 이 사람들이 자기 몸만 그럴뿐 아니라 그 주변도 다 어찌할 수 없이 그리 되었나니 이 말 듣기에 심한 듯 하나 역력한 현실을 보면 거짓이 아닌 줄 믿을지라.
오직 나의 깊이 바라는 바는 이 나라의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가장 많이 주의하여 스스로 각성하여 행하며 남을 인도하여 날로 인심이 정신이 바뀌며
풍속이 고쳐져서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원하노라.
건국 4237년 6월29일. 한성감옥서 죄수 리승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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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해협의 러일전쟁 해전.(자료사진)
단기로 4237년은 서기 1904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도 요동반도와 조선을 러시아에게 빼앗긴
일본이 경복궁에 쳐들어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뒤 10년간 전쟁준비를 갖추고
당시 제물포 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한 날이 2월8일 아침이다.
이 전쟁의 승자가 대한의 나라와 민족을 완전지배하게 된 위기상황을 통탄한 이승만이
부랴부랴 [독립정신]을 왜 썼는지는 위 목차에 다 나와 있다.
특히 “한문자나 안다는 사람은 다 썩고 물이들어” 순한글로 쓴다는 이유가 눈을 찌른다.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지배계급의 부정부패와 싸웠던 이승만은 새로운 지배계급이라 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부정부패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청나라나 러시아나 일본 대신에 이제는 미국을 등에 업은 부정부패,
미국의 힘을 빌어 권력쟁탈전에 나선 그들의 모습은 구한말 수구파 대신들과 무엇이 다른가.
신판 사대주의 망국 세력의 망령. 이참에 국민의 힘을 키워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승만의 정치전략이며 부동의 확신이었다.
★ “외부의 적과 내보의 적...내 마음이 원수”...국민 애국심 교육
[친애하는 대한의 동포들이어. 여러분은 나이나 성별 또는 직위와 관계없이 모두 대한에 속하고 이 나라 백성의 일원입니다. 각자의 어깨 위에는 나라를 세워야할 책임이 지워져 있습니다.
국민이 함께 협력하지 않는 주요 원인은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집에 불이
나면 다른 사람이 도와주든 말든 불길에 뛰어들어 건질 것은 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애국심이 없다면 그 마음은 여러분의 적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공동 대의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려 한다면 여러분은 그런 자신의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자신의 생각을 시헙해 봅시다. 만약 조국의 안녕을 저버릴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당장 그런 생각을 잘라내 버리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앞장서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를 세우는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중략)....그러므로 나라를 해치고 파괴하는 자만이 나의 원수가 아니라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포기한 자들 또한 나의 원수입니다. 내 마음 속에 나라의 위기를 기피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 마음 또한 나의 원수입니다....(중략)....
우리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남들이 어찌하든 상관말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 나서야 합니다. 이처럼 국민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변한다면 이는 나라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만 잘 뿌려놓으면 반드시 풍성하게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줄이고 줄여서 인용해도 자꾸 길어지는 것이 이승만의 글이다.
그는 정말 어려운 한자말은 모조리 빼버리고 못 배운 국민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골라
예를 들면서 자상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 습관이 '담화정치'로 나타났던 방식이다.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조(自助) 단결(團結) 협동(協同)의 정신이 ‘독립’의 기초라고
거듭거듭 강조하는 이승만의 국민교육 강의를 들으면 박정희의 새마을 정신이 연상된다.
또한 ‘두 종류의 원수’ ‘자신의 마음속의 적’과 싸워 물리치라는 애국심 교육은
오늘날 대한민국 내부의 적들과 싸워야하는 남남갈등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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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옥에서 몰래 쓴 [독립정신] 원고를 새끼처럼 꼬아 박용만이 미국으로 가져온 것을 펴보는 유학생 이승만.(자료사진)
▶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오늘의 대한민국 그림
이승만의 [독립정신]은 당시 국내외 정세와 역사교훈을 가르치는 국민 교과서이다.
당시 지식인 이승만이 보고 해설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일본의 의도 등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현대 한국인도 꼭 알아둬야 할 사료적 가치도 높은 이 책은
특히 청년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은 고전이다.
