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⑧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에서 미, 영, 소 3국의 외상이 모여 합의한 이른바 「모스크바 3상회담」 결과는 AP통신에 의해 그날 저녁에 한국에도 발표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은 향후 5년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미국무성 관리들로부터 이에 대한 정보를 듣고 한국인과 더불어 대비를 해왔다. 따라서 미·소의 5개년 신탁통치 안에 불복, 전국민과 함께 궐기하여 3국의 결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세계만방에 보여줄 것이다.」

    김구의 중경 임정세력도 즉시 신탁통치 반대 투쟁에 돌입했고 좌익 세력인 조선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전국은 하나가 되어 뭉쳤다.

    나는 이것이 또 하나의 대통합 대통일의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사님.」
    돈암장의 내실로 박기현이 서둘러 들어섰을 때는 12월 29일 오후 5시쯤 되었다.

    내 시선을 받은 박기현이 말을 잇는다.
    「하지가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보좌관한테 박사님을 체포, 군법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라고 했다는데요.」
    「무지한 생각이야.」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은 내가 말을 잇는다.
    「그럼 대번에 나는 순교자가 되고 남한은 통일이 될 거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임정의 백범이 정권을 위임 받을테니 제발 덕분으로 그렇게 해준다면 좋겠다.」

    오늘 김구는 국민총동원위원회를 발족시켜 반탁투쟁에 돌입했는데 미군정당국에 다음 세가지를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했다.

    첫째, 임정을 즉시 한국 정부로 인정해 줄 것.
    둘째, 신탁통치를 절대 배격하며 이에 반대하는 자는 민족반역자로 처단하라.
    셋째, 군정청은 임정 외의 모든 정당을 해체하라.

    반탁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군정당국으로서는 화가 날 만한 요구였다.
    그래서 하지는 그 희생양으로 나를 고른 것 같다.

    다시 박기현이 말했다.
    「박사님, 잠시 몸을 피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그, 일리노이 시골놈이.」

    그때 집사 이덕현이 들어와 말했다.
    「경무부장께서 오셨습니다.」

    그 순간 몸을 돌린 박기현이 옆쪽 문을 열고 나갔고 문이 닫치자마자 조병옥이 앞쪽 문으로 들어섰다.
    조병옥은 군정청 경무부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박사님, 하지가 당황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마친 조병옥이 앞쪽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박사님과 백범이 반란을 선동하고 있다는 말까지 합니다.」
    「반란이라고 했나?」

    입맛을 다신 내가 머리를 저었다.
    「군인이라 표현력이 부족하군. 이보게, 우리가 일제 36년에 이어서 다시 미·소의 신탁통치를 받을 만큼 미개한 민족인가?」

    내가 엄한 조병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수없이 말했지 않는가? 이 한반도는 소련한테 내주기로 한 땅이었는데 결국 스탈린의 주장대로 38선 이북을 소련 위성국으로 만들 작정을 하고 신탁통치 합의를 본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지를 너무 몰아붙이면 안됩니다. 그자도 국무성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인간이니까요.」

    조병옥이 말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