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⑬ 
         
     「한반도의 운명은 지난번 얄타회담에서 결정이 되었어.」
    내가 자르듯 말했더니 김규식이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돈암장의 서재 안이다. 오후에 불러낸 김규식과 나는 둘이서 오랜만에 마주앉아 있다. 1946년 2월 말 경, 하지가 제안한 민주의원회가 발족된 지 몇일 후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한반도를 소련에게 양도한다는 비밀 협정을 맺었다고 성명을 발표했더니 국무부가 즉각 부인했지만 이 현실을 보게.」
    내가 똑바로 김규식을 보았다.

    김규식은 1881년생이니 나보다 여섯 살 연하인 65세가 되었다. 나와 조금 다른 길을 걸었지만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애국자요 독립운동가다.

    잠자코 내 시선을 받던 김규식이 물었다.
    「의장께선 이미 한반도는 소련령이 될 것처럼 말씀 하시는군요.」
    「이대로 간다면 분명해지네. 북한 땅은 이미 공산당이 장악했는데 남한은 미국무부의 공산당 세력이 좌우합작 정책으로 소련의 비위만 맞추고 있지 않는가?」
    「남한의 민주의원회에서는 제가 좌측 인사로 되겠군요.」

    부드럽게 말한 김규식이 쓴웃음을 짓는다.
    「의장님이 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공산당 회의에도 참석했고 여운형 등과도 친했지만 소련 추종자는 아닙니다.」

    나는 길게 숨을 뱉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집사 이덕현을 불렀다.
    다시 소파에 돌아와 앉았더니 방 안으로 이철상이 들어섰다. 이철상을 본 김규식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자네가 여기 왠일인가?」
    「내가 불렀네.」
    대신 대답한 내가 이철상을 끝 쪽에 앉치고 다시 김규식을 보았다.

    「이군이 평양에 들어갔다가 어제 돌아왔네. 김 부의장한테 북한 사정을 알려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내가 초대한 것일세.」

    김규식은 박헌영의 비서 이철상이 행방을 감췄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이다. 그 이철상이 평양을 다녀왔다니 더 놀란 듯 숨을 죽이고 있다.

    그때 이철상이 입을 열었다.
    「북한은 이미 김일성의 공산당 단독 집권체제로 굳어져 있습니다. 공산당 외의 어떤 정당도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한숨에 말한 이철상이 나와 김규식을 번갈아 보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북한은 이미 단독 정부를 수립한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체제는 더욱 굳어집니다.」
    「이 사람아, 단독 정부라니?」

    쓴웃음을 지은 김규식이 나무랬다.
    「임시 정부겠지. 더구나 남북한은 지금 신탁통치 예정으로 되어있지 않은가?」
    「신탁통치가 되더라도 북한은 김일성 정부로 운용됩니다. 그것은 인민위원회 위원인 제 친구한테서 직접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찌 되겠는가?」

    내가 김규식에게 이어서 물었다. 김규식의 시선을 잡은 내 말이 이어졌다.
    「신탁통치를 전 국민의 역량을 모아 부결시킨다고 하세. 그럼 북한과 남한이 동등한 조건으로 통일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까?」
    「의장님,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이제는 정색한 김규식이 물었으므로 내가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우사(尤史)가 나와 백범을 도와 우리도 공산당에 대적하는 우익이 되세. 그래야만 공평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민당 등 기존 우익 정당까지 다 합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규식이 잠자코 나와 이철상을 번갈아 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