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전대협 출신 靑핵심 요원들 정체성 논쟁 심화
  •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청와대 전대협'과 스피노자            


  • 최근의 정치 화제는 단연 386 전대협 출신 청와대 핵심 요원들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임을 지적하면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물었다. "전대협 강령은 반미와 진보적 민주주의인데, 청와대에 들어간 전대협 인사들이 이런 사고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입장 정리도 안 한 이들이 청와대에서 일하니…." 임종석 실장은 이에 이렇게 답했다. "5~6공 정치군인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했을 때 전 의원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살펴보지 않았지만, 전 의원이 거론한 사람들은 인생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이어서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가 논쟁을 이어갔다. "사람의 사상은 바뀌기 힘들다. 담배 끊기보다 힘들다. 고문을 당하고 감옥을 다녀와도 사상을 바꾸지 않는다. 연옥의 고통을 거쳐서도 잘 바뀌지 않는 게 사상이다. (…) 혁명은 영원하다." 이런 논쟁이 주목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전희경 의원과 김문수 전 지사가 거론한 인물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대통령 뇌리에 "원전(原電)은 좋다, 나쁘다" "사드 배치를 하자, 말자"를 입력시켜 줄 알파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실세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그래서 아무리 따져도 지나칠 게 없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라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엔 여러 종류가 있어, 그것만으론 그들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전대협 386 학생운동, 그중에서도 NL(민족해방) 계열, 그중에서도 성서적인 표현인 '열성당원'일수록 어딘가 밀교(cult)적

    인 분위기 같은 걸 느끼게 했다. 

    컬트 분위기란, 자기들이 진리를 대표한다는 우월감, 선민(選民)의식, 메시아주의, 자폐증 같은 것들이다. 세상을 절대 선(善)과 절대 악(惡)으로 가른다. 절대 선 무리 안에선 지도노선에 대한 충성이 요구되고, 개인의 성찰적 사유는 용납되지 않는다. 신성한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 가출(家出)도 해 소속집단이 패밀리처럼 되고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해야 한다. 고급 지식인보다는 순박한 사람이 돼야 한다. 이탈하면 배교(背敎)자다.

    이런 밀교문화 속에서 전사(戰士)들에겐 엄숙한 예언서가 주입된다. "사악한 서양 제국주의가 진선진미(盡善盡美)한 동방의 땅을 식민지로 유린해 왔다. 그 앞잡이들이 민족을 배신하고 민중을 수탈했다. 반(反)민족-반(反)민중 악당들은 그러나 자체모순의 폭발로 필연적으로 망한다. 전사들이 최후의 일격만 가하면!" 이것은 신앙과 지하드(聖戰)의 경지이지, 지적(知的) 엄밀성의 차원이 아니다. 20대 청춘들이 그런 정서로 흘렀던 원인의 한 가닥이 권위주의 탄압이었다는 것은 알려진 대로다. 그러면서도, 그런 원인이 있다 해서 100이면 100 모두가 다 386식이 돼야 한다는 당위(當爲)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탄압이 지나치면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저항에는 여러 정도가 있다. 권위주의엔 반대하더라도 대한민국엔 반대하지 않는 정도가 바람직할 것이다. 보수 아닌 진보도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진보로 쏠리는 건 어디서나 흔한 일이다. 그러나 진보에도 여러 정도가 있다. 자유민주 체제를 유지하면서 진보적 사회·복지·노동·환경 정책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이 반(反)자유민주 변혁이라야만 직성이 풀릴 경우라면 말릴 재간은 없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다. 홀로코스트(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와 홀로도모르(1932년, 집단농장화를 위해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유발한 우크라이나 대기근)는 차이가 없었기에. 평양의 '세습 천황제'는 그 둘을 합친 것만큼일 것이다.

    386 전대협 출신들이 정권을 잡은 한에는 그들의 생각이 왕년의 컬트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다. 연륜, 체험, 시행착오가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럴 그들에게 스피노자의 철학을 접해볼 것을 권한다. 그는 '신학―정치론'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과 축복은 선(善)을 향유하는 데 있지, 자기 혼자만 그것을 배타적으로 향유하고 있다고 자만하는 데 있지 않다." 지적(知的) 도덕적 우월감에 기초한 선민의식이란 철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 때문에 유대인의 선민 됨을 부정했다 해서 자신이 속한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했다. 칼자루 쥔 586 권력자들이 한 번쯤 바라봤으면 한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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