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28)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으로 들어선 나에게 박용만이 한 말이었다.

    이곳은 프랑스 조계안의 중국인이 경영하는 여관방 안이다.

    내가 손을 내밀며 웃었다.
    「원수끼리 만났구나.」
    「그렇군요.」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은 박용만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오후 4시 반, 주위는 조용하다. 박용만은 중국인 노동자 복색을 했지만 눈빛이 더 강해졌고 체격도 육중해졌다. 나와 여섯 살 차이나 났으니 박용만도 어느덧 41세다.

    나는 임병직만을 데리고 밀행 해온 터라 문 밖에서 임병직이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그때 박용만이 말했다.
    「형님, 이곳 소식은 제가 북경에서 다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고 박용만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는 형님이 떠나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조만간 떠나시지요.」
    「어디로 가란 말이냐?」

    쓴웃음을 지은 내가 물었더니 박용만이 길게 숨부터 뱉는다.
    「미국에서 기반을 굳히십시오.」
    「어떤 기반 말이냐?」
    「형님의 외교적 기반을 말씀입니다.」
    「넌 한사코 나를 형님이라고만 부르는구나.」

    정색하고 내가 말했더니 박용만도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임시정부 대통령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임정 대통령과 박용만은 원수지간으로 남아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네 기반도 굳어진단 말인가?」
    「형님의 적은 제가 이끌겠단 말씀입니다.」
    「이런 충신이 있나?」
    「형님의 비타협적 독선, 자만심, 고집은 가시는 곳마다 적을 만듭니다.」
    「그런가?」

    어깨를 늘어뜨린 내가 박용만을 보았다.
    박용만한테는 어떤 비난을 들어도, 모욕이라도 상관없다. 그저 내 옆에만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해에 오기 전에도 안영준을 통해 나를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다시 박용만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형님은 대한독립에 꼭 필요하신 분입니다. 타협하지 않고 주변을 갖추지도 않고 나아가는 형님을 생각하면 저는 가끔 목이 메입니다.」

    그리고는 박용만이 시선을 내렸으므로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맞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때 머리를 든 박용만이 나를 보았다.
    「제가 그동안 가만있었던 이유는 형님께서 상해에서 직접 겪어 보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이제 충분히 겪으셨을 테니 상해 임정은 놔두시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직을 굳히시지요.」
    「......」
    「저는 이곳에서 형님의 적을 모아 그 중에서 선악을 선별 할테니까요.」

    그리고는 박용만이 이를 드러내고 빙그레 웃었다.
    「형님, 신채호는 우직한 충신입니다. 대한독립에 큰 역할을 할 겁니다.」
    「고맙다.」

    내가 손을 뻗어 박용만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것인가?

    내 목소리가 떨렸다.
    「부디 몸 건강 하거라. 꼭 독립을 이루고 만나자.」
    「각하께서도 건강하셔야 됩니다.」

    처음 각하라고 부른 박용만의 목소리도 막혀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