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⑭ 

     그러나 김규식은 좌우합작을 주장하고 나와 합류하지 않았다. 미군정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에 그 좌우합작이란 정책이 부질없고 오직 소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루즈벨트 정권의 임시방편적 정책이라는 증거가 드러났지만 1946년 당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조치로 보였다.

    내가 소련의 위협과 야욕을 경고할수록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진주군 사령관 하지가 잘 이용했고 이승만은 고집불통이며 제 욕심만 챙기는 야심꾼으로 부각시켰다.

    스탈린이 지배하는 소련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럽을 적화시키기 시작했다. 전(前)의 러시아 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독일이 몰락하고 프랑스가 전후(前後) 복구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 소련은 동구 유럽으로 세력을 확대시켰다.

    1946년 당시만 해도 유고슬라비아는 1943년에, 폴란드가 1945년, 불가리아와 알바니아가 위성국이 되었으며 헝가리와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가 적화되는 중이었고 또한 독일 동쪽을 소련군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광대한 지역이었고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보니 유럽에 소련 대제국이 등장한 셈이었다.
    반대로 서구 열강은 몰락했다. 세계는 미·소 양대국이 지배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북한 땅이 이미 소련 위성국이 된 현 상황에서 남한의 좌우합작기구는 소련에 대한 굴복적 자세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남한에는 우익 기구가 세워져야 남북한간 대등한 평화통일이 이루어 질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무부 친소파와 그 주구인 하지는 결국 남한의 좌우합작기구를 밀어붙였다.

    「남한 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세워야만 합니다.」
    1946년 6월 3일의 전라북도 정읍(井邑) 연설에서 내가 주장했다.
    「그래야만 북한과 대등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미 북한은 공산당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좌건 우건 덮어놓고 뭉치자고 했지만 공산당 체제로써의 통일은 아니다.

    나는 제국주의의 화신(化身)같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 미국무부 관리, 그리고 진주군 사령관으로부터 온갖 무시와 박해를 받아왔긴 해도 미국의 민주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신생조국의 모델로 삼겠다는 신념을 품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다.

    나는 정읍에서 목청껏 소리쳤다.
    「이대로 남한까지 좌우합작 체제를 만들면 안됩니다! 우리는 외세의 간섭을 배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부를 수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세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때로는 인간의 열정과 진실까지 무시하고 흘러가 개인을, 또는 국가까지 몰락시키는 것 같다.

    그 당시의 내 느낌은 내가 사랑하고 믿어왔던 한민족이 좌우합작의 방향으로 몰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르던 박기현에게 언젠가 혼잣소리처럼 말한 기억이 난다.
    「민중이 원한다면 따르겠지만 그 전에 내가 죽어야겠다.」
    박기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내 나이가 72세였으니 생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러나 조국이 독립하고 통일되어 잘 살도록 천년대계의 기초만 닦아준다면 더 여한이 없을 것이었다. 내 몸이 그 거름이 되리라.

    내가 다시 잇사이로 말했다.
    「나는 민주주의 체제의 국가가 성공한다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그 어떤 놈도 내 의지를 꺾지 못한다.」

    그렇다. 그러다가 죽을 작정이었다.