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Lucy 이야기

     매니저는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안내원 한명을 보내주었다.
    20대 후반쯤의 단정한 용모의 사내로 호텔에 고용된 통역같다.

    5월 중순의 후덥지근한 오후였다.
    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나는 선그래스를 끼었고 머리에는 야구모자를 썼다.
    내가 군중이 모여 앉은 뒤쪽에 섰을 때 미스터 최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내원이 말했다.

    「현 정권의 탄압을 받은 대통령이 과감히 목숨을 던져 불의에 저항한 것입니다.」
    미스터 최의 영어는 유창했다. 머리만 끄덕인 나에게 최가 말을 잇는다.
    「대통령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도 모두 죽은 대통령을 추모하려고 모였나요?」
    내가 묻자 최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미스터 노는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인 나는 최의 얼굴을 보았다.

    물기가 배인 최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나는 문득 죽은 노 뭐라는 전(前) 한국 대통령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죽어서 이런 존경을 받는 인간은 드물다. 더구나 이곳 광장에 모인 인파를 보라.

    나는 발을 떼었고 길가의 편의점 문 옆으로 다가가 섰다.
    이곳은 광장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인데다 인파도 적다.
    내가 옆에 붙어선 최에게 말했다.
    「코리아의 인상은 강렬해요. 그래요. 역동적이야. 활기가 느껴져요.」
    「그렇습니까?」
    퍼뜩 시선을 든 최가 나를 보았다.
    훌쩍 큰 키, 선명한 이목구비, 그러고보면 일본과 중국 남자하고 다른 것 같다.

    그때 최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코리아는 불의가 정의를 누르고 성장 했습니다.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낀 채 현재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아니, 왜요?」
    했다가 곧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면서 웃었다.

    난 정치 토론은 질색이다.
    대학 경영과를 마치는 동안 단 한번도 정치 강의는커녕 모임에도 참석 해본 적이 없다.
    「그만둡시다. 그런 내용은 흥미가 없으니까.」
    「미군은 철수해야 됩니다.」
    다시 최가 입을 열었으므로 나는 발을 떼었다.

    매니저는 안내인을 잘못 보낸 것 같다. 내가 미군이라면 당장에라도 떠나가주지.
    내 옆을 따르며 최가 말을 잇는다.
    「미안합니다. 미국에 가시면 한국에는 더 이상 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씀해주시지요. 미군이 한국의 통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갓뎀 부시, 갓뎀 오바마, 갓뎀 클린턴, 병신같은 대통령놈들은 나한테서만 세금을 매년 수백만불씩 거둬서 이런 곳에다 뿌려놓고는 찬밥 취급을 받는구나, 선오브 비치, 내 기색을 알아 차렸는지 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최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부인, 잠깐만요.」
    프론트 앞을 지나는데 직원이 부른다.
    몸을 돌린 내가 다가서자 직원이 검정색 서류 가방을 내밀었다.

    「부인께 보내온 물건입니다.」
    여직원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여기 편지가 있구요.」
    나는 흰색 봉투에 든 편지를 받았다.

    수신이 Lucy Jones, 내 이름 맞다. 발신은 Dr. K로 되어 있었고 내용물을 꺼내자 흰 종이에 달필로 짧은 글이 적혀져 있다.
    「Lucy양,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 당신이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