결론 부분 ‘독립정신 실천 6대강령’을 소개하는 것으로 아쉽지만 줄여야하겠다.
[....독립에 관련된 과거의 일만 알고 오늘에 와서 어떻게 하면 완전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점을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이 실천을 시작하면 마침내 온 나라가 한 몸, 한 마음이 되고 모든 국민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이승만이 촉구한 실천 6대걍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세계에 개방하고 통상해야 한다
① 우리는 세계와 반드시 교류해야 한다.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우리 혼자 막아선 안된다.
② 통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증기선, 열차, 전보, 우편 등 각종 교통 및 통신 수단을 발명한 서양의 기술들을 하루 속히 배워 우리도 시시각각으로 전국이 고르게 발전 해야 한다. 이로써 모든 나라들을 이웃처럼 사귀면 공통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③ 오늘날 통상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기본이다. 일찍이 산업화에 눈을 떠 새 물건을 만들어 각국에 수출한 영국처럼 해야 한다. 오늘날 전쟁은 상권 쟁탈전이다. 국제 상업을 부국의 근본 으로 삼아야한다.
④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물품의 수입과 수출을 균형있게 해야 외국과 똑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⑤ 외국인들을 무조건 원수 같이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동학란이 청일전쟁을 일으켰듯이 백성이 어리석은 것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지름길이다.
둘째, 새로운 문물을 자신과 집안과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① 외국인들과 함께 살면서 우리 것을 보전하면서 우리도 균등한 이익을 볼 수 있게 하자.
우리가 얕보던 일본인들에게 경제권을 모두 내주면 안된다.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 외국인으로 부터 무식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우리도 문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세계의 새로운 학문을 공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국제법, 통상조약, 우리나라 역사와 자 리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본이 그동안 성공한 것은 지도층부터 개화하고 국민을 가르치고 인도한 덕분이다. 우리나라 지도층엔 기대할 수 없으니 백성이 공부하자.
③ 신학문을 익혀 외국인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농업을 연구하여 외국인들 에게 황무지를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개간하고, 농사를 기계화하고, 상업과 광산학, 항해술, 전 신과 우편, 어업, 산림벌채와 조림 등을 우리가 외국인들보다 잘해야 한다. 물품을 외국보다
값 싸게 잘 만들어 수출하고, 국민이 한마음으로 국산품을 산다면 부강해질 것이다.
④ 신학문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빨리 외국어를 공부하여 번역서만 읽지 말고 우리 글로 책을
많이 내야 한다. 그러려면 외국 유학을 많이 가야한다. 공부가 잘살기 위한 투자이다.
우리 나라가 자립하려는 의지를 자꾸 키워야 한다.
셋째, 외교가 나라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① 외교가 없다면 나라는 고립되며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기 쉽다. 국제법을 잘 지켜야 다른 나라 로부터 대접도 잘 받는다. 특히 강대국 사이에서 약한 나라가 국가보존을 위해서는 외교가
너무나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런 사실을 몰라서 큰 불행을 당하였다.
② 다른 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면 모든 나라를 공평하에 대해야 한다.오직 원칙과 법을 기 준으로 공평한 외교를 해야하며, 문명국가의 도덕적 원칙이 중요하다.
③ 외국과 우방이 되려면 그 나라들과 공통된 특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친구, 진정한 우방이 되려면 문화를 공유하고 법과 정치, 학문과 도덕이 무엇인지
본받을 것은 본받아 실행하면 자연스레 긴밀해지고 우리를 도와주러 올 것이다.
④ 진실을 외교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외국과 협상함에 있어 권모술수를 부리면 당장은
이긴 것 같지만 큰 손해가 된다. 국가망신은 물론이고 망국의 원인까지 될 것이다.
⑤ 국내 외국인들의 잘못은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나 혼자 살기 위해 외국인의 잘못 된 일에 굴복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침략당하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
넷째,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① 외국인에 치외법권 허용은 수치로 알고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나라도 비인도적인 형벌 등을 폐지, 법치주의를 도입하여 외국법과 같도록 빨리 고쳐야 한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려 면 인도적 사업을 많이 하고 우리의 수준높은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한다.
