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② 

     「박사님!」
    외치는 소리가 너무 컸고 울림이 강했기 때문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조선호텔 현관 밖에는 수백명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내가 몸을 돌렸더니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백의(白衣)민족. 그렇다. 우리 민족은 흰 웃을 잘 입는다.
    외국을 떠돌며 양복 차림만 눈에 익었던 나는 환호하는 군중의 흰 옷이 너무도 선명해서 지금도 뚜렷히 기억난다.

    그 환호소리에 조금 전 애타게 나를 불렀던 남자의 외침이 묻혀져 버렸다. 나는 지금 1층 로비에 서서 현관 밖에 운집한 군중을 바라보고 있다. 호텔 직원과 미군 병사들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군중은 쏟아지듯 안으로 밀려올 것이었다.

    그때였다.
    미군 병사를 젖히고 40대쯤의 사내가 달려왔지만 현관 유리문 밖에서 잡혔다. 미군 병사에게 목덜미를 잡힌 사내가 악을 쓰듯 외쳤다.
    「제가 박무익의 아들 박기현입니다!」

    그 순간 내 머리칼이 곤두 선 느낌을 받았고 서둘러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뒤를 따라온 스미스 중위에게 그를 안으로 들이라고 지시한 내가 로비에 서서 기다렸다. 곧 스미스가 사내를 데려왔는데 과연 박무익과 닮았다. 앞에 선 사내는 나를 보더니 말문이 막힌 듯 눈동자만 흔들렸다.

    「자네 부친이 박공인가?」
    내가 물었더니 사내가 주르르 눈물부터 쏟고 나서 말했다.

    「예, 박사님. 아버님이 박무익입니다.」
    「지금 어디 계신가?」
    「돌아가신지 10년 되었습니다.」
    「아아, 어디서 돌아가셨는가?」
    「만주에서 가셨습니다.」

    손등으로 눈을 씻은 박기현이 말을 이었다.
    「저는 17세때인 1915년에 아버님이 미국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인으로 살다가 돌아왔습니다.」

    나는 박기현을 데리고 내 거처로 돌아와 마주 앉았다.

    의병장 박무익은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독립운동가요 애국자다.
    지금도 인정받지 못한 채 무명(無名)으로 산화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것이다.

    박무익은 나보다 다섯 살 연상으로 65세인 1940년 7월에 만주 땅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에 총에 맞아 전사했다. 전투중이어서 시체는 황야에 버려졌고 찾지도 못했는데 죽을 때 옆에 있었던 부하가 나중에 박기현에게 유언만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조국이 해방되면 꼭 이승만 박사를 찾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잘 왔어.」
    내가 박기현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가 할 일이 많아. 지금은 조국이 일어나느냐 다시 노예 상태로 되느냐가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세.」
    「제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이번 전쟁 때는 미육군 특수부대 소속으로 중국 군민당군의 고문단에서 일하다가 제대했습니다.」

    정색한 박기현이 말을 이었다.
    「제가 미국인 신분이니만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일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잘 되었다.」

    기쁜 내가 다시 박기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부자간이 날 돕는구나. 내가 인복(人福)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 내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스미스 중위가 방으로 들어서더니 말했다.
    「박사님, 손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벽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가 되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여운형 등 조선인민공화국 대표단들이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기현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내 특별보좌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