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FO가 북한을 흔들었다.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 의존하게 된 의식변화 동기 중 하나가 그 UFO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진성     
     
    1997년 일이다.
    평양시 중구역의 남산재 언덕에는 인민대학습당이 있다. 1982년 4월1일에 개관된 이 대학습당은 연건면적이 10만m2이고 3000만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어 북한이 세계최대도서관으로 자처한다. 더욱이 김일성 광장의 주석단을 배경으로 푸른 기와를 얹고 일어선 한옥 형태의 대형건물이어서 북한은 ‘김일성민족’ 상징물처럼 자부한다.  

    평양 남산 밑에 거대한 지하 빌딩-고속도로

    그러나 평양시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그 남산재 언덕에 북한이 거대한 민간인시설을 올려놓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한 이유가 있다. 평양시 중구역은 대부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건물들과 간부아파트 단지로 구성돼 있다. 그 가운데 우뚝 일어선 남산재 야산 밑에는 유사시 지하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중앙당사무실들과 북방으로 기밀자료들을 빼돌릴 수 있는 방대한 크기의 지하역전이 있다.  

    또한 김정일 부자만이 이용 가능한 벙커들과 평양시 교외 특각들로 이어진 고속도로가 있다. 때문에 김정일은 김일성광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지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하도로에서 빠져나와 주석단으로 올라간다. 그런 비밀시설들을 은폐시키고 보호하기 위해 북한은 거대한 규모의 민간인 시설을 남산재 언덕에 지은 것이다.  

    세계최대 도서관 '인민대학습당'

    인민대학습당은 3000만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대여할 책은 북한판 책밖에 없다. 전문가들에 한하여 전공분야와 관련한 외국도서들을 현장에서만 열람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특별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방북하면 필수 관광코스로 지정된 대학습당이지만 규모에 비해 출입인원이 매우 적은 것이 문제였다.  

    김정일은 전인민이 학습하는 사회모습을 외국인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인민대학습당에 홍보를 지시했다.
    하여 각 부서별로 아이디어를 내게 했지만 외국도서들을 개방하지 않는 한 호기심을 유발시킬 방법이 없었다.


  • 그래서 나온 것이 UFO공개였다. 자본주의 황색차단으로 모든 외부문화는 불법으로 막아버린 실정에서 외계인 이야기밖에 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UFO를 공개하라" 선전술...효과는 '대역습'

    인민대학습당측은 도서관을 찾으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홍보 차원에서 외국 언론들의 자료를 토대로 UFO실체에 대해 해설하는 녹음 카세트를 유출시켰다. 그런데 효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그 내용은 주체적 유물론 철학관에 세뇌된 북한 주민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인류의 능력을 초월하는 외계인의 존재는 수령이 위대해야 인민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수령가치관을 붕괴시키는 증거물이나 다름없었다.  

    카세트 내용의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미국 영화도 이미 나왔다고 하는 발언도 있다. 그 내용은 순진한 북한 주민들에게 외계인의 존재가 이미 지구를 위협할 수준의 현실임을 착각하게 했고, 자기들이 바치는 평생충성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닫게도 했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모이면 외계인 이야기로 수군거렸고, 그 카세트는 복사되어 전국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그 카세트를 들은 사람들은 ‘지구 종말’을 상상하며 남은 생을 돈이나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고들 했다. 한편 그 카세트는 북한 주민들이 종교를 믿는 세계인들을 이해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하여 경제난 때문에 쪼들린 자신들의 삶과 불투명한 미래가 궁금하여 점쟁이들을 찾는 사람들이 기하급수로 늘었다.  

    한마디로 수령의 주체에서 개인의 주체로 돌아서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었다.

    어마어마한 바깥세상에 눈 떠...뒤늦게 처벌소동

    어쩌면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 의존하게 된 의식변화 동기 중 하나가 그 UFO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처럼 UFO가 북한을 핵폭탄처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외부와의 엄격한 차단과 일률적 선동에 포로 됐던 북한 주민들에게 어마어마한 바깥세상을 상상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방적 세뇌의 연장선에서 탈출하려는 심리적 반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진노하여 인민대학습당 책임자들과 UFO유출 관계자들을 반당 반혁명분자로 체포하여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전국에 뿌려진 녹음 카세트들을 주민들에게 자진 반납하도록 강요했고, 유포시킬 경우 정치적인 이색분자로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한 그 시기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점쟁이들이 많았다.

    '백두산 화산폭발' 비디오 보내면? 김정일에 핵폭탄! 

    그러나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자 UFO는 북한 주민들에게 더욱 과학적인 실체로 인식되었다. 그 UFO만으로도 알 수 있듯 북한에 보내지는 삐라 한 장 한 장은 거짓의 역사를 가진 김정일 정권엔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최근 백두산 화산폭발설이 있는데 만약 그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비디오가 북한에 들어갈 경우 그 충격은 상당히 클 것이다.
    백두산은 김일성의 성산이고 김정일의 고향으로 신성시 되고 있다. 그러한 혁명의 성지가 화산폭발로 사라진다고 하면 그러지 않아도 김정일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북한 주민들의 머릿속에선 김부자 신격화가 아예 사라질 것이다.
     
    <장진성 /객원논설위원, 탈북시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