② 자신의 직분을 다한 후에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수 있다.
③ 외국인의 조롱거리가 되는 일은 모두 고쳐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해야한다.
④ 국기를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국기도 모르고 나라의 주권도 모르고 침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원수로 여겨야 한다.
⑤ 어떤 일이 있어도 외국 국적을 갖지 말아야 한다.
⑥ 우리나라는 외국 빚을 빌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 강한 나라는 항상 돈을 빌려주고 그것을 빙자 하여 내정간섭을 하므로, 주권을 잃게 되는 지름길이다.
다섯째, 도덕적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① 뜻이 같은 사람끼리 감정을 표현해서 뭉쳐야 한다. 기회주의자나 중상모략자, 나라를 팔아먹는 자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해선 안된다. 선악을 분명이 구분하여 정의사회를 만들자.
② 우리는 공적(公的)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라를 위한 일을 할때는 부모형제 간의 천륜이 라도 내던질 줄 알아야 하며, 임금이 백성을 해치고 영토를 팔아넘기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데도 임금이라 하여 그에 따르는 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
③ 나라에 충성함에는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나라가 곤경에 처했을 때가 큰 공로를 세울 수 있는 기회이다. 역사상 유명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런 때이므 로 어찌 일신이나 가족을 걱정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여섯째,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① 자유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②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려온 온작 억압하는 폐습을 버리고 아랫사람과 천민들을 자유롭게 하여 법 앞에서 평등하게 하여 자유롭게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놔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라 전체에 활력이 생기고 부유해지고 강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독립된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이상 여섯가지 ‘독립정신 실천 강령’을 설명한 이승만은 ‘자기 자신부터 즉시 실천하라’고
재촉하면서 다짐을 두듯이 기독교 정신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있다.
“문명국 사람들은 전부 기독교를 사회 근본으로 삼고 있어 국민들이 높은 도덕적 수준에
이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싹이 일어나려 하며 썩은 곳에서 싹을 틔우고자
애쓰고 있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와 접촉할지라도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중략)....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남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우리나라를 영국과 미국처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국 4237년 6월29일 독립요지 마침.“
이와 같은 [독랍정신]의 원고는 이승만이 출옥때 가져나와 숨겨둔 것을 감옥동지 박용만이
새끼처럼 꼬아서 가방에 숨겨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에게 전하였다. 이를 문약목등 미주 인사들이 LA에서 처음 간행한 것이 1910년이다. (사진은 LA판 독립정신 표지)
이 책은 독립운동가들의 바이블이 되었으며 일본의 눈을 피해 국내에서도 널리 읽혔다.
▶ 사대주의 당쟁 견제...미국의 강대국 횡포 봉쇄에 성공
이제 부산정치파동이라 불리는 ‘직선제 개헌 파동’을 마무리해 보자.
호칭부터 ‘정치파동’이라기보다는 ‘직선제 개헌파동’으로 부르는 게 성격상 맞는 이름이다.
권력투쟁이 아니라 헌법 제1조 ‘주권재민(主權在民) 체제’를 현실화 시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첫째, 4~5월에 걸친 두 차례 지방의회선거는 국민들에게 주권자의 자각과 국가의 ‘주인 의식’을 심어준 자유민주주의 교육훈련이다. 더불어 침묵하는 다수의 힘 없는 국민들의 뜻을 조직화하고 행동에 옮기도록 기회를 부여하여 ‘내 나라를 내가 만든다“는 자부심을 고양시킨 학습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전쟁하는 국가에서 국민 전체가 자신들의 생사를 가름하는 전쟁주체임을 각성시킴으로써 유엔 16개국 군대에 대한 의존성을 벗어나 자발적인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끌어내는 효과도 가져왔다.
둘째,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제헌의회때 미뤄두었던 것을 실천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
이승만의 꿈이 [독립정신] 이래로 미국식 대통령중심주의에다 한걸음 나아가 국민투표를 통한
직접적인 리더십 창출에 있었음으로 미국보다 더 좋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완성시킨 것이라는 자부심에 이승만은 만족하였다.
