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번째 Lucy 이야기 ①  

    다음날 오전에 내가 먼저 만난 사람은 노석준의 손자 노경수와 노민수였다.
    둘 다 60대 후반으로 건장한 체격에 생김새가 비슷해서 누구든지 형제라고 생각할 만 했다.

    호텔 커피숍에는 고지훈까지 넷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노경수 형제의 분위기는 들뜬 상태다.
    고지훈이 이승만 전(前)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노석훈의 후손에게 연락을 한 것이라는 말을 듣자 노경수는 즉시 달려온 것이다.

    부산에서 병원을 차린 동생 노민수는 형의 연락을 받고 첫비행기로 상경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데려온 것이다.

    「그, 대통령 각하의 자서전에 우리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있던가요?」
    인사를 마친 노경수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일 것이다.

    둘의 나이로 보면 아버지인 노영호 대령이 전사했을 때 각각 12살, 10살이겠다. 할아버지 노석준이 친일분자로 공개처형 당한 것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둘의 시선을 받은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자주 나왔습니다.」

    형제가 영어에 유창했으므로 나는 영어로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본군 대좌의 통역이셨지만 이승만 대통령을 은밀히 도와주셨습니다. 총독부 내부의 정보를 자주 전해 주셨고 이승만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해 내신 적도 있습니다.」

    「그것봐.」
    어느덧 눈이 붉어진 노경수가 소리치듯 말했는데 한국어다.

    노경수가 동생 노민수에게 말을 이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 말씀이 맞았어. 할아버지는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그 증거가 이제야 나온거야!」
    마침내 노경수가 손등으로 눈을 닦는다.

    그때 눈을 부릅뜬 동생 노민수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여져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그, 우, 우리 아버님에 대해서도 자서전에 나왔습니까?」
    「아직 그 부분까지는 읽지 못했습니다. 1921년까지만 읽었거든요.」
    「아아.」

    눈물이 흘러내렸으므로 노민수가 손끝으로 눈을 닦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저기, 대통령께서 아버지 장례식이 끝났을 때 비서를 통해 쌀 5가마를 보내주셨지요. 제가 10살 때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아, 네.」
    「아버지는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임관하셨을 때 저희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할아버지는 매국노가 아니다. 그러니까 대통령각하가 나를 소령으로 진급시킨 것이 아니냐? 하구요.」
    「아버지도 만주에서 관동군 대위로 근무하셨지만 조선인을 많이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직접 들었어요.」

    이번에는 노경수가 나섰다가 말을 마치더니 길게 숨을 뱉는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아십니까? 내 나이가 곧 70, 이제 우리 가문이 얼마나 떳떳한지 내 손주들한테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둘의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떨한 상태였지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자서전 중에서 노석준씨가 나온 부분은 복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경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굽혔고 노민수도 뒤를 따른다.

    「그, 자서전은 곧 출간 되겠지요?」
    선 채로 노경수가 묻더니 곧 제 말에 제가 대답했다.
    「저희 형제가 출간을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