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매체들 '김일성 민족' 용어 사용                      

    북한 공개매체들은 어이없게도 김일성 민족이란 표현을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김씨 세습 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른바 주체적 전통과 역사, 문화를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이다.
    1999년 초 김정일은 “김일성 서거 5돌기념행사”를 위한 당 간부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김일성을 영원한 태양으로 모시는 차원에서 지금이야말로 후대에 길이 남길 역사정립이 필요할 때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역적 이성계 조선에도 이조실록이 있었는데 위대한 김일성 조선에 “김조실록”이 없다는 것은 역사에 큰 죄악이 된다며 편찬을 지시했다.
    하여 “김조실록” 편찬을 위한 후속 회의가 진행됐다.

    신격화 비밀 폭로될까봐 통일선전부서 편찬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는 두 가지였다. 우선 김일성이 출생한 날부터 1945년 조국해방 8월15일까지의 일일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자료들은 작가들의 신격화창작으로 만회할 수 있었지만 보다 문제는 사회과학원에서 편찬을 맡을 경우 그동안 신격화 베일에 싸여있던 김일성, 김정일의 개인자료가 일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두 가지 문제를 다 같이 해결할 수 있는 기관으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 된 통일전선부가 선택됐다. 통전부 내 101연락소와 26연락소에서 선발된 우수한 필진 8명은 문수초대소에서 공동숙식 편찬업무에 들어갔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청류3동에 위치한 문수초대소는 월북자관리 초대소로서 오익제가 1년 동안 조사받은 건물이기도 하다. 이후 월북자가 없고 유지비용도 들기 때문에 훗날 통전부 56과 소속으로 전환됐다.

    편찬조 8명 함구령...유년시절 소설화

    “편찬조”는 조선노동당역사문헌고는 물론 외무성, 국가보위부, 중앙재판소 등 중앙기관에서 별도 보관하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관련 자료들까지 종합하여 연도별 분담을 했다. 그 8명 안에서도 상호 열람 자료들에 대해서는 함구하도록 했고 다른 방에 출입하는 것 또한 엄격히 통제됐다.
    가장 난감해 했던 필진은 역시 김일성 유년시절 담당자였다.
    김일성 생일엔 할 말이라도 있지만 오줌똥도 가리지 못했을 그 이튿날부터, 더욱이 전혀 사실기록이 존재하지도 않는 백지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말로 수십년의 실록을 꾸며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결국 김일성 일가와 자연기후 변화를 신격화와 억지로 연결시켜 소설을 쓰다시피 했다.

    1912년 타이타닉이 침몰되었을 때 동양에선 태양이 솟았다

    그 중에서 김정일이 특히 칭찬한 대목이 있다. 그것은 김일성 생일과 관련한 서술이었다. 타이타닉이 침몰된 1912년 4월 15일에 유럽에선 해가 졌지만 동양에선 태양이 솟았다고 연결시킨 신격화 부분이다. 그 내용은 그대로 남한의 유명교수 명의로 통전부 101연락소 1국이 훗날 노동신문에 사설로 옮기기도 했다. 그렇듯 허황하게 날조된 “김조실록”은 그 이듬해 4월 초까지 완성됐고 현재 조선노동당 역사문헌고에 보관됐다. “김조실록”은 1912년 4월15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는 김정일 정권이 김일성의 생일 4월15일을 국가적인 “태양절”로, 그리고 생년 1912년을 북한의 주체년호 1년으로 법령화했기 때문이다. 그 실록을 바탕으로 조선중앙TV는 “김일성동지의 혁명실록을 펼치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고 있다.

    김정일 실록 편찬 진행중...세종, 이순신, 김유신등 간략화

    내가 북한을 탈출하던 당시에는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실록편찬이 계속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김씨 신격화로 우리 역사를 감히 왜곡하는 북한에서의 민족이란 개념은 정치화된 집체주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김일성을 민족 번영의 시원으로 규정한 조작되고 이념화 된 가부장적 혈통주의이다. 그러한 민족이념에 반대하면 反민족적 행위로 3대멸족을 당하는 체제의 구속 개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때문에 북한 정권은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우리민족의 원시인 단군유골을 조작하여 김일성의 고향인 평양 근처에 단군릉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절대 신화를 부각시키기 위해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세종, 이순신, 김유신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형편없이 간략화 했다.

    남한 민족동질성 부정...고구려 중심 역사로

    보다 심각한 것은 신라, 백제는 개념설명에만 그치고 고구려 중심으로 역사서술을 했다는 것이다. 조선노동당 규약에 적대국으로 문서화 한 남한에 대한 민족 동질성을 부정하고 주민들의 민족인식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이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민족역사교과서는 얇은 한권의 책에 불과한 반면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 교과서는 유년부터 청년, 성인시절에 이르기까지 몇 권에 이른다.
    결국 북한 청소년들은 우리 민족사를 바로 알 권리마저 상실당한 채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 교과서와 함께 자라는 셈이다. 이처럼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세뇌시키는 진정한 우리 민족의 역사란 곧 혁명의 역사이며 김일성 개인의 영도로 승승장구해온 “승리의 역사”이다.
    근원적으로 왜곡되고 유린된 민족주의로 북한 정권은 오늘까지도 남한에 대한 적대사상을 고취시키는 한편 대북지원용인 “우리 민족끼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민들의 국민성을 강요하는데 성공했을 수는 있으나 북한 정권이 원하는 민족주체 의식으로까지 세뇌시키진 못했다.

    탈북자란 '김일성민족' 부정한 세력...남한이 주체임을 발견

    독재는 인간을 억압할 순 있지만 결코 점령할 수는 없다. 그동안 민족의 정체성을 빼앗겼던 이유로 오늘날 북한 주민들이 가진 민족의식은 현재형이다, 즉 남한의식이다.
    반드시 못사는 줄만 알았던 우리 민족이 당당하게 잘 사는 것을 보았고, 보다는 자유와 인권으로 발전한 민족의 새로운 주체를 찾게 된 것이다.
    탈북자란 어찌 보면 김일성민족을 부정한 현 시대의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이며 북한민족해방 선구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으로 통일의 주체는 남한임을 선언했고 우리 민족은 기필코 하나가 될 것임을 증명한 이 땅의 미래이기도 하다.

    남한 민족의식에 실망...북한 해방은 민족해방

    그러나 나는 유감스럽게도 남한의 민족의식에도 다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의 민족주의는 단일민족의 정통성을 세습정치에 악용한 폐쇄형이라면 남한의 민족주의는 세계를 향해 도전해 온 개발형이다. 그 과정에 북한의 민족성은 관념의 개체로만 인식된 반면 남한의 민족성은 가치의 개념보다 글로벌 시대에 적응된 현실의 개념으로 진화한 것 같다.
    문제는 물질만능과 개인주의가 민족의식을 초월하지 않았는가 싶을 정도로 북한 인권에 너무 무관심한 우리의 국민성이다.
    지구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기 이름 외 다른 고유명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민족이다.
    각자의 이름은 다를 수 있지만 전통과 역사, 문화로 이어진 민족이란 한 이름 앞에선 동일인이다.
    나는 김정일 독재에 굶어죽은 300만과 지금도 인권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 2천만도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임을 부디 잊지 말기를 남한 국민들에게 다시금 정중히 부탁드리고 싶다. 또한 북한해방은 단순히 인권해방이 아니라 우리 세대에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민족해방임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