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③

     「노블입니다.」
    하면서 사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뭘 주는 줄 알았다.
    내가 가만있었더니 사내는 웃음 띈 얼굴로 손을 거둔다.
    「미스터 신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노블이란 사내의 조선말은 유창했다. 이시다보다도 낫다.
    신긍우의 성 앞에 미스터란 말을 붙인 것이 좀 수상했지만 나는 잠자코 노블이 권하는 의자에 앉는다.

    나는 지금 배재학당의 사무실에 들어와 있다.
    옆쪽 자리에 앉은 신긍우는 입을 열지 않았고 노블이 말을 잇는다.
    「신학문을 배우는 것을 무조건 역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미스터 리도 배우면서 알게 되실겁니다.」

    「선생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지 않습니까?」
    불쑥 내가 물었더니 노블이 빙그레 웃는다.
    노블은 학술부장으로 12년 전인 고종 19년(1882)에 조선 땅을 밟았다고 들었다.

    그때 노블이 말했다.
    「우리 뒤에는 그리스도님이 계십니다.」
    믿지 못할 말이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종교를 앞세워 약소국에 첫발을 딛고 나서 백성을 세뇌(洗腦), 속국으로 만든 것이 서양인의 전술 아니었더냐? 가장 가까운 예가 미국령이 된 하와이다.

    웃음 띈 얼굴로 노블이 말을 잇는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배우면 안목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판단에도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 세뇌를 두려워하여 아예 발을 딛지도 못한다는 것도 비겁한 행위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옳습니다. 배우겠습니다.」
    「영어부, 한문부, 신학부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공부 하시겠습니까?」
    「영어부로 가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선선히 수락한 노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신긍우에게 말했다.
    「미스터 신이 학당 안내를 해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신긍우가 대답했을 때 노블이 목례를 하더니 사무실을 먼저 나갔다.

    「축하한다. 잘 되었다.」
    하고 신긍우가 말했을 때 내가 물었다.
    「그, 미스터란 말은 무어야?」
    「그건 선생님이란 말이야. 즉, 이선생님이라는 뜻이지.」
    「아니, 그렇다면 이미스터라고 해야 옳지 않은가? 왜 뒤집어 말하는가?」
    그러자 신긍우가 머리를 비틀더니 곧 내 팔을 끌었다.
    「그건 배우면 될 것이고, 자, 구경하러 가세.」

    배재학당은 고종 24년 3월(1887, 3)에 교사를 신축했는데 아펜젤러는 미국북감리교에서 지원해준 자금을 썼다는 것이다. 교실을 구경하던 내게 신긍우가 문득 물었다.
    「승용이, 우리 모임에 들어올텐가?」
    걸음을 멈춘 내 팔을 잡은 신긍우가 복도 구석으로 끌었다.

    신긍우가 말을 잇는다.
    「개혁당의 애국 모임이 있네. 모두 애국지사인데다 명망 있는 인물들이야. 자네가 와 준다면 크게 기뻐할 걸세.」
    신긍우의 표정은 절실했지만 나는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일본이건 러시아건, 또는 미국이라고 해도,」내가 복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개화를 하는건 좋으나 외세에 의존한 모임은 싫네.」
    그리고 아직 나는 방향도 잡지 못했다.
    무작정으로 친구따라 갈수는 없지 않겠는가?
    친청, 친일, 친러, 친미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친청 세력이 먼저 떨어져나간 세상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