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 ⑦  
      
     그래도 미국 땅, 그 중에서도 동포가 6천여명이나 거주하는 하와이 땅은 빼앗긴 조국에 대한 열망이 가장 자유롭고 활기차게 치솟는 장소일 것이다.

    수십만이 옮겨간 만주 땅은 일본군 치하에 들었으며 중국 본토는 조선조 말기보다 더한 내분과 빈곤으로 황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으로 시작된 전 세계의 세계공황은 해외 독립운동가의 삶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다.

    이미 내 나이도 50대 중반의 장년이 되어 있었고 머리는 반백이다. 1912년 조선을 탈출하듯 떠나 어느덧 20년 가깝게 무국적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박사님, 러시아만이 조선의 우방입니다.」

    1931년 5월 쯤 되었다. 하와이 한인 모임의 간부들과 점심을 먹고 났을 때 교민 총단의 간부 이수환이 불쑥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고 테이블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하와이 내에서도 나에 대한 반대세력이 있다. 임정에서 쫓겨난 내가 아직도 구미위원부를 관리하고 하와이 교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시선을 들어 이수환을 보았다. 40대 중반의 이수환은 한때 흥사단에 가입했다가 탈퇴하고 상해 임정에서 김립(金立)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김립은 이동휘(호 誠齋) 계열로 러시아에서 준 독립운동자금 2백만 루불 중 40만 루불을 유용하다가 김구가 보낸 독립단원에게 사살되었다.

    이수환은 김립이 죽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더니 작년 초에 하와이로 옮겨왔다. 언변이 청산유수인데다 김규식을 따라 러시아 공산당회의에도 참석한 터라 경륜과 인맥도 대단하다.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이수환을 보았다.
    「나는 러시아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버러지들을 싫어한다네.」
    순간 모두 긴장한 듯 테이블 주위에는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수환도 얼굴을 굳히고는 묻는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재(誠齋)가 그랬어. 나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이네. 성재는 나를 반대했지만 나는 그의 애국충정을 존경하고 있어.」

    그리고는 내가 똑바로 이수환을 보았다. 이수환이 온갖 험담을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파리를 칼로 때릴 수가 있겠는가? 하고 무시했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이수환이 나에게 파리채를 쥐어준 셈이 되었다. 이수환도 벼르고 말했겠으나 나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제 휘하의 김립이나, 김립한테서 술값을 받아 여자를 샀던 부류는 용납할 수가 없어. 러시아의 지원금을 유용한 사이비 독립운동가, 사기꾼들을 말이야.」

    한마디씩 나는 잘라 말을 이었다.
    「다음주 중에 상해에서 떠난 오세만, 최말득이 하와이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들이 오면 김립의 잔당들이 소탕 될거야. 이곳에도 있다면 말이지.」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이수환에게로 모여졌다. 지금까지 이수환은 자신이 김립의 수하였다는 것을 숨겨왔던 것이다. 그 사실은 나만이 안다.

    그때 이수환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미국 법에 의해서 잘못이 있다면 벌을 받는 겁니다.」
    놀란 김에 이수환은 잘못 말해버렸다.

    그때 동지회 간부 김만수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묻는다.
    「이보시오. 갑자기 미국 법을 왜 찾습니까? 뭐 죄 지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이선생. 그, 오세환, 최말득이라는 사람들을 아십니까?」

    다시 누가 물었고 이수환은 얼굴을 굳힌 채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