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③  

     나는 귀국도 하기 전인 1945년 9월 14일에 남한에서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 임명되었다.

    조선인민공화국, 즉 인공은 8월 20일에 서울에서 결성된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주도권을 장악한 상태였는데 좌우 합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설득력이 약했다.

    조직이 없는 나로서는 1919년 상해 임정의 창설시에도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명분용 또는 간판용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 같다.

    2시에 찾아온 조선인민공화국 대표단은 여운형, 최용달, 이강국, 허헌 등 인공의 핵심요인들이었다.

    「주석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회의실에 둘러앉았을 때 여운형이 먼저 인사를 했다.

    나를 주석이라고 부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인사는 받았다.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독립 열기에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모두가 애국자이며 독립운동가인 것은 맞다.

    그때 이강국이 말했다.
    「주석께서 취임 인사라도 해 주시면 전 조선 민중이 기뻐할 것입니다.」

    이강국에 이어서 허헌이 말을 받는다.
    「미국정당국은 중경 임정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쪽 조선에서는 우리 인공이 가장 합법적이며 조직력이 강한데다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쪽은 어떻습니까?」

    내가 불쑥 물었더니 잠깐 멈칫하는 분위기가 되더니 대답은 여운형이 했다.
    「그쪽도 활발하게 정부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쪽의 좌우 합작 정부가 들어서면 북쪽과도 합작 통일이 될 것입니다.」
    「잘 되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에 한민당 대표들이 다녀갔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기뻐할 것입니다. 그럼 한민당과도 인공이 합작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쓴웃음을 지은 여운형이 말을 잇는다.
    「잘 아시겠지만 한민당 안에 친일 매국노들이 많습니다. 매국노부터 청산하고 합작을 하든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말을 멈춘 내가 긴 숨을 뱉았다. 덮어놓고 뭉치자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드러난 매국노는 청산해야 옳다. 그러나 친일파 청산 작업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서로 죽이는 상황이 되면 안된다. 먼저 자주 독립이다. 좌건 우건 덮어놓고 통일된 한반도의 독립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 체제를 정비하고 친일파를 가려내어 죄를 물어도 늦지 않다.

    그때 이번에는 최용달이 말했다.
    「송진우씨 등이 주석님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주석님을 앞으로 내세우고 이용하려는 수작이지요. 일제 치하에서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면서 호의호식하던 자들이 한민당에 끼어들어 또다시 권세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미군정당국이 한민당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도 문제입니다.」
    하고 이강국이 거들었다.

    그것은 맞다. 미군정 사령부가 가장 호의적으로 접촉하는 단체가 한민당이다. 그것은 한민당의 체질이 자본주의 체제인 미국과 가장 가까운데다 38선 북쪽의 북한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이 일사분란한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데에 대한 반사작용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린 뭉쳐야 삽니다.」

    나는 그렇게 완곡한 결론을 내었지만 그날 인공 중앙위는 주석 이승만이 귀국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참으로 열렬한 성명서여서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