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현재 급변사태다.  
     
     독재는 긴 것 같지만 무너지는 것은 고작 한 순간이다.
    장진성    
     
     언론에 따르면 통일부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매년 조사하는 국가취약성 지수(Index of State Weakness)와 미 평화기금(Fund for Peace)의 국가실패 지수(the Failed States Index)를 모델로 삼아 지난해 7월부터 1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북한 정세지수 개발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미 십년 전부터 준비해야 할 이 프로그램을 지금에 와서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현재 한국의 자유통일준비가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비공개로 보고한 정세지수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북한 체제 전반의 '불안정 지수'는 상당히 올라갔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통제역량 지수'도 함께 높아져 북한이 당장 붕괴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며 나는 통일부가 아직도 태평세월(太平歲月)이구나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됐다. 한편 지난해 7월부터 1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북한 정세지수 개발에 참여한 그 연구진에 과연 탈북 연구위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장담컨대 탈북자들을 상대로 하는 설문조사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즉 서울에 못 가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는 식의 해석과 판단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인 내가 보기엔 북한의 급변사태는 이미 시작됐다. 우선 권력공백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이번에 북한 주민 27명에 대한 송환이 늦어지는 것도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김정일이 결제를 못할 처지에 있다던가. 아니면 그 사실을 숨겼다가 안 좋은 결과를 보고하자니 화를 자초하는 꼴이 될 것 같아 중간 단계에서 전전긍긍하는지도 모른다. 암튼 최근 북한의 돌발 상황들을 보면 김정일의 결정과정이 이전과 다르게 매우 불균형적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세습권력 조건이나 구조도 매우 불안정하다. 우선 국가조건으로 봤을 때 김정일 시대에는 사회주의 동구권이라는 대외성, 경제적으로 안정됐던 대내성,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봉건왕조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바로 이양된 역사적 폐쇄성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에겐 그 3대 조건 중 남은 마지막 폐쇄성의 조건조차 시장압박으로 희박해졌다.

     지도자 조건도 김정일에겐 매우 행운적이었다. 아버지의 절대적 지지, 30여년이라는 세습권력 준비 과정, 신격화 왜곡 기간이 있었는데 김정은은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주민조건 역시 오늘날의 북한 주민들은 더는 과거 배급 인력이 아닌 시장인력이 돼 버렸다. 지수 개발에 참여한 한 전문가도 현재 북한 인구 2400만명 중 2000만명이 당국 통제가 잘 먹히지 않는 장마당(시장)에서 식량을 해결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만큼 개인의 가치관이 물질 중심으로 변했고, 이는 충성과 복종의 전통적 구조마저 붕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김정일의 권력 이기주의도 혼란을 더 가중시킨다. 김일성의 주석권력을 무기력한 상징권력으로 만들었던 경험과 위험의식에서 김정일은 현재 김정은에게 정책 결정권과 인사권을 발동할 당 공식직함을 주지 않고 있다.

     김정일의 최측근들도 비참하게 끝난 김일성 측근 꼴이 되고 싶지 않아 3대세습보다 유일지도체제를 고집하며 기어이 지키려 하고 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현재 중병을 앓고 있는 김정일이 급사한다면 과연 김정은 3대 세습정권이 안정적으로 출범할 수 있을까? 아니 그때는 북한 뿐 아니라 우리 남한도 돌이킬 수 없는 大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실정이 이러한데도 통일부가 아직도 북한을 급변사태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엄연히 직무태만이다. 지금부터 급변사태로 심각하게 인식할 줄 알아야 단계적인 전략과 현명한 행동의 대안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독재는 긴 것 같지만 무너지는 것은 고작 한 순간이다. 탈북자인 내 눈에는 북한의 붕괴는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현실 속에서 무섭게 태동하고 있다.
     
    <장진성 /객원논설위원, 탈북시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