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⑥ 
      
     백범(白凡) 김구가 귀국한 날은 1945년 11월 23일이다.
    중경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미군정 사령부의 정책 때문에 김구 일행도 개인 자격으로 C47 군용기를 타고 귀국했다.

    나는 김구가 귀국한 그날 저녁에 경교장으로 찾아갔다. 김구는 임정의 주석인 것이다.

    「아우님, 고생하셨네.」
    경교장 현관에서 김구와 나는 부등켜안았다.

    온갖 감회가 일어났지만 우리 둘은 부등켜안기만 했고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둘 다 눈물이 말랐었나보다. 집세를 못내어 쫓겨날 뻔 했을 때도 있었고 식비가 없어서 교민 집을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던 김구다.

    그래, 내가 1920년, 상해 임정 주석이었을 때 김구는 가장 믿을만한 동지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연하이니 김구도 올해로 70객이다.

    경교장의 응접실에 둘이서 마주앉았을 때 김구도 감회가 밀려왔는지 지그시 나를 보며 말했다.
    「형님도 늙으셨소.」
    「이사람, 아우도 올해 70이네.」
    「그래도 우리가 식민지에서 해방된 조국에 와 있네요, 형님.」
    「오래 산 덕분이네, 그려.」
    「형님, 이봉창이, 윤봉길이가 생각나오.」
    그러더니 김구가 손수건을 꺼내며 눈물을 닦는다.

    갑자기 둘이 떠오른 모양이다. 이봉창은 일본 히로히토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졌고 윤봉길은 상해 홍구(虹口)공원에서 일본군 시라카와(白川) 대장 등에게 수류탄을 던져 폭사시켰다. 둘 다 김구의 지시를 받은 의사(義士)들이다.

    「아우님, 며칠 전에 조선공산당이 독촉에서 공식 탈퇴를 했네.」
    내가 말했더니 김구가 쓴웃음을 지었다.
    「들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요.」

    나를 찾아왔던 박헌영은 11월 2일의 첫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석했지만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박헌영은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을 비난하는 나에게 도전하듯이 러시아는 은인국이라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독립운동을 도운 것은 틀림없지만 북한 땅을 공산당 체제로 만들고 있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방식보다 교활했다. 그렇게 러시아를 옹호하던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독촉에서 탈퇴한 것이다.

    김구가 말을 이었다.
    「좌우 합작을 했던 임정도 이제는 이곳에서 다시 분열을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형님, 저는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가? 잘했네.」
    「형님, 저하고 같이 하십시다. 이제는 임시정부가 아닌 참정부에서 형님이 대통령을 맡으시고 저는 임정 초기처럼 경호처장을 맡지요.」
    「이 사람아, 나는 이미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이네.」
    「농담하실 때가 아니요, 형님.」

    나는 한없이 진중하기만 한 백범을 보면서 다시 목이 메었다.
    나는 아직도 당파가 없다. 해방된 지 두달 만에 60여개의 정당이 생겼고 하루에도 한 개씩 지금도 생기는 중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간판만 들고 다닌다. 그랬더니 내 간판만 필요한 이곳저곳에서 모셔가려고 한다.

    내가 입을 열었다.
    「아우님, 곧 대한민국이 미·소의 신탁 통치를 받을 것 같네」

    놀란 김구가 얼굴을 굳혔고 내가 말을 이었다.
    「죽은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대한민국을 넘긴 줄 알았는데 트루만이 정책을 바꾼 것 같네. 하지만 우리가 신탁통치를 받아들여야 되겠는가?」
    「안되지요.」

    단호한 표정이 된 김구가 머리까지 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