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시련의 20년(21)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빠져든 세상은 적과 동지로 나뉘었다.
    일본은 독일, 이태리와 동맹을 맺고 아시아를 석권하려는 대야망을 품었는데 초기에는 승승장구해서 그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필리핀, 싱가폴, 동남아 지역에다 오스트렐리아 북방까지 진출했으며 중국 대륙까지 석권한다면 가히 세계 최대국(最大國)이 될 것이었다.

    전쟁이 격렬해진 1943년 7월,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외교부장 송자문의 방문을 받는다. 백악관의 접견실 안에는 국무장관 코엘 헐과 국무장관 특보 알저 히스까지 참석해 있다.

    그때 루즈벨트가 송자문에게 말했다.
    「장관, 일본과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미국 내의 일본인들은 모두 격리 수용시켰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에 강제 합병된 상태이니 일본인으로 취급되면 안된다는 법적 청원이 들어왔더군. 그것을 주도한 한국인이 누구였지요? 내가 와이프한테서 들었는데.」

    루즈벨트의 시선을 받은 알저 히스가 우물쭈물 했을 때 코델 헐이 대답했다.
    「예, 이승만 박사입니다.」
    「맞아, 닥터 리야.」

    코델 헐이 힐끗 알저 히스를 보았다. 알저 히스가 이름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직접 만난데다 청원서 때문에 짜증을 내기도 했으니까.

    그때 루즈벨트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한국인은 격리 수용에서 빼냈는데 이번에는 무기 공급에다 임정의 승인과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까지 말이요.」

    루즈벨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해리스 목사가 강력히 추천을 하는구만. 말에 조리가 있고 이치에도 맞아서 나한테 직접 만나보라고 한단 말이요. 프린스턴 박사로 윌슨 전(前) 대통령하고 친교가 깊다고 하더군.」

    그리고는 정색한 루즈벨트가 송자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장관이 중국에 있는 한국 임정을 지원해주고 있으니 그들 사정을 잘 아실 것 아니오? 내가 닥터 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까? 닥터 리는 한국 임정의 외교 전권대사라고 하던데.」

    그러자 송자문이 심호흡을 했다. 송자문은 1894년 생이니 당시에 50세의 장년이다.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은 분열이 심해서 서로 물고 뜯는데 상대를 적인 일본보다 더 증오합니다.」

    송자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방안은 조용해졌다.
    「그래서 누가 임정 대표인지 누가 실권을 쥐고 있는지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터라 저희들도 당혹할 때가 많습니다.」
    「허어, 그것 참.」

    루즈벨트가 입맛을 다셨을 때 이번에는 알저 히스가 나섰다.
    「이승만이 임정의 대표가 아니라면서 찾아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한국 대표라는 증명서와 추천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송자문이 거들었다.
    「그, 이승만이란 사람. 적이 많습니다. 그가 임정의 대표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임정 김구 주석이 추천한 유일한 대표인데 그렇지 않소?」
    하고 코델 헐이 겨우 나섰을 때 송자문이 쐐기를 박듯이 말한다.

    「한국 임정 간부들이 소련의 공산당한테서 지원금 2백만루불을 받아서는 여자를 사거나 횡령을 해서 내분이 일어난 적이 있었지요. 그것으로 임정이 한때 붕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력으로 정부를 세울 능력이 부족합니다.」

    루즈벨트는 이제 눈만 껌벅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