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⑪ 

     내 나이 71세, 38세 때인 1912년 조국을 떠나 33년만에 해방을 맞아 노인이 되어 귀국했다.
    1945년에 71세면 오래 산 노인 축에 든다.

    한국인은 꼭 유교사상 때문이 아니라 어른을 존중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풍습이 몸에 배인 선한 민족이다.

    내가 여러 단체나 정당에서 나이 때문에 어른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1946년 2월 초, 중경의 임시정부가 비상국민회를 개최하여 최고정무위원 선정 위원으로 나와 김구를 선출했을 때 여럿을 향해 물었다.

    「나한테 나이대접을 해주는 것이오?」
    내가 정색하고 물었더니 1백여명의 대의원이 조용해졌다. 옆에 앉은 주석 김구도 긴장한 듯 몸을 굳히고 있다.

    내가 다시 말했다.
    「내 나이가 많다고 이런 고위직을 시켜주는 것이냐고 물었소.」
    「아닙니다.」

    누군가가 커다랗게 소리쳤고 십여명이 따라 외치는 바람에 회의장은 떠들썩해졌다. 내가 손을 들자 모두 입을 다문다.

    그때 문득 도산 안창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창호는 나보다 세 살 연하인 1878년생으로 7년 전인 1938년에 61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나는 여러번 감동했다. 그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냉정하게 머리로 말한다.
    「좋소. 여러분이 나와 백범을 나이로 우대 한 것이 아니라면 남은여생을 조국과 국민을 위하여 바치리라.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겠소.」

    그러자 좌중에서 박수가 터졌고 일부는 함성을 질렀다.

    회의가 끝나고 김구와 둘이 되었을 때다. 김구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형님, 왜 그리 몰아붙이시오? 누가 형님을 나이만 보고 우대한답니까?」
    「내 자신한테도 한 말일세.」

    이제는 시선만 주는 김구를 향해 내가 말을 이었다.
    「나이 70이 넘었다고 어른 행세만 했다가는 이 땅은 다시 식민지가 되네. 아니, 그보다 더한 소련의 위성국이 될 것일세.」
    「공산당도 사람이요. 사람 사는 세상에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을 테지요. 형님, 너무 서둘지 마시오.」    
    「이것 보게. 그 공산당이 소련의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인 것이 문제일세.」

    이미 북한은 소련이 내세운 소련군 소령 김일성이 조선공산당을 장악하여 조선인민위원회 대표가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면 북한에 소련의 위성국인 단독정부가 성립되는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나는 남한 땅만이라도 공산당으로부터 지켜야겠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하지가 공산당 동조자인 것 같다는 것이네.」
    「하지가 말이오?」

    눈을 크게 떴던 김구가 쓴웃음을 지었다.
    「에이, 형님. 설마 그러겠소?」
    「미국무부에도 소련 동조자 놈들이 수두룩하네.」
    이제는 김구가 입맛만 다셨으므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로써 나는 김구와 함께 임정을 관리하는 위원에 선출 되었지만 군정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도 못한 조직이다.

    미군정 당국의 강경한 압력으로 반탁의 기세는 물론이고 임정의 의욕도 위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임정 대의원과 김구에게 내 자세를 확실하게 알려준 셈이었다.

    내 비록 71세의 고령이지만 적극적으로 투쟁하겠다는 것, 그리고 조선공산당은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지 작업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