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④

     조선왕 순조(23대) 재위 34년 4월(1800,7-1834,11), 헌종(24대) 재위 14년 7개월(1834,11-1849,6), 철종(25대) 재위 14년 6월(1849,6-1863,12)까지 60년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왕권을 극도로 약화 시켰으며 3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과 함께 민생의 파탄을 불러 일으켰다.

    26대 고종대에 이르러 외세의 침탈과 압박까지 거세어짐으로써 조선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상태에 닿았다.
    1863년 12세의 나이로 즉위한 고종은 1873년까지 10년간을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에게 정권을 맡겨 왕권을 강화시켰으나 외세 압박과 도탄에 빠진 민생을 견디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고종이 즉위한 1863년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시작되기 5년 전이다.
    일본이 1868년부터 개혁을 시작하는 동안 조선 땅에서는 외우내환(外憂內患)만 쌓여갔다.

    그 기록이다.
    대원군 집정 하에 1866-1872년 6년간 천주교도 8천이 학살되었다. 이른바 병인사옥이다.

    1866년 10월 프랑스 군함이 강화도를 점령했다. 병인양요다.

    1871년 7월,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다 관군과 주민에 의해 배가 불태워졌고 선원들이 살해되었다. 신미양요다.

    1876년 2월, 일본의 위협에 굴복하여 병자수호조약, 또는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1882년 6월, 구식군대가 폭동을 일으켰는데 임오군란이다.

    1884년에는 「일본당」이라고 불린 변법개화파 김옥균 세력이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명성황후 세력을 타도하고 신정부를 수립했다. 이른바 갑신정변이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만에 정권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올해(1894년)에는 동학란이 일어났으며 청일전쟁이 발발했다가 청국이 패퇴했다.

    메이지 유신 26년째인 일본의 상승세는 거센 반면에 조선 땅의 왕권은 실추되고 조정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힘없는 백성의 처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난세일수록 탐관오리가 판을 치는 터라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 죽는다.

    이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근래에 들어서 나는 자주 이렇게 자문(自問)했다가 곧 머릿속에서 지우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끝을 보리라, 집을 향해 걸으면서 내가 혼잣말로 말했다.

    「무능한 임금 때문이다.」

    그러자 체증이 내린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졌다.
    심호흡을 한 내가 말을 잇는다.
    「세도 세력에 휘둘린 무능한 임금들이 조선을 이 꼴로 만들었다.」

    그렇다.
    나는 양녕대군 16대손이라는 왕족의 족쇄를 차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왕조 비판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이기심뿐이었다.

    이제는 다 버리리라.

    집에 들어선 나는 마침 안방으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보았다.
    아내는 부엌에서 복례와 함께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안방으로 따라 들어선 내가 부르자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면서 묻는다.

    「어디 다녀오느냐?」
    어머니의 시선을 받은 내가 어깨를 폈다.
    김해 김씨인 어머니는 내 교육에 모든 정성을 바쳐왔다.

    위로 두 형이 어려서 죽은 후에 마흔둘이 되어서 날 낳았으니 지금은 62세가 되셨구나.
    내가 낳기도 전에 출가한 두 누님 보기도 창피하셨을 것이다.

    어머니 앞에 앉은 내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배재학당에 입학했습니다.」

    놀란 어머니가 한참동안이나 나를 보더니 이윽고 묻는다.
    「아가, 네가 천주학 귀신이 씌운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머리부터 저은 내가 더 어깨를 폈다.

    「영어를 배우려는 것뿐입니다.」
    사실이다. 똑바로 영어를 말하고 들으리라.
    그, 이시다의 통역처럼은 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