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 ④  

     「당신은 대한민국의 대표자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기자회견장으로 빌린 모리스 호텔의 연회장에 모인 기자 한명이 물었다.

    내 시선을 받은 사내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을 잇는다.
    「대한민국 청년단이란 단체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그 단체 대표 정기승이란 사람한테서 직접 들었기도 하구요.」

    사내가 말하는 동안 내 시선이 잠깐 구석 쪽에 앉은 양성준 등 교민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중에 안명희도 있다.

    내가 입을 열었다.
    「그 단체는 반정부단체이고 러시아의 자금 지원을 받는 공산당 조직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상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말한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사내를 똑바로 보았다.
    「그 단체가 매수한 기자들이 몇 명 있다고 들었습니다. 흥미가 있으시다면 그 명단을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쪽 자금 담당자가 며칠 전에 손을 떼고 모든 자료를 가져왔거든요.」
    「발표해주시오!」
    「부탁합시다!」
    하고 이곳저곳에서 소리치는 바람에 회견장은 떠들썩해졌다.

    양성준도 뭐라고 외치는 중이다. 손을 들어 장내를 진정시킨 내가 군축회담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일본의 압제와 착취를 금지시켜야만 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초청된 신문사 기자는 여섯명, 모두 광고를 내주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한 후에야 나와 준 것이다. 조금 전에 나에게 물은 사내는 불청객이다. 그런 불청객이 서너명 있었기 때문에 양성준 등은 긴장하고 있다.

    「작년에 일본군은 만주에서 3만여명의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수천 채의 집에 불을 지르고 어린아이까지 죽였습니다. 그것은 중국 땅의 모든 중국인들도 다 압니다. 오직 이곳 미국인들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이용해야만 하거든요. 그래서 보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격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서 심호흡을 했다.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미국이 위선과 독재국의 친구, 제국주의 국가로 변절되고 있습니다. 일본을 친구로 삼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큼 일본을 잘 아는 국가는 없습니다. 수천년을 옆에서 겪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독사입니다. 독이 차면 어김없이 독니를 박는 족속입니다. 미국인에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호소합니다. 대한민국을 도와주십시오.」

    마침내 목이 메인 내가 입을 다물었을 때 연회장은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구석에 앉은 안명희가 손끝으로 눈물을 닦는 것을 보았다. 양성준 등 동지들도 모두 상기된 표정이다.

    그때 사내 하나가 불쑥 말했다.
    「대한제국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일본과 합방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미국한테 떼를 쓰면 됩니까?」

    불청객이다. 그리고 일본 측이 보낸 방해꾼이 분명했다.

    「저놈 죽여!」

    마침내 교민 하나가 벌떡 일어나 조선말로 소리쳤고 서너명이 따라 일어서더니 그 서양인을 향해 달려갔다. 의자가 넘어졌고 이쪽저쪽에서 외침이 터졌으므로 연회장은 금방 난장판이 되었다.

    놀란 사내가 도망치다가 문 앞에서 교민들에게 잡히더니 곧 비명이 터졌다.

    나는 길게 숨을 뱉고 나서 연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독립청원서」는 결국 군축회의에 접수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