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수필에 대한 정의(定義)을 통해 당산의 인생관을 피력하신 말씀으로 들린다;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대학교수이셨던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선생님이 남기신 말씀이다.

      지난 5월 25일 남양주시에 있는 모란공원묘원에서 있었던 선생님의 10주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각별한 감동이었다. 그분의 둘 째 아드님 피수영 박사의 초대를 받아 간 것이었지만, 그건 단순한 예우가 아니라 내 마음의 헛헛증을 메운 풍요로운 외출이 되었다.

      평생 한 가지 집념으로 살다 보면 터득한 것도 있겠지만 잃은 것도 없을 수 없다. 나의 일생은 사회과학에 기초한 궤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진(眞)-선(善)-미(美)에서 진과 선은 죽자 하고 추구한답시고 했지만 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추구가 없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아, 내 마음 한 구석에 큰 허공이 있구나”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학적 세계관이란 개념이었다.

      진리를 잘못 추구하다 보면 독선이 된다. 나만 옳고 너는 이단이란 소리다. 선 또는 의(義)를 잘못 추구하다 보면 칼이 된다. 나만 의롭고 너는 악(惡)이기에 정의의 칼로 단죄하겠다는 식이다. 이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가? 십자군 전쟁, 프랑스 혁명, 크롬웰 혁명, 1차 대전, 볼셰비키 혁명, 2차 대전-이 모두가 독선적 독단적 진리-정의 의식이 빚어낸 참화였다. 그렇게라도 했기에 설령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몰라도 그 과정의 폭력과 학살과 유혈이 초래한 인간적 비극은 “모두가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허무의 비명을 토로하기에 족하다. 결국 남은 것은 무엇이었나? 영적인 공허와 환멸이었다. So what?

      이래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미학적 세계관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미학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나는 티베트 불교의 큰 스님 소걀 린포체가 전한 한 고승의 죽음의 모습에서 그런 아름다움의 세계관의 일단을 느껴볼 수 있었다. 중공군이 티벳을 점령했을 때 군인들은 티벳 국민의 스승인 그 고승을 체포해 나귀에 싣고 관청으로 압송했다. 나귀 등 위에 묶인 채 그 고승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고즈넉이 시를 읊었다.

      시의 내용은 너무 길어서 여기 소개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죽음의 문턱에 서서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 열반의 환희를 노래한 것이었다. 관청에 도달했을 때 그 고승은 이미 고요히 눈을 감은 뒤였다. 진리와 정의를 내세운 독선과 폭정이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진짜 엄청난 힘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 힘은 대포, 탱크, 가스실, 핵폭탄, 미사일에서 온 게 아니라, 무기는커녕 바늘 하나 지니지 않은 순수 영혼의 힘이었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의 경우도 이런 유형 아니었을까? 나는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란 말씀도 이 아름다움의 인생관-세계관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  피천득 선생님은 식민지-해방공간-분단-6. 25 남침-9. 28 수복-4. 19-5. 16, 유신체제-신군부-민주화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풍상 속에서도 자신의 영혼의 독립성을 지켜낸 몇 안 될 지식인 중 한 분이셨다. 수많은 인텔리들이 이런 폭력 저런 폭력으로 무참하게 유린당하고 찢기고 수모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영혼의 아름다움을 능욕 당했다. 이 가운데서도 피천득 선생님은 난처럼 학처럼 당신의 영적인 지성소를 지켜내실 수 있었으니, 그 또한 모든 이의 상한 마음까지 함께 치유해줄 수 있는 항체(抗體) 아닐런지?


     우리에겐 진실로 힐링이 필요하다. 힐링은 아름다움에서 온다.
    피천득 선생님 10주기는 성공회 김성수 대주교의 말씀으로 시작해, 헌화, 동상 참배, 추모가, 음복(飮福) 식사와 여러분들의 추모사로 이어졌다. 모두가 힐링이었고 감동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참석하신 추모객들도 다 조촐하고 나직나직한 평화로운 분들이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아픔 그 자체일지라도 군데군데 이런 힐링의 자리들만 항상 있어줘도 우리가 다 나을 수 있을 터인데...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큰 위로의 하루였다는 사념에 잠겼다.

       한 가지 걱정. 잠실 롯데월드 2층에 피천득 선생님 기념관이 있는데 그 장소를 기일이 다 됐는지 곧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로선 받아주겠다는 주체가 성큼 나타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도심 속 작은 힐링의 터전 하나 구하기가 이리도 힘들다니, 왜 우리는 좀 더 더 넉넉하게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일까? 자녀교육 어쩌고 하지만 이런 장소야말로 청소년 심성교육의 산 전당일 터인데 말이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 2017/5/27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