그는 [독립정신] 14장 ‘세가지 정치제도의 구별’에서 전제정치, 입헌정치, 민주정치를 논하면서 “민주정치라 함은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라는 뜻이다. 정부를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해 수립된 정부이다. 미국, 프랑스등 몇몇 부강한 나라들이 택하고 있으며, 가장 좋은 국민정치 제도이다.”라고 단정했다. 링컨의 남북전쟁을 통한 국가통합의 신념을 자신의 것으로 굳혔다는 증거다.
셋째, 국회의원들에 대하여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고 체험시키고자 하였다.
비상계염령을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대통령의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지방의회대표단등 민중들이 국회에 직선제를 요구하게 하여 ‘민의에 의한 개헌’ 형식을 취하였다.
이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처럼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는 정치상을 그리는 시도로서
구금했던 국회의원들을 모두 석방하여 개헌에 동참시킨 것으로도 그 의도를 짐작케한다.
[독립정신]에 쓴 글대로 1%의 양반들이 99%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살육을 일삼는 계급의식의 고질병을 타파하고 ‘백성이 양반을 좌우하는 힘’이란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이승만의
양반의식개혁 운동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만민평등을 실현한 농지개혁과 함께
직선제는 국민통합 국민국가 형성을 공고히 다져가는 신생국 혁명작업이라 하겠다.
넷째, 비상계엄령 선포는 약소국 내정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음모를 분쇄하는 직격탄이었다.
몇몇 야당 지도자들을 매수 포섭하여 국회선거로 제맘에 드는 대통령을 만들려는 강대국에
정면 도전한 승부는 이승만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엄두도 못낼 결단력이다.
1905년부터 1045년까지 40년간 ‘미국인보다 더 미국을 잘아는 한국인’으로 자신을 갈고 닦은
이승만은 미국의 국가이익제일주의를 뼈저리게 체험하고도 남았다.
조선과의 조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일본 지배를 오케이했던 미국, 종전과 함께 한반도를 마음대로 분단시킨 미국, 제멋대로 휴전을 추진하며 대통령까지 바꾸려는 미국, 약소국 한국을 장기판 장기졸 같이 취급하는 미국에게 이승만은 언젠가는 반드시 댓가를 받고야 말리라고 다짐하며
와신상담(臥薪嘗膽) 기회를 기다려왔던 것이다.
★ 이렇게 해서 직선제 헌법체제는 성공적으로 출범하였지만
직선 대통령 이승만 파워는 이제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바로 강대국들끼리의 휴전협상을 막아내는 것, 한반도에서 공산당을 몰아내는 것,
미국이 또 한국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 유엔의 힘으로 탄생한 반쪽짜리 자유세상을
유엔군의 힘을 빌어 한반도 전체에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도정부’는 이번 전쟁에서 끝내야한다. 이승만은 남쪽 대한민국을 ‘과도정부’라고 불러왔다.
통일정부만이 ‘대한민국 독립의 완성판’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오래전부터 밥상에 반찬을 ‘3가지’로 제한하였다. 통일의 그날까지!
★ 이승만을 도와 23년간을 함께 건국운동에 참여했던 올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왜 한국이 낳은 위인을 모르는체 하는가?"
올리버는 "독재는 박정희가 했다"며 유신헌법으로 직선제를 잠정 중단했던 사실을 예로 들었다. 자칭 민주화세력은 그래서 7~80년대 '독재 반대' 데모하며 직선제를 외쳐왔다.
5공의 6.29선언으로 직선제가 부활하자 운동권은 '민주와 만세'를 불렀다.
김영삼-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고 좌파세력은 제세상을 만들어내 활개를 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지금 그 386이 국회와 검찰과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여
자유민주 세상을 꺼꾸로 뒤집으려 난리다. 박정희 대신 박정희 딸인가?
반공정책을 펴서 그러는지 여성대통령에게 달려들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야권 지도자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 한다. 집권하면 북한에 먼저
달려가겠다"고 공언한다. 그들 눈엔 헌법도 민주주의도 없고 청와대와 평양만 보이는지.
이승만이 다시 나타나 진짜 '자유민주화 혁명'으로 리모델링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부산정치파동 연재 끝. 이승만史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