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⑥
     
     고종 32년(1895) 8월 하순의 어느 날,
    영어 초급반의 교육을 마친 내게 이충구(李忠求)가 찾아왔다.
    다급한 표정이다.
    나는 배재학당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영어 초급반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모두 조지아나 화이팅 덕분이다. 아니, 노블박사가 그런 기회를 준 것이다.

    「급히 말씀드릴 일이 있소.」
    나를 계단 옆의 조용한 곳으로 데려간 이충구가 상기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어제 국모께서 궁 안에서 왜놈들한테 시해를 당하셨소.」
    놀란 내가 숨을 죽였을 때 이충구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휘 하에 낭인, 병사 수백 명이 궁 안으로 쳐들어갔다는 것이오.」
    「......」
    「국모는 칼로 난자된 후에 시체에 불을 질러 태웠다고 했소.」

    「죽일놈들.」
    마침내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일국의 국모(國母)인 왕비를, 그것도 영토 안 궁궐에서, 어찌 버젓하게 난입하여 살해한단 말인가?
    몸서리를 친 내가 이충구를 보았다.

    「임금께선 뭘 하시오?」
    「글쎄, 그것은.」
    난데없는 물음이었는지 이충구가 눈을 껌벅였다.

    그때 내가 말했다.
    「분하고 부끄럽소.」
    「이 원한을 기필코 갚을 것이오.」
    이를 악문 이충구가 말했다.

    이충구는 나하고 같이 제중원에 다니면서 여 선교사 샤트롱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나중에는 함께 제중원에 머물며 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서로 뜻이 맞는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이충구가 떠난 후에 나는 진정하지 못하고 교정을 서성거렸다.
    분하고 부끄럽다고 이충구에게 말했지만 내 가슴속에 깊숙하게 가라앉아 있는 단어가 또 있다.

    그것은 무능한 왕조에 대한 불신이다.
    다 버리고 학당에 들어 온 후부터 나는 왕조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무능한 왕조는 결국 백성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교정에서 서성대다 학사로 돌아왔더니 그 사이에 국모 시해 사건이 학당 내에 다 퍼져있었다.

    고종 32년(1895) 8월 20일(양 10월 8일)의 을미사변이다.

    「리, 경거망동하면 안돼.」
    교수실에 들어선 나에게 아펜젤러가 말했다.
    아펜젤러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고사(古史)도 많이 안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아펜젤러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뜻을 품으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되는 법이네.」

    미국인 선교사들을 처음에는 의심했던 나였다.
    1900년 전에 죽은 인간을 믿고 의지한다는 사실부터가 우스웠다.
    그보다 공자나 맹자, 또는 주자의 학문이 얼마나 심오한가?

    그러나 나는 차츰 이들의 의지와 신념에 끌리고 있다.
    말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희생에 자주 감동한다.
    이들이 선교를 앞장세워 미개한 주민을 세뇌하여 식민지로 만든다는 선입견은 이미 버린지 오래다. 이들은 욕심이 없는 것이다. 하나라도 더 주님을 믿게 하려는 것뿐이다.

    그때 교수실 안으로 초급반 학생 하나가 들어오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학생 겸 임시 선생인 것이다.
    「이선생, 정문 앞에서 기석이란 상민이 뵙자고 합니다.」
    「기석이?」
    되물었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석이는 이시다의 통역 이름이다.
    그놈이 왜 이곳에 왔는가?
    이시다와는 한달에 한번쯤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만 오늘같은 상황에 왜 기석이를 보냈을까?
    나는 서둘러 교사를 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