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번 째 Lucy 이야기 ①  

     그렇다. 1912년 3월 26일, 자신의 38세 생일이 되던 날 도망치듯 조선 땅을 떠난 이승만은 33년이 지난 1945년 10월 16일, 미국 점령지가 된 조국에 불청객처럼 돌아왔다.

    조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노(老) 독립운동가는 금의환향(錦衣還鄕)한 것이 아니었다.
    조국은 이제 열강의 도마 위에 놓여진 고기나 같았다.

    순진한 조국의 민중들은 해방의 기쁨으로 환호했지만 이승만의 가슴은 해방 전보다 더 무겁고 어둡다는 것이 느껴졌다. 험난한 산이 여러 겹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 만난 최영선은 자신의 부친이 이승만의 암살 작전에 참여했다고 하지 않던가?

    밤을 꼬박 새우고 이승만의 수기를 읽은 터라 나는 늦잠을 잤고 오전 10시 경에야 일어났다.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내가 김태수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11시경이었다. 그리고 한시간쯤 후에 우리는 커피숍에서 마주앉았다.

    「그 후로 내 선조 이야기는 없지?」
    불쑥 그렇게 묻는 김태수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받지 않고 비스듬히 옆쪽을 본다. 
    「응, 없었어.」

    내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1945년 해방이 되어서 이박사가 귀국하는 장면까지 읽었거든? 테드 선조는 한국에 계셨던 것 같으니까 다시 만나실지도 몰라.」
    「내 증조부는 1874년 생이셨어. 이승만보다 한 살 위라구. 그 사람이 귀국했을 때 내 조부는 72세였는데 74세에 돌아가셨지.」
    「수기 읽고 난 감상이 어때?」

    이번에는 내가 물었더니 테드가 다시 외면했다.
    「수기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서 말야.」

    그러더니 마지못한 듯 덧붙였다.
    「대단한 사람이긴 해.」

    「1945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가 가장 혼란스럽고 격변의 시기라고 하던데.」
    고지훈한테서 들었기 때문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테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는 시선이 똑바로 부딪쳐온다.
    「누가 그래? 같이 있는 친구가 그래?」

    내가 쓴웃음만 지었더니 테드가 말을 잇는다.
    「우습군. 몇일 사이에 그놈한테 세뇌당한 것 같군. 아니, 이승만 수기를 읽었기 때문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이 귀국했을 때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을 선포하기까지의 3년 동안이 33년의 방랑 투쟁기보다 더 어렵고 힘드리라는 것은 알 수 있겠다.

    그때 테드가 머리를 들더니 나를 보았다.
    「루시, 그 친구를 좋아하니?」
    「응, 좋아해.」

    거침없이 대답한 내가 똑바로 테드를 보았다.
    「당신하고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사람이야. 그 사람은 이승만을 존경해.」
    「그런 사람도 있지.」
    「오늘 만나보지 않겠어?」
    불쑥 그렇게 물은 나는 심호흡을 했다.

    내가 고지훈을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지만 후회되지 않았다.

    테드가 내 시선을 받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저녁이나 같이 할까?」
    「그 사람한테 당신 이야기도 했어.」
    「그래? 그럼 자연스럽게 신구(新旧) 교대식이 이뤄지겠구만 그래.」
    그래놓고 멋쩍은 듯 테드가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따라 웃었지만 말을 잇고 싶지는 않았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