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⑩ 

     그리고 다음날인 1946년 1월 2일, 조선 공산당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신탁통치를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느닷없는 발표여서 전 국민은 물론이고 군정청까지 경악했지만 놀람이 가라앉자 곧 이해가 되었다. 소련이 지시를 내린 것이다.

    「부럽다고 합니다.」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이 저녁 무렵에 지나다 들렸다면서 찾아와 나에게 말했다.

    지금 군정 당국자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반탁시위가 깨끗하게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남한의 미군정 당국이 부러워 하는 것이지요.」
    「그게 미국과 소련과의 차이지만.」

    저절로 어깨가 늘어진 내가 말을 이었다.
    「북한은 이미 공산당 위성국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군.」

    소련은 일제에 항거하는 조선 독립군을 도운 유일한 우방국이었다. 따라서 북한 땅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기도 전에 소련군의 지시를 받은 중앙인민위원회가 설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해방 후에 진주한 소련군이 중앙인민위원회를 휘하에 두는 것으로 정권 장악은 끝나버렸다.

    머리를 든 내가 조병옥을 보았다.
    「민심은 어떤가?」
    「조선공산당은 민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조병옥이 쓴웃음을 지었다.
    「소련 지시만 따르면 되니까요.」

    손목시계를 본 조병옥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을 잇는다.
    「해방 후에 정국이 이렇게 뒤틀릴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다. 조병옥을 문 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내가 길게 숨을 뱉는다.

    또다시 강대국의 먹이, 또는 인질이 되어있는 조국을 보게 될 줄을 과연 몇 명이나 예측하고 있었겠는가?
    하루가 멀다하고 대형 폭탄이 떨어지는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 과연 남한 땅덩이라도 건질 수가 있을 것인가?

    이제 남한의 조선공산당이 신탁을 찬성했으니 북한과 함께 남한의 우익을 몰아붙일 것이었다.
    그런데 남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미군정 당국은 국무부의 지시에 따라 신탁통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다. 이대로 두면 남북한은 신탁통치가 되면서 미·소의 식민지로 굳어질 것인가?

    그때 집사 이덕현이 서둘러 들어오더니 말했다.
    「박사님, 이철산이란 분이 오셔서 면회를 신청했는데 지난번 군정청에서 하지 중장을 꾸짖으실 때 옆에 계셨던 분이라면 아실 것 같다는데요.」
    「그런가?」

    금방 그때를 떠올린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박헌영의 비서다.

    곧 문이 열리더니 이철산이 들어서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박사님,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니, 왠일인가?」

    자리를 권하면서 물었더니 이철산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신탁 찬성의 지시는 북한의 소련군 사령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나?」

    긴장을 풀어주려고 가볍게 대답했지만 이철산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져 있다.
    「조선공산당은 소련의 꼭두각시입니다. 그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합니다.」

    한마디씩 말한 이철산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저는 전향했습니다. 그것을 박사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고맙네. 자네는 신생 대한민국의 인재가 될 것이네.」

    내가 격려했지만 가슴이 미어졌다. 아직 험난한 앞길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