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22)

     1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승전국 대열에 낀 것은 영국과의 동맹을 이유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일령 격파를 명분으로 산동반도에 1개 여단을 상륙시켜 교주만에서 제남(濟南)까지의 지역을 점령했고 해군은 남태평양의 독일령 제도를 탈취했다.

    상대방의 허를 찔러 최소한의 노력으로 전승국이 되어 군사적, 경제적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다.
    세계대전으로 일본은 연합국으로부터의 수출 주문이 폭주하여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조선 땅의 3·1독립운동은 승전국 일본의 입장으로써는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일본이 중국 산동성을 점령하고는 중국에 대해 요구한 21개조 요구조항은 세계가 경악할 정도로 악랄했던 것이다.

    21개 조항은 16개조로 수정되어 조인이 되었는데 지금도 중국은 이 날을 국치일로 정하고 있을 만큼 치욕적인 내용이었다.

    3·1운동 당시,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수감자 46,948명, 방화된 교회, 학교, 민가가 수천 채에 이르렀지만 세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승전국 일본은 결국 미, 영과 동맹국 관계인 것이다.

    1919년 8월 초, 워싱턴에 도착한 나는 숙소인 마리온 호텔에서 손님을 맞았다.
    멀리 상해에서 찾아온 안준영이다. 30대 후반의 안준영은 나하고 인연이 많다. 배재학당 후배이며 만민공동회 회원 또한 한성감옥서에도 잠깐이지만 같이 지냈다. 그리고는 만주로 떠나 박무익 휘하에서 독립군이 되었다가 상해로 들어간 것이다.
    안준영은 현재 상해 임정의 경호부 조장이다.

    인사를 마친 내가 먼저 박무익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박대장은 안녕하시오?」
    「예, 지금 만주에 계십니다.」

    허리를 굽혀 보인 안영준이 대답했다. 안영준은 박무익의 밀명을 받고 온 것이다. 임정에서 보낸 사람이 아니다.

    안영준이 수염을 깎지 못해서 꺼칠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임정이 세 세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는 군무총장 이동휘의 친소파이고, 또 하나는 도산의 친미파 그리고 이시영 이동영의 중립파가 됩니다.」

    나는 듣기만 했고 안영준이 말을 잇는다.
    「박용만이 외무총장에 임명되었지만 무력 독립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임정 참여를 거부하고 신채호 등과 함께 북경으로 떠났습니다.」
    「......」
    「이동휘는 무력 독립파에 속하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조선 독립군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나라는 러시아입니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립군, 동포들은 러시아에 호의적이다.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후에 절치부심을 하고 있다. 공산당 체제가 정비되면 지원은 더 늘어날 것이다.

    다시 안영준의 말이 이어졌다.
    「이동휘는 박사님이 지난번에 조선을 위임통치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을 매일 비난하고 있습니다. 도산이 사정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박용만도 그것으로 나를 비판했다. 지난번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 독립이 당장 어려우면 강대국이 먼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제의서를 만든 것을 말한다. 그것은 도산이 미국에 있을 적에 같이 협의한 사항이다.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한 약소국 독립 방안이었으나 어떻게든 강대국의 주의를 돌리려고 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